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여자

소설 아빠의 여자들

by 피츠로이 Fitzroy

“엄마는 왜 이 누나 머리를 해줘요?”

“으응, 엄마가 해준다고 했어.”

“엄마 힘든데...... 이거 시간 많이 걸리는 거 아녜요?”

“엄마 안 힘들어 괜찮아, 저기 가 있어.”

내가 레게머리를 해보고 싶다고 했던 걸 기억하고는 그녀는 갑자기 나를 미용실 의자에 앉혔다.

“우리야 앉아봐, 해보자.”

“저, 정말요?”

머리를 가닥가닥 얇게 잡고서 촘촘하게 따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쩌지 아줌마 팔 아프시겠다, 하고 앞에 걸린 거울을 보니 열 살은 지났을 것 같은 남자아이가 소파에 앉아 나를 째려보고 있는 걸 알았다. 엄마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아줌마의 아들이다. 눈으로 ‘대체 이 누나는 왜 우리 엄마를 힘들게 하고 있는 거지.’라고 외치고 있었다. 뒤통수에 와 닿는 따가운 시선을 외면하는 게 미용실 의자에 엉덩이가 배기는 것을 참는 것보다 힘들었다. 그러다 문득 미용실 안에 자리 잡은 낮은 책장에서 낯익은 것을 발견했다. 패션 잡지가 빽빽이 꽂혀 있는 가운데 유난히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만화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1편’이었다. 미용실에서 도대체 누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을까 사람들은 궁금해하겠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책은 저기서 나를 째려보고 있는 남자애를 위한 거란 걸. 그리고 저 남자애 보다 두 살 어린 여동생도 같이 읽을 거란 걸. 그러니까 저 책은 우리 집에 있던 책인데, 로마 신화가 어려우면 만화로 시작해 보라고 아빠가 사다 날랐던 책인데, 어느샌가 두 꼬마들을 위해 이곳으로 이동시켜 놓았다는 것.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신발로 미용실 바닥을 긁었다. 총 열 권짜리인데 다섯 권이 들어가 있었다. 그렇다면 집에는 6권부터 꽂혀 있겠지, 사라진 다섯 권의 빈 공간을 드러내며. 머리가 끝날 때까지 1권 제일 첫 장에 어떤 신(神)이 나왔었는지 떠올리려고 애를 썼지만 끝내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했다. 너무 오래전에 읽었다. 분한 일이다. 내 나쁜 기억력에 분한 건지, 책을 뺏긴 게 분한 건지, 잘 모르겠는 이 분함.

“큰 엄마가 여자를 한 번 만나보라는데 미용실을 한데. 애가 둘 있고. 애들이 아직 많이 어린 가봐.”

“네에......”

주변 친척들은 아빠를 어떻게든 재혼시키려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빠가 지난번 여자를 만날 때, 내가 울고불고 짐을 싸고 생쇼를 부린 게 미안해서, 얼른 만나보라고 마음에 없는 말을 했다.

“꼬마들한테 점수 따려면 좀 힘들겠어요.”

“그러니까, 하하”

아빠는 나랑 동생이 없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늘 단무지 하나 달랑 놓고 식사를 했다. 냉장고를 열면 바로 눈에 띄는 가장 큰 스테인리스 통에는 노란 단무지가 차곡차곡 들어앉아 있었다. 3단인지 아니 4단 인지도 모르게 잘도 쌓아 놓았다. 그래, 누가 옆에 있으면 단무지보다는 나은 걸 먹겠지 생각하면서 일렁이는 마음을 앉혔다.

“요새 찜질방이 유행인가 봐. 별 게 별 게 다 들어가 있데. 다 같이 잠도 자고. 가족끼리 가면 좋다는데 꼬맹이들 데리고 한 번 가봐?”

아빠는 들떠서 말했지만 나는 이 문장에서 한 단어가 걸렸다. 가족, 가족...... 가족이라.

아빠는 두 어린이들과 친해지려고, 그리고 우리와(나와 동생) 그 어린이들을 친하게 만들려고 눈물겹게 노력했다. 그 노력의 대부분은 끊임없이 먹을 걸 사다 나르는 거였는데, 쟁반을 들고 총총거리며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구운 계란, 고구마 스틱, 오징어 버터구이, 아이스크림, 컵라면이 한바탕 지나가고 이어서 마실 것들이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에 뽀로로 음료까진 안 사 와도 됐는데(그 정도까지 어린애들은 아니었다), 아무도 안 집고 멀뚱멀뚱 천장만 바라보길래 내가 들고 쭉쭉 빨았다. 자꾸 물이 들어오니까 배가 찰랑찰랑 소리를 냈다.

“와아...... 그만 먹자 그만.”

동생이 나만 들리게 내뱉었다.

“그냥 둬. 원래 돈 없는 사람이 저렇게 돈 자랑하는 거지.”

“찜질방에 뭐 코스 요리라도 부를 판이네.”

웃긴 데 안 웃겼다.

“애들이 뭐 먹는 것만 많이 사준다고 좋아하나. 누나 나 저쪽에 좀 가 있을게.”

“아, 왜애. 같이 가.”

동생을 따라 애들이 타는 목마 위에 쪼그리고 올라앉았다. 500원에 5분 움직이는 빨간 말이랑 하얀 말이다. 손목에 찬 팔찌를 갖다 대기만 하면 금방 움직일 것이다.

“우주야, 우린 여기 왜 이러고 있는 걸까. 그리고 이 기분은 뭘까. 왜 나는 남의 아빠한테 얻어먹는 기분이 드는 걸까.”

“......”

“저 아줌마네 애들은 애들 같지가 않아. 뭐 벌써 어른 같아. 그리고 저 남자애, 봐봐, 지네 엄마 뺏어 갈까 옆에 딱 자리 잡고 앉아서 엄마 챙기는 거 봐. 쟤는 뭐 말투부터가 어른이야. 좀 안 됐기도 하다, 아빠 일찍 돌아가셔서. 한창 응석 부릴 나이에.”

“......”

동생은 말이 없다. 엄마가 죽은 건 우주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해였다. 우주는 엄마에게 실컷 응석을 부려 봤을까. 고등학교 2학년은 엄마가 없어지기에 어린 나이일까, 많은 나이일까. 그날 이후로 우주의 입에서 엄마라는 단어가 나오는 걸 나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아줌마도 말야, 미용사 안 같고, 선생님 같아. 아니면 뭐 상담사 같은 거. 그런 게 잘 어울려. 수수한 차림도 그렇고 엄청 말을 조곤조곤하게 잘하시던데. 남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

동생은 또 말이 없다. 원체 그런 녀석이다.

“아빠 성격을 잘 받아줄 수 있어야 말이지.”

우와...... 한 마디 해줬어! 나는 감탄했다.

스무 살 중반에 초등학생 동생 둘이 생긴다는 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한 가족이 되지 못했다. 가족같이 찜질방은 다녀왔어도.

“그러니까 그게...... 여자로 안 느껴지더라고, 잘.”

취할 정도로 마시진 않은 것 같은데 아빠는 속 얘기를 꺼냈다. 아빠와 대화하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대화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빠란 ‘어려운 존재’, ‘자식들에게 엄격한 사람’, 그게 전부였다. ‘이야기할 상대’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런 사람 앞에서 나는, 대답으로 할 문장을 찾느라 머리를 빨리빨리 굴려야 했다.

“엄마는 작고 귀여웠는데, 아줌마는 키도 크고 덩치도 있는 편이야, 그지?”

(아아, 외모가 문제였어?)

“근데 참 묘한 능력이 있어. 아주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해. 그랬어요, 저랬어요 하면서 마음을 슬슬 풀어놔. 그럼 뭐가 서운한지, 뭐에 화가 났는지 술술 다 말하게 돼. 속을 꿰뚫어 보고 있는 사람처럼 이야기한다니까.”

(뭐야아,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그 부분엔 전적으로 동감했다. 그건 그녀의 특별한 강점이었다. 다 같이 페킹 덕(북경 오리)을 먹던 날이었다. 나는 처음 먹어보는 고급 요리라 신이 나면서도 동시에 골도 났다. 이 아줌마 때문에 25년 동안 한 번도 못 먹어 봤던 이런 걸 (이제야 드디어 비로소) 먹어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 복잡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테이블에 올라온 페킹 덕에 눈과 정신이 팔렸는데 그녀는 먹을 생각은 안 하고 아빠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내게 질문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의자를 아예 내 쪽으로 틀었다.

“우리씨, 요즘 아빠에게 뭔가 힘든 일이 있을까?”

‘그런 걸 제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서요.’ 대신 “글쎄요......” 하고 말을 흐렸다.

“아줌마가 아빠를 도와주고 싶은데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면 좋을까? 자존심 상해 할 수도 있는 부분이라 조심스럽게 하고 싶어서 그래.”

아니 뭐가 이렇게 다 오픈형 질문이야. 나는 그냥 ‘네’, ‘아니오’로만 대답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또 ‘글쎄요’가 나왔다.

“우리씨는 내가 아빠와 어떤 관계가 되길 바라요? 우리가 잘 되길 응원해주고 있나요 아님 마음이 좀 그런가요?”

미용실이 원장님이 아니라 상담실 선생님이 정말 그녀에겐 더 잘 어울린다니까.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와중에 아빠의 말은 이어졌다.

“그런 말이 있잖아, 왜. 여자는 곰보다 여우라고.”

(네에? 이건 또 무슨 소리세요.)

“사람이 너무 곰 같아도 재미가 없잖아. 꾸밀 줄도 모르고 순해서, 늘 한결같고. 뭐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닌데, 왠지 슬슬 흥미가 없어지더라고. 만나도 좋은지 모르겠고.”

(그러세요, 잘 노는 여자가 좋으세요. 아빠는 그런 타입이구나.)

그녀와 잘 되지 않은 게 기쁘면서도, 한편 아빠가 더없이 속물처럼 느껴졌다. 그래, 아빠도 취향이란 게 있겠지, 하며 받아들여 보려고 애썼다.

“서로 외로울 때 한 번씩만이라도 만나자고 매달리는데, 내가 그만하자고 했어. 그만 보자고.”

(와아...... 저기, 아빠가 그 정도까지 괜찮은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결국 아빠가 그녀를 떼 놓은 것 같아서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때요, 머리가 마음에 들어요?”

오랜 시간이 걸려 레게 머리가 완성됐을 때, 그녀는 뿌듯한 듯 물었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그 머리를 해주고 그녀는 며칠간 손목을 쓰지 못했단다. 계속 보호대를 하고 다녔었다고. 옆에서 엄마 힘들까 봐 끙끙대던 아이는 나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싶었다. 사람들이 길에서 나만 쳐다본다는 이유로 나는 2주 만에 레게 머리를 풀어 버렸다.

차 안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앞만 보고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이 자주 떠올랐다. 그것은 내가 실제로 본 모습 같기도 하고, 내가 상상해 낸 장면 같기도 했다. 자꾸 생각하다 보니 이야기가 멋대로 연결되어 이어지기도 한다. 미용실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늦은 밤 집에 돌아가려는데 지독한 외로움이 갑자기 급습하고, 아빠를 부르고 싶지만 못 부르고 하염없이 운전석에 앉아있는 (곰 같은) 그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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