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빠의 여자들
“우주는 갓김치를 잘 먹고, 너네 아빠는 물김치 좋아하지, 너는 뭐 좋아하냐?”
“전 다 잘 먹어요.”
“말해봐, 먹고 싶은 거 다 골라. 잡채 이거 금방 나왔다, 맛있겠다. 요새 아빠는 돈 좀 버니?”
“...... 그렇죠, 뭐.”
“필요한 거 있음 언제든 이모한테 와. 이모가 도와줄게.”
시장에 가면 이모가 있었다. 이모는 동네 시장 한 모퉁이에서 큰 반찬가게를 했다. 튼튼하고 기운이 세 보이는 사람이었다. 엄마 아래로 태어난 3명의 딸 중 가장 호탕했다. 내가 반찬을 사러 가면 검은 봉지 안에 반찬을 다섯 팩씩 쑤셔 넣었다. 10팩이 담긴 두 봉지가 만들어지고 나머지 한 봉지엔 손잡이가 끊어질 듯 팽팽해질 때까지 김치를 담았다. 그렇게 세 봉지가 만들어지면 나에게 건넨다.
“오천 원만 내.”
양은 매번 조금씩 다르지만 이모는 늘 오천 원만 받았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너무 많이 해서 이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렸을 때 우리 집만큼이나 자주 들락거리던 곳이 이모네 집이다. 아빠 사업이 망하고 오갈 곳 없던 우리를 위해 집의 한 공간을 내줬던 사람도 이모다. 이모네 딸은 내가 엄청 울리고 놀려 먹었었는데, 학교에서 줄곧 반장을 한다고, 이번엔 전교 회장이 됐다고 이모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주는야, 쪼끄만 게 뭔 맛을 안다고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갓김치를 먹어?”
“그러게요.”
“아주 웃긴 애야, 우리 우주는 늘 딱하다. 요샌 오지도 않고. 얼굴 본지도 오래됐다.”
이모는 엄마가 갑자기 쓰러지고 그대로 저세상 사람이 된 것을 아빠 탓이라 했었다. 엄마가 늘 이모 앞에서 아빠 욕을 했던 걸 기억한다. 이모를 만날 때 엄마가 한 번이라도 아빠 칭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더라면, “이모 그건 오해예요, 엄마에겐 명확한 병명이 있는데요.”라고 말해줬을 텐데 나는 그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아빠는 매번 빼먹지 않고 명절 때마다 이모네 집으로 과일상자를 보냈지만, 아빠가 뭘 받아오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럴까 이모를 만나고 와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이모에게 반찬 사러 가는 횟수를 조금씩 줄이다가, 더 이상 그곳에 가지 않게 된 건, 집에 반찬을 만들어 놓고 사라지는 그녀가 나타나면서부터다.
“카레에 왜 피망이 들어가?”
“넣으면 들어가는 거지.”
“카레에 피망 들어가면 맛없는 것 같아.”
그녀가 만든 카레에 피망이 들어가 있는 것이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 우주도 이상한 모양이다. 카레는 없어졌는데 드러난 바닥 위로 남겨진 초록색 피망 조각들이 왠지 난처해 보였다. ‘아, 이것 참 미안합니다, 이곳에 있어서.’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반찬을 뭘 이렇게 많이 만들고 가셨데. 오, 버섯도 있네. 그런데 왜 맨날 이렇게 반찬만 해 놓고 사라지신대.”
매주 토요일, 집에 돌아와 냉장고 문을 열면 플라스틱 통 6개에 각기 다른 반찬이 들어가 있었다. 안의 내용물은 어쩌다 한 번씩 달라질 뿐 거의 같은 반찬이었다. 카레는 고정 메뉴였다. 반찬이라는 게 만들고 놓고 나면 별것도 아닌데 막상 또 하려면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라(그런 걸 알아버리고 말았다, 집 나가 자취를 하고 보니), 우리를 위한 마음이 고마웠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반찬들은 늘 차가웠다. 전자레인지에 다시 데워도 어딘가에 지워지지 않는 차가움이 남아있었다. 어디서 기인한 차가움일까 오래 생각했지만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삐뚤어진 내 마음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요리 솜씨가 썩 좋은 것 같진 않더라. 요리는 엄마가 기가 막히게 잘했지. 그래도 아줌마 마음 씀씀이가 참 예쁘지.”
“네에.”
“그런데 너네들이 어렵고, 불편하데. 그래서 자주 안 마주치려고 하는 것 같아.”
아빠의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우리가 싫데요?’는 삼키고 “거긴 자식이 없어요?”로 라고 뱉었다.
“아주 어렸을 때 떨어지고 같이 안 사는 모양이야.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 뭐.”
우리가 함께 만났던 그때, 뭐가 그녀를 불편하고 어렵게 했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주야 성격이 원체 저 모양이라, 내색 안 하고 숫기 없고 뭐 그랬다 쳐도, 그래도 나는 그렇게 못하진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내 인상이 그렇게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는데. 직장에서도 나는 싹싹하고 잘 웃는다는 평가가 많은 쪽인데.
처음 본 그날, 그녀는 예뻤다. 고상했다. 세련됐고 옷도 아주 잘 입었다. 특히 스카프를 잘 골랐다. 민트가 메인 컬러였다. 화장도 잘 먹어서 피부가 뽀얗게 보였다. 집안일 같은 건 안 할 사람으로 안 보였다. 왜 이렇게 예쁜 아줌마가 우리 아빠를 만나지 생각했고, 반대로 아빠가 아줌마를 고른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잘 놀 것 같았다. 밀당도 잘할 것 같고, 애교도 많을 것 같고, 무엇보다도 여우 같아 보였다. 드디어 여우가 나타난 것이다. 내 쪽에선 엄마라고는 부를 수 없을 것 같았다, 언니라고 부르는 쪽이 그나마 쉬울 것 같았다.
“안녕, 잘 부탁해요.”
상큼했다. 인정한다.
잘 부탁한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 그녀를 또 본 건 두세 번 정도였다. 그 두세 번 역시 길게 보지도, 길게 말을 섞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무슨 근거로 우리가 힘들다는 건지 나는 무척 알고 싶었다.
나와 동생이 없을 시간에만 몰래 집에 다녀가는 우렁각시 때문에 아빠는 단무지 생활을 청산했지만, 우리가 없었다면 그냥 각시가 될 수 있는데 우렁각시 역할밖에 못 주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결국 그 우렁각시는 빠르게 아빠를 떠났다. 집에는 다시 먹을 것이 없어졌고 나는 나 편하자는 일념 하나로 우주 손을 붙들고 시장으로 나섰다. 저 앞에 반찬가게가 보이는데 마음은 뒷걸음질 치고 싶었다.
“어머, 이게 누구야, 우주 아니야. 이놈의 자식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와아아!!! 우리야, 너도 차암 그렇다...... 어떻게 살았어?”
“죄송해요.”
“아빠는 요새 돈 버니? 이 딱한 새끼들..... 뭐 먹을래? 그래 뭐 싸줄까?”
“이모, 이거 카레 주세요.”
“그래, 카레 줄까? 이모네 카레 맛있지? 니네 엄마가 해주던 카레보다 맛있지?”
“(웃음)네에......”
“우주는 뭐 줘? 우주도 카레 좋아?”
“네, 저는 갓김치요. 카레랑 갓김치요.”
“목소리 크게 말해 이 녀석아, 들리지도 않아!”
“저도 카레랑 갓김치요.”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피망은 들어있지 않은, 이모가 맛있다고 자부하는 카레가 내 손에 들렸다.
‘따뜻한 카레 먹자, 우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