30살에 호주 멜버른에 있었다.
아빠가 싫어 한국을 떠났는데 호주에 오니 또 아빠 호주 구경시켜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무래도 나는 변태인 것 같다.
일하며 번 돈을 조금씩 모았다. 아빠에게 어디 보여줄지 계획을 적어 본 날도 있었다. 내가 사입을 바지를 고를 때 보다 훨씬 진지한 순간이었다.
300만 원쯤 모아놓고 아빠가 언제쯤 올 수 있을까 싶어 집에 전화를 걸었던 날, 아빠와 같이 살고 있던 아줌마에게 아빠 호주 안 가도 되니 그 돈 쓰게 부쳐달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 형편이 좀 어렵다고. 아빠 목소리는 듣지도 못했는데 미안하다는 말 정도는 듣고 싶었다. 속이 많이 상했다.
2020년은 아빠의 70번째 생일이 있는 해다. 나는 1년 하고도 반년 전부터 아빠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겠다는 생각 하나로 많은 시간을 썼다. 좋은 여행지들을 알아보고, 비행기표와 호텔을 결제했다. 돈도 모아야 했다. 남편에게 너의 핸드폰비는 못 줘도 이 돈은 모아야 한다는 모진 소리도 했었다.
그러는 사이 아빠의 칠순을 축하해 주고 싶다고 갑자기 시부모님 및 시댁 식구들까지 합세해 해외에서 모이는 큰 잔치로 변했다.
여행을 6일 앞두고 엊그제 아빠는 이 여행을 안 가고 싶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위험한 이 시기에 공항에 가는 게 찜찜하다고 했다.
시댁 식구들에게의 미안함, 환불이 안 되는 비행기와 료칸 비용, 일부로 와줘서 고마운 마음에 준비한 시댁 식구들 개개인의 선물 같은 것은 모두 다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아빠를 위해 준비하는 것들은 왜 다 이렇게 수포로 돌아가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누군가를 심하게 원망하고 싶었다. 정말, 힘이 빠진다.
좋아하지도 않는 아빠를 위해 딸이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뭔가를 해주려고 하는 데 아빠는 항상 다 쳐낸다. 나는 대체 뭘 위해, 뭘 얻고자 이렇게 애를 쓰고, 결국은 상처 받는 걸까.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빠 탓은 아니지만 아빠가 미워서 눈이 뜨거워진다.
착한 딸 말고 그냥 나쁜 딸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