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빠의 여자들
“아빠 대리운전 사업한다길래 도와주러 왔지, 내가 영업 하나는 또 잘하잖아. 내가 가게들 싹 돌면서 박하사탕도 채워주고 라이터도 채워주고 다 한다, 얘. 니 아빠는 그런 거 못 하니까. 그래도 야, 문전박대당하는 경우가 허다해. 사람들이 착한 것 같아도 그렇다? 그래도 해야지 뭐 어떡해. 그런데 참, 우리 너 잘 지냈니?”
아빠가 한다는 새로운 사업과 아빠가 산다는 새로운 집이 마음이 들지 않아 오랜 시간 그 집에 가지 않은 사이, 돈 많고, 한라봉을 좋아하던 제과점 여사장님이 그 집에 들어와 있었다. 오랜만에 본 그녀는 예전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원체 체구가 작은 사람이었지만 예전보다 더 작아진 것 같았다. 비싸 보이는 옷과 번쩍거리는 목걸이 팔찌로 꾸미고 다니던 모습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헐렁한 칠부바지를 입고, 닦아도 닦아도 잘 지워지지 않는 이 집 화장실의 묶은 때를 벗겨 내고 있었다. 이마에 내려앉은 송골송골한 땀이 곧 후드둑 떨어질 것 같았다.
“갱년기야, 요새 이렇게 땀이 나네. 아우 더워.”
짧은 단발머리를 검정 고무줄로 야무지게도 묶었다.
얼마 전 아빠가 멋쩍게 말했었다.
“아줌마가 갑자기 전화가 와서, 갈 데가 없다고 하는 걸 일로 들어오라 했지. 지금 죽으러 간다는 데 어떡해. 제과점 결국 남에게 다 넘겨주고, 혼자서 전국 산이란 산은 다 누비며 절에서 얹혀살다가, 돈도 다 떨어지고 하니 내가 생각났나 봐.”
당신 돈 없다고 뻥 차고 떠났던 건 생각이 안 나시나 보네.
“그 잘 나가시던 분이 이런 데서 잘 살까요?”
나는 이상한 이 집의 구조를 스윽 둘러보며 말했었다. 방마다 높이가 달라 높은 턱을 올라 다녀야 했다.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절대로 좋아지지 않을 것 같은 집.
예상외로 아줌마는 꽤 적응을 잘했는데 그게 가끔씩 슬퍼지기도 했다. 주차비 천 원을 아끼려고 시장에서 장 보면 악착같이 주차권을 챙겨놓고, 나보다 더 싼 화장품을 쓰고, 본인의 차는 기름을 많이 먹는다고 10년도 넘은 아버지의 똥차를 타고 다녔기 때문이다. 나는 슬슬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라는 호칭을 새 사람에게 줘야 할 시기가 왔다고. 그러다 머리를 쓴 건 엄마가 아닌 ‘어머니’였다. 하나뿐인 내 엄마를 ‘엄마’로 지키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아빠도 ‘아버지’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나의 어머니가 된 그녀는 말이 많았다. 설움도 많고, 한도 같이 많았다. 술도 담배도 많이 있어야 했다. 괴로웠기 때문이다. 슬펐던 그녀의 과거를 오래도록 듣고 있다 보면 세상에 행복한 사람은 극히 적고, 이런 불행한 사람들이 모이고 모여서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술에 깊이 취하면 울고 소리 지르고 잠을 자지 않았는데 옆에 있는 사람도 같이 밤을 새야 했다. 그래도 정신적으로 허약한 그녀를 위해 기꺼이 같이 술잔을 들고, 앞에다 재떨이를 옮겨줬다.
아빠는 아침마다 그녀를 산에 데리고 다니며 함께 꽃도 만지고 나무도 만지고 좋은 공기를 듬뿍듬뿍 마시게 하면서 슬픈 기억들을 지워주려 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 보답으로 그녀는 보온병에 진하게 타 온 믹스커피를 아빠 앞에 따라 주었다.
한편 그녀의 내숭 없고, 필터 없이 가슴을 콕콕 찌르는 직설적인 화법을 감당하지 못한 사람은 우주였다. 답답하고 말이 없는 우주를 가장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 또한 그녀였다. 우주는 어느 날, 나중에 늙고 병들면 내가 알아서 모실 텐데 여자가 왜 필요하냐고 아빠에게 쏘아붙였다. 우주가 그런 용기를 내는 것을 나는 처음 보고 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며 아빠와 그녀와 함께 살던 우주는 매일매일 조금씩 말라갔다. 얼굴이 곧 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주, 얼른 취업해서 거기서 나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런 말 밖에 없어서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에게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고 말을 꺼내니, 그 남자를 이 집에 데리고 와서 그런 거라고 답했다. 니 아빠 사는 꼴을 보고 실망했을 거라고. 보통 아줌마들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사람의 외양만 보고도 얼른 알아차리는 것. 집안의 환경이라던지, 어떻게 살아왔다던지.
남자 친구를 이 집에 데리고 왔던 날, 그녀는 누추한 집이지만 곳곳에 예쁜 꽃과 화분을 놓으며 꽤 신경을 써줬었다. 남자 친구는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우와, 이런 집에 비데가 있어.”라고 놀라며 말했다. 그때 느꼈어야 했는데. 여기 데리고 온 건 실수였다는 것을.
누가 입은 건지 모를 찜질복을 속옷도 안 입은 채로 걸치는 게 꺼림칙하다는 사람이었는데, 우리는 그를 근처 찜질방에 데려갔다. 찜질복을 넷이 나란히 입고 야외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처음 보는 아빠와 같은 목욕탕에 있는 게 불편할 거란 생각까진 미처 하지 못했다.
나는 아무런 이유도 듣지 못한 채 그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는데, 그 이유가, 그러니까 그가 나와 더 이상 사귈 수 없는 이유가, 내가 본인과 너무 다른 돈 없는 집 딸이라서 라는 게, 이렇게 명확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 부족함이 내 모습 어딘가에 늘 붙어 있을 것 같아서, 아니 가슴팍에 새겨져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어디선가 그를 마주치기라도 할까 봐 늘 불안했다.
아빠의 대리운전 사업은 본인의 원래 사업만큼이나 잘 되지 않았고, 돈이 없자 둘은 자주 싸우기 시작했다. 그들의 싸움에 대해선 눈곱만큼도 알고 싶지 않았는데 그녀는 늘 내게 전화해서 싸움의 발단에서부터 결말까지의 전 과정에 대해, 아빠가 하고 다닌다는 멍청한 일에 대해 일일이 설명했다. 매일 우울한 전화를 받으며 집에 조금씩 돈을 부치다가 자신이 너무 불행한 것 같아 한국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회사에서 발령이 났어요. 호주에 새 매장이 오픈하는데 거기에 매니저로 좀 가달라고 해서...... 일 잘하니까 뽑힌 거라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가려고요.”
아빠는 내가 자랑스러운 듯 보였다.
멜버른에 도착해서 직장을 구하려고 열심히 이력서를 돌리고 다녔다. 집에는 일부러 연락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녀에게 카톡 메시지가 왔다. 전화기로 글자 입력하는 걸 질색하는 사람인데 ‘아빠가 연락 없다고 걱정해. 별일 없는 거지. 여긴 오늘 아침에 첫눈이 조금 왔어.’라고 써 보냈다. 말을 이렇게 간지럽게, 곱게 못하는 사람인데, 옅은 애달픔이 느껴졌다. “머리카락 바닥에 떨어지니까 이렇게 맨날 꽁꽁 묶고 다니는 거야.”라고 말하며 김치찌개를 푹푹 끓여내던 그녀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이따 저녁에는 출국 전 그녀가 가방에 넣어준 김을 꺼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잘 지내셨어요? 아, 예정대로 한국에 못 들어갈 것 같아서요. 여기 매장이 조금 안정돼서 다음엔 일본 도쿄에 있는 매장으로 가라고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오랜만에 그녀와 통화를 했다.
“너네 회사는 왜 그렇게 너를 뺑뺑이 돌린다니?”
“그러게요...... 아!, 아버지는 언제 멜버른에 오실 수 있데요? 비행기 티켓 예약하게요.”
“우리야, 그 돈 그냥 나 줘. 아빠 지금 호주 여행할 때가 아니야. 아빠 일 없어서 펑펑 논다. 월세도 몇 달 못 냈고 가스랑 수도세도 안 내고 저러고 다녀 지금. 니 아빠 딸 덕분에 호주를 다 가본다고 신나 하는데 지금 그럴 때가 아냐. 너 돈 모은 걸로 생활비 하게 보내줘 그냥.”
아빠에게 어디를 구경시켜줄지 계획을 적어 본 날은, 내가 사입을 바지를 고를 때 보다 훨씬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빠 목소리는 듣지도 못했는데 미안하다는 말 정도는 듣고 싶었다. 속이 많이 상했다.
도쿄에 와서도 그녀는 내게 자주 전화를 했고 나는 그 전화가 몹시 괴로웠다. 마치 나를 괴롭히기 위해 있는 존재 같았다. 몸은 분명 멀리 떨어져 있는데 정신은 왜 이토록 가깝게 느껴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공중전화 박스 안에 쪼그리고 앉아 오래 울었다.
급기야 아빠와 각 방을 쓴다던 그녀는 다시 외로워진 삶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상처 투성이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아빠를 찾아왔지만 결국 아빠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빠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돈이 없었고, 돈이 없으면 금방 무너질 얄팍한 피난처였던 것이다.
아빠가 덜 이기적이고, 보통 (평범한) 사람들과 비슷하게 돈을 쓰고 사고하는 사람이었다면, 결말이 달라졌을까. 그녀는 4년을 아빠와 함께 살다가 특별한 말 없이 집을 떠났다. 들어올 때처럼 나갈 때도 자동차 한 대 외엔 일체 짐이 없었고, 들어올 때처럼 나갈 때도 아주 조용하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