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빠의 여자들
고양이를 집에 데리고 오기 위해서 ‘고양이를 기르고 싶은 이유’라는 제목으로 아빠에게 긴 편지를 썼다.
아빠는 개나 고양이를 질색했다. 아니 개나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을 질색했다. 그들을 인간의 방에 들이고, 똥오줌을 치워주고, 껴안고 자고, 침대 한편을 내어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은 동물 위에 군림하고 있으며 동물은 매우 천한 것인 양 말했다.
고양이는 외로움을 타지 않는 독립적인 동물이라 개처럼 늘 붙어 있지 않아도 돼요. 똥 오줌은 모래 위에만 싸고 개보다 털이 안 빠져요,라고 편지에 적었다. 정확한 사실을 적기보단 아빠의 마음을 움직이기는 게 중요했다. 꼭 데려오고 싶다고 한 번만 허락해 달라고 사정했다.
아빠의 무쏘 차에 태워 대전에서 데리고 온 고양이 ‘곤’은 그렇게 우리 집에 왔다. 아빠는 단 한 번도 본인의 방에 곤을 들이지 않았다. 들어가지 말라고 하면 더 들어가고 싶은 건 인간이나 고양이나 똑같은 건지 잠시 문이 열린 기회를 노려 아빠 방에 들어간 곤은 아빠의 손에 꼬리부터 잡혀 질질 끌려 나왔다. 인간의 음식에 손대지 않는다고 말해도 치킨을 배달시킨 날에는 곤은 작은 방에 갇혀 있어야 했다. 아빠는 아침마다 박스 테이프를 길게 잘라 곤의 몸에 붙였다 뗐다를 반복했다. 털이 빠지는 게 싫어서 라고 했는데 정말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구나 난 생각했다. 미리 털을 뽑는다고 빠질 털이 안 빠질 리 없지 않은가.
그래도 곤은 아빠를 사랑했다. 아빠가 소파에 누워 낮잠을 자면 늘 배 위에 올라가 골골송을 불러줬다. 그위에서 잠도 청했다. 아빠는 무겁고 싫다고 투덜거렸는데 어느 날 곤이 깰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기다려주는 아빠를 보기도 했다.
곤은 내가 집에 없을 때 아빠에게 구박을 받는 것 같았다. 아빠의 작업 도면 위를 뛰어다니고 아빠의 나무와 꽃들을 물어뜯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똥, 오줌을 치워도 주길래 아빠의 마음이 변해가나 했는데 얼른 딴 집에 보내라고 나에게 긴 긴 편지를 썼다.
길에서 주인과 산책하는 강아지만 마주쳐도 난 곤 생각이 나서 마음이 무거워졌는데 아빠는 보라고 저렇게 밖에서 산책시키고 나서 저 더러운 채로 집안을 헤집고 다니는 거 아니냐고 혀를 쯧쯧 찼다.
그녀와는 아빠가 새로 이사 간 천안 집에서 처음 만났다. 집 분위기와는 너무 다른 고풍스러운 의자 위에 어제도 앉아 있던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이 음산한 집에, 예전 아파트 들어갈 때 샀던 고급 이태리 가죽 의자와 웅장한 식탁이 옮겨져 있었다. 이보다 다 더 안 어울리는 인테리어는 없었다.
그녀는 그 식탁 위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우리씨 나 담배 한 대 펴도 되죠.”
안 될 건 없었지만 내 앞에서 굳이, 라고 생각했다. 내가 담배를 피우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오래전 담배를 끊은 아빠의 집엔 대리석으로 만든 하얀 재떨이가 놓여 있었다.
딱히 할 일도 할 말도 없어 옆에서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며 앉아 있던 내게 그녀가 윙크를 했다. 그리고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달큼한 향이 나는 담배 연기가 공중에서 퍼졌다. 어떤 사람이 내뱉느냐에 따라 담배 연기의 냄새는 달라지는 것이던가. 유난히 달았다.
“우리 사과 먹을까요?”
그녀는 갑자기 사과를 뽀득뽀득 씻어오더니 자르지도 않은 사과 한 개를 들고 껍질 채 앙 하고 물었다.
“내가 과일을 엄청 좋아해요.”
우리 집에 지금까지 과일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신기한 사람이 왔네 생각했다.
“아빠가 성격이 참 대단해요?”
음, 질문인가. 아니겠지.
나는 멋쩍게 웃었다. 저는 안 그래요,라고 마음속으로 이야기했는데 그녀가 따라 웃어줬다.
“나는 강아지 두 마리 하고 살아요. 강아지가 내 가족이지. 항상 같이 다녀요, 잠도 같이 자고. 사람보다 더 큰 정을 나눌 수 있는 게 신기하죠?”
흠, 아빠가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 더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텐데.
그날 처음 나눈 대화를 끝으로 그녀를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 분은 요새 잘 안 보이네요?”
“응, 요즘 안 만나.”
헤어진 이유은 듣지 않아도 내 생각이 맞을 것 같았다.
개와 함께 한 침대에서 자는 사람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방에 데리고 들어오는 것도 싫은 것이다. 내가 잘 이불에 털을 묻히고 엉덩이를 비비는 게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아니이 아무리 그래도 잠은 따로 자야는 게 맞는 거 아니냐?”
밑도 끝도 없는 아빠의 말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아, 강아지랑.
나는 개 때문에 싸우는 두 사람을 상상했다. 사람보다 더 믿을 수 있는 존재인 강아지와 함께 자야겠다는 그녀와, 방에는 둘 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빠의 모습을.
담배와 사과와 개를 좋아하는 그녀가 나는 싫지 않았던 것 같다.
“이거 사이즈 맞으면 가져가서 입어 보던지.”
“이게 뭔데요?”
큼지막하고 고급진 상자를 내 앞에 밀었다. 포장지를 풀어보니 화려한 패턴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브라와 팬티가 곱게 앉아 있었다. 총 5세트.
“홈쇼핑에서 보고 하나 사놨었는데, 이제 줄 사람도 없고 너 입어.”
“와우, 앙드레 김은 속옷도 만들어요?”
아빠는 이렇게 비싸고 화려한 속옷을 여자에게 선물하는 사람이구나. 뭔가 징그러운 기분. 나는 뭐 대타지만 그래도 됐다고 하긴 싫었다. 브라에 뽕이 빵빵하게 들어갔는데 이런 건 입어 본 적이 없었다. 이런 야한 컬러도. 사이즈가 안 맞아도 몸을 옷에 맞추면 되지, 생각하며 가방 안에 고이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