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빠의 여자들
“어머, 너 거기서 왜 그러고 있니?”
“아...... 아니에요.”
“왜 그래, 우리야. 엄마 생각나?”
“......”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해가 막 가신 어두운 거리를 바라보다 눈물이 쏟아지는 걸 여사장님께 들켰다. 날씨가 조금만 궂으면 엄마 생각에 슬퍼졌다. 며칠 전엔 팥빙수를 만들어 내다가 엄마랑 같이 온 딸의 모습에서 눈물이 핑 돌아 화장실에 가서 울고 나왔는데 그건 다행히 안 들킨 것 같다. 여사장님은 새로 온 알바생에게 “쟤는 말야, 비만 오면 엄마 생각나서 밖에 내다보며 펑펑 우는 얘야.”라고 소개했다. 이 제과점은, 큰 제과점의 규모만큼 많은 알바생들이 일했고, 그중 나는 가장 어린 스물한 살이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맛있어 보이는 빵들이 즐비했다.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온 제빵사들이 만들어 내는 빵이라고 했다. 시식용으로 잘라놓는 빵 조각을 하나 먹어보려고 몇 번의 기회를 봤지만, 천장에 붙어 있는 CCTV 때문에 늘 그만두었다. 그러다 딱 한 번 용기를 냈고, 빵 조각 하나를 들고는 그대로 주먹을 쥐어 감추고 화장실 쪽으로 재빠르게 달렸다. 화장실이 있는 계단까지 안전하게 도착하고 나서야 얼른 입안으로 넣었다.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졌다.
“엄마는 뭐하시는데?”
“돌아가셨어요.”
“언제?”
“5월에요.”
“엄마 많이 보고 싶어?”
“......”
알바 첫날 여사장님과 만나 나눈 대화는 이게 다였다.
여사장님의 생일엔 많은 알바생들이 차례로 사무실에 들어가 비싸 보이는 선물들을 두고 나왔다. 나는 선물이 없었는데 여사장님은 갑자기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책상 위는 선물 상자들과 쇼핑백들로 어지러웠다.
“이거 갖다 써.”
“네?”
“나는 이런 거 엄청 많아, 너 갖다 써.”
명품 화장품 디올의 스킨로션 세트였다. 1학기 때 내 주머니엔 학생식당에서 파는 상시 메뉴인 돈가스 사 먹을 1,700원도 없었다. 그래서 여름방학에도 알바를 해야 했고, 이 제과점에서는 점심마다 밥을 주기 때문에 끼니 걱정은 없었다. 디올 화장품을 내 방 화장대에 고이 올려두면서 여사장은 참 좋은 사람이네, 하고 생각했다.
매장 마감 조로 일한 날은 빵이 그득 찬 큰 봉지를 받았다. 여사장님은 남은 빵을 종류별로 하나씩 담으며 항상 똑같이 말했다.
“우리 너는 성현 언니보다 케익은 잘 못 팔지만, 고생했으니 아빠랑 가서 먹어.”
성현 언니는 케익 판매 전담 알바였다. 나도 성현 언니처럼 여사장님께 인정받고 싶었다.
“여사장 진짜 싫어. 성격 되게 이상해. 별걸 다 참견하고...... 내 남자친구까지 들먹이며 걔는 안된다는 둥 어쨌다는 둥.”
“말 되게 많지?”
“나 싫어하나 봐, 나한테 못 된 말 엄청 많이 해.”
“그러려니 해, 그냥 니가 참아.”
“난 남자 사장님이 훨씬 좋아. 조용하고 친절하고. 부부가 왜케 달라?”
몇몇 알바생들이 뒤에서 열심히 여사장님 욕하는 것을 들은 날도 있었다. 그들 말마따나 남자 사장님은 원체 말이 없긴 했다. 한두 마디 들어봤나. 여사장님이 더 남자 같이 당찼다. 말도 험하게 하고.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면서 알바는 그만두었다. 너는 웃는 게 예쁘지 우울한 모습은 안 예쁘다는 메모가 알바비 42만 원이 담긴 봉투에 쓰여 있었다. 가끔은 이렇게 다정했다. 겨울방학 때도 또 오라고 여사장님이 말했다.
학교까지 가는 버스는 늘 그 제과점을 앞을 지나갔지만, 단 한 번도 버스에서 내려 제과점을 들어가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가 다시 그 제과점에 간 건 막 3학년이 된 3월 초였다. 갑자기 오랜만에 여사장님에게 인사라도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야, 너는 어떻게 그동안 한 번을 안 오냐.”
“죄송해요.”
“요새는 엄마 생각 안 해? 어떻게 지내.”
“그냥, 학교 다녀요.”
여사장님은 예전보다 얼굴이 좀 상해 보였다. 어두워진 것도 같았다.
“아빠는 잘 계시니? 참 너 성현 언니 기억나지? 케익 잘 파는 성현 언니. 성현 언니는 얘 좋은데 취직했다.”
“네, 기억나요.”
“너네 아빠 외롭겠다. 나 너네 아빠랑 데이트 한 번 할까?”
“네???......”
“사장님 돌아가셨잖아. 뭐 그렇게 됐어. 사장님 돌아가신 거 뉴스에도 나왔는데......
“아...... 그런 일이.”
“우리야, 다음 주 화이트데이라 매장 엄청 바빠. 너 알바 좀 해. 주말에 와서 포장해, 알바비 많이 줄게”
“아아. 네네.”
나는 사장님의 뜻밖의 소식에 마음이 아파, 그 자리에서 알바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채 토요일에 오겠다고 하고 매장을 나왔다.
“아빠, 누가 아빠한테 데이트 한 번 하자는데요?”
“응?”
아빠랑은 항상 9시 뉴스를 같이 봤다.
“예전에 알바 했던 제과점 오랜만에 들렀는데 거기 여사장님이 농담처럼 그러데요. 사장님이 돌아가셨데요. 뭔 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으응.”
듣고 있기는 한 건지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답했다. 내가 제과점에 딸린 작은 직원 식당에서 밥 먹고 있을 때 하얗고 높은 모자를 잠시 벗고 옆에서 쉬고 있던 사장님의 누렇게 뜬 얼굴이 떠올랐다.
“너네 아빠 멋있더라, 우리야.”
“네?”
몇 시간째 사탕 포장에 집중하다가 목이 좀 아프네 하고 고개를 들자 맞은편에 앉은 여사장님이 입을 뗐다.
“너네 아빠 키도 크고 잘생기셨드만.”
“저희 아빠를 보셨어요?”
“엥? 너 왜 몰라.”
말은 하는데 작고 야무진 손은 잠시도 쉬지도 않는다. 손재주가 얼마나 좋은지 포장지 위로 꽃들이 촘촘히 들어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붙여야 할 꽃송이들이 아직도 수북했다.
“그러니까 니네 아빠가~ 내가 조우리 아빤데요 하고 당당히 말하던 데에.”
뭐가 좋은지 히죽 웃었다. 나는 반대로 기분이 점점 나빠졌다.
“저 알바 했던 제과점 다녀오셨어요?”
아빠와의 대화는 늘 9시 뉴스 시간에만 가능했다. 채널을 가만히 못 놔두고 마음에 들지 않는 뉴스가 나오면 바로 다른 채널의 뉴스로 휙 돌려 버리는 게 아빠의 습관이다.
“아아, 저번에 갔었어.”
“뜬금없이......”
“니가 가보라 한 거 아냐? 데이트해보라며.”
나는 경악했다. 웃자고 한 소리지 그게. 아빠가 이렇게 행동력 있는 진취적인 사람인지 미처 몰랐네.
“대전 둘째 큰 아빠 말야, 올해 환갑이셔서 3단 케익 하나 주문했어.”
두 번째 경악했다. 3단 케익 같은 건 영화에서만 나오는 건지 알았는데 우리 아빠가 그런 걸 사는 사람이구나. 것보다 아빠는 지금 한 달에 20만 원도 못 벌고 있는데. 아니, 나도 밥 못 사 먹고 초코파이 먹으면서 학교 다니고 있는데......
“어딘지 알고 거긴 찾아가셨데요.”
“알지 왜 몰라, 그 큰 데를. 아줌마 귀엽더라, 니네 엄마처럼 쪼끄매서는.”
세 번째 경악. 아..... 진짜로 여사장님이랑 뭔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가. 배신감에 밤새 뒤척였다. 엄마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아빠가 이래.
‘아빠 늦으니까, 먼저 자.’
아빠의 문자를 확인하니 손이 떨렸다. 아빠가 늦게 인지 일찍 인지 모를 시간에 들어오기 시작한 게 이 주가 지나고 있었다. 사무실 월세를 못 내자 집에 들어와 일하기 시작한 아빠가 집을 떠나는 때는 아침 시간밖에 없었다. 하루도 빠지지도 않고 하는 조깅. 그런데 밤까지 집을 비우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더니 마침내 새벽 6, 7시에 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들어오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모두가 여사장님을 강하고 독한 사람이라 말했었는데 아빠는 그녀가 약하고 불쌍한 사람이라 했다. 밤마다 외로움과 무서움에 끙끙 앓고 있는 그녀를 두고 도저히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했다.
“우리야, 나 밉지? 아빠가 맨날 집에 안 들어가고 그러지? 아줌마 때문에 그러는 거야, 미안해.”
“......”
여사장님이 왜 내게 아줌마가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사연이 많아, 우리야. 내가 죽으려고 몇 번 시도했는데, 죽는 것도 마음대로 안 된다. 약도 먹고, 차로 물에도 뛰어들고 했는데 지금 이러고 살고 있다. 니가 모르는 게 많아. 사장님은 딴 여자가 생겨서 집에도 안 들어오고 했었어. 내가 맨날 찾으러 다녔어. 그런데 갑자기 죽어서 나타난 거야.”
나는 속으로 놀라고 무서웠지만 담담하게 듣는 척했다. 내가 심술 난 걸 안 아빠가 굳이 나보고 아줌마네 집에 놀러 가자 해서 억지로 끌려 나와 있는 참이었다. 이런 이야기까지 들을 줄 몰랐다.
“아빠가 많이 도와주고 있어. 사장님이 갑자기 돌아가시니까 사장님 밑에 있던 직원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매장 운영하려고 꿍꿍이를 부려서, 내가 힘들거든 지금. 아빠가 도와주려고 그러는 거야. 내가 도와 달라고 했어. 우리 빵집이 크잖아, 너도 알지? 이해해 줄 수 있지?”
이게 대체 무슨 이해가 필요한 일인가. 나는 이미 마음이 많이 상해 있었다. 그 와중에도 그 생각만 했다.
‘그래 죽은 엄마만 불쌍해.’
아빠의 책상 위엔 앞으로 제과점을 어떻게 꾸려 갈 것인지에 대한 상세한 계획서가 올려져 있었다. 곧 제과점의 새 사장으로 등극이라도 할 기세였다.
한우 생갈비만 먹는다는 그녀를 위해 아빠는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웠다. 그녀는 서빙하던 직원 주머니에 만원을 찔러주곤 아빠한테 고기는 이제 안 구워도 된다고 말했다. 먹는 내내 옆에서 열심히 고기를 굽는 직원 때문에 나는 그 자리가 불편했다.
그녀는 이따금 나를 불러 선물을 주었다. 첫 선물은 팬티 브라 세트였다. 세어보니 위아래로 각각 일곱 장씩이었다. 선물을 잘도 골랐네 생각했다. 엄마가 죽고 나서 팬티와 브라는 한 번도 산 적이 없었다.
“엄마 없으니 이런 거 챙겨주는 사람이 없잖아. 그지 우리야.”
끝까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선물은 18K 금목걸이였다. 나비 펜던트가 끝에 달려 있었다. 금으로 된 액세서리는 처음 가져봤다. 이것도 너무 마음에 드는 물건이었다.
선물을 받을 때마다 내가 생각했던 한 가지는 이 사람은 우리와 다르다,였다. 아빠보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이라는 것, 우리와 환경 자체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 돈으로 곤란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사람이란 것, 그런 생각들. 얼마 전 3개월 밀린 월세를 받으러 집으로 쫓아왔던 주인의 얼굴과, 아빠가 만들던 제과점 새 사장에게 주는 임명장이 겹쳐지며 떠올랐다. 임명장엔 아빠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래, 그녀는 내게 디올 화장품을 줄 때부터 남달랐다니까.
“아빠, 내가 이 집을 나갈 테니 그냥 아줌마랑 여기 와서 살아. 아침마다 내 눈치 보며 살금살금 기어들어오지 말고요.”
아빠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똑 부러지게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목소리가 떨리더니 끝내 쉰 소리가 나왔다. 눈물도 쏟아졌다.
“그냥 둘이 살라고. 내가 나가 줄 테니.”
가방에 옷가지를 쑤셔 넣기 시작했다. 아빠는 놀랐을 것이다. 아빠 얼굴을 확인하진 못했지만, 그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큰 소리 내는 딸이 아니다. 나는 반항할 수 있는 딸로 크지 않았다. 나는 아빠에게 뭐가 싫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눈치 보고 긴장하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속에 차곡차곡 담아 보존하며 사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런 내게 이런 용기가 난 건 아빠가 그만큼 나를 궁지로 몰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빠가 자식을 버렸다. 우릴 배신했고, 엄마를 배신했다는.
내가 아빠를 버리려고 했는데 아빠는 결국 그녀에게 버림받았다.
아빠가 너무 매장일에 나서서 이것저것 참견한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는데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실은 아빠가 돈이 없다는 게 버림받은 진짜 이유라는 것을.
언젠가 그녀와 둘이 있을 때, 그런 질문을 받았다. 아니, 그건 질문인 것 같지도 않았다.
“우리야, 아빠 돈 없지? 아빠 가난하지? 너도 그거 알고 알지?”
나는 역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내가 울고불고 집에서 나가겠다고 생지랄을 떨지 않아도 이 둘은 곧 헤어지겠다는 것을.
자기는 귤 같은 거 안 먹는다고, 제주산 한라봉만 먹는다는 그녀를 위해 평생 먹어보지도 못한 한라봉을 박스로 사다 나르던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빠 책상 위엔, 운영 계획서도 임명장도 다 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