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빠의 여자들
“왜 그렇게 울어. 무서운가 보네...... 다 잘 될 거야. 그럼 그럼 잘 되지.”
저편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누워 있었다. 뇌에 생긴 종양 제거 수술을 받으러 수술장으로 옮겨지는 중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수술 준비를 하는데 나보다 집에 있는 고양이 걱정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서운해서 자꾸 눈물이 났다. 내가 우는 실제 이유를 그녀는 몰랐다.
수술실 자동문이 닫히면서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온 건 그녀가 입고 있는 노란색 바지였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는지 아침에 입원실로 걸어 들어온 아빠가 빨간색 두툼한 솜털 잠바를 걸치고 있던 게 생각났다. 총각 때부터 입었다는 그 잠바. 참으로 컬러풀한 커플일세, 마취 주사로 깊은 잠에 빠지기 전 마지막으로 생각한 건 그거였다.
왼쪽 손의 손가락이 하나 없는 그녀는 아빠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손가락이 하나 없어도 아빠가 봐야 할 전기 도면의 치수를 미리 재서 주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손가락이 하나 없어도 매일 빠지지 않고 가는 스포츠 댄스와 탁구 수업에서는 늘 우등생이었다. 하지만 남들은 다 가졌는데 나만 못 가졌다는 그 사실 때문에 그녀는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고, 내게 웃어주지까지 아니 그전에 내 눈을 바라보며 말을 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떻게 해서 그녀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했지만 아빠 사무실에 비치된 그녀를 위한 핑크색 방석과 귀여운 동물 모양의 털 슬리퍼를 발견하곤 둘 사이를 짐작했다. 아빠는 그녀의 책상 자리에만 특별히 전기난로를 놓아주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인 듯했다.
“어렸을 때 아줌마네 엄마가 집 밖에도 못 나가게 했데. 집안 흉이라고. 그래서 맨날 숨어서만 지내다 보니 저렇게 좀 사교성이 없어. 결혼은 했는데 자식 낳기 전에 남편이 먼저 저세상 가고 혼자서 아껴가며 아등바등 살아온 모양이야.”
“얘기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데. 그게 또 무슨 그렇게 흉이라고 그래요.”
“자식이라도 있었으면 너희들 대하기가 어렵지 않을 텐데. 조카는 있는 모양인데 느낌은 또 다르겠지.”
아빠는 우리와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그녀의 성격이 못 내 아쉬운 듯했다.
오랜만에 아빠를 만나러 가서 같이 식사를 하면 아빠는 꼭 그녀를 불러냈다. 그녀는 한사코 거절하며 둘이 먹으라 했지만 결국은 끌려 나왔다. 나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늘 같이 먹겠다 했다. 나한테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고 어려운 기색을 표출하는 그녀 앞에서 나는 원치 않게 싹싹하고 붙임성 좋은 딸 역할을 맡아야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렇게까지 노력해야 하나 하는 서글픔과 함께, 우리 세 명 가족의 일엔 꼭 그녀와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아빠에 대한 원망이 더해졌다.
감기몸살이 심하게 걸린 아줌마의 집으로 직접 병문안을 간다는 아빠는 굳이 나에게 동행을 요구했다. 아플 때가 가장 서러운 때니까 우리라도 가줘야 한다고. 그녀의 집을 향해 운전을 하던 아빠는 갑자기 큰 화원 앞에서 차를 멈췄다. 지금 어디 가고 있다, 어딜 들렀다 간다 이야기를 안 하는 사람이다. 급하게 화원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엄청나게 큰 프리지아 꽃다발을 손에 들고 나왔다.
“우리야, 이거 니가 샀다고 하고 아줌마 줘.”
“네에?.....”
기분이 깨끗하지 않았는데 난 또 그렇게 했다.
“안녕하세요, 몸이 편찮으시다 해서 이렇게 또 병문안을 왔어요. 아빠가 걱정 많이 하시던데. 얼른 나으셔야 할 텐데, 병원은 잘 다녀오셨어요? 이 꽃은 어디에 둘까요?”
사회에서 배우는 것들을 이렇게 잘 써먹는다. 싫은 건 감추고, 싫어도 좋은 척하는 걸 배웠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또 꽃을 사 왔다고 비싼 꽃 왜 자꾸 사 오냐고 말했다. 아빠는, 모든 여자는 꽃을 주면 좋아한다고 알고 있다. 대체 누가 가르쳐 주는 거지, 그런 잘못된 정보는. 정작 나는 받아 본 적 없지만, 나보고 너는 꽃을 좋아하냐고 아빠에게 질문 조차 받아 본 적이 없지만, 나는 아빠가 꽃을 사러 갈 때가 꽃이 가장 싫다.
그녀가 나에 대한 경계를 풀고 내게 친근감을 표시하기 시작한 건 내가 병원 신세를 지게 되면서였다. 내가 병에 걸렸다고 하니까 내게 다가왔다. 입원하고 있는 곳까지 몇 번이고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줘서 나는 근처 비싼 일식당으로 데리고 가 초밥을 샀다. 아빠는 나랑 둘이 이 집에서 초밥을 먹을 때 보다 아줌마까지 끼어 셋이 먹을 때 기분이 훨씬 좋은 듯 보였다. 그런 게 너무 티가 나는 사람이다.
“나는 솔직히 처음에 우리씨보다 우주씨가 좋았어요. 말도 별로 없고 수줍어하는데 사람이 순수해 보이고 믿음직해 보이고. 가끔은 좀 귀엽기도 하고.....”
“아..... 네에.”
“우리씨는 좀 뭐랄까 적극적이고 나서는 성격 같아서 처음에 좀 경계했어요. 하하.”
망치로 댕 하고 맞은 느낌. 내 노력은 그렇게 과함이 되어 상대를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던 거구나. 우주는 늘 그랬듯 둘 사이를 위하여 어떤 노력도, 거들지도 돕지도 않았다. 아무 짓 하지 않아도 애쓴 나보다 큰 점수를 받고 있었다.
종양 제거 수술이 잘 끝나고 두어 달 회복기를 가지며 그녀와 나는 더욱 가까워졌고, 가끔은 내게 선물도 보내고 이따금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도 보내왔다. 오랜만에 아빠 집에 가면 그녀가 만들어 준 것 같은 미역국이나 밑반찬 같은 것들이 냉장고에 들어 있었다. 어쨌든 아빠가 잘 먹고 있으니 그걸로 됐다 생각했다. 그냥 이렇게만 지내주면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아 나는 그녀의 긴 전화를 받았다.
“우리씨 내가 이야기할 데가 없어서 또 이렇게 여기다 이야기를 하네.”
각오하고 들었다. 아빠의 급한 성질, 험한 운전, 돈 쓰는 방식, 하고 싶은 건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심보, 그런 건 뭐 이제 새롭지도 않았다.
“내가 좀만 바른 소리를 하면 밥 먹다가도 숟가락을 홱 던지고 그대로 나가버려. 식당에서 사람들 다 쳐다보는데 창피해서 내가 많이 울었어. 사람들이 다 그래, 저런 사람이랑 왜 만나냐고. 나 얕잡아 보는 건가, 우습게 보는 건가 싶어. 아빠는 맨날 작게나마 식 올려서 같이 살자 하는데 나는 그러고 싶지가 않아요.”
“제가 드릴 말씀이 없네요. 아빠가 참......”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말 몰랐다. 아빠가 식당에서 여자 혼자 두고 나가는 사람인지까지는 미처 몰랐다. 미안해서 잠을 설쳤다. 이틀 후 나는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빠랑 그냥 헤어지시라고. 그게 나을 것 같다고. 아빠를 바꾸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빠를 버리라고 하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느 날은 술을 힘을 빌려 아빠에게 어렵게 말해보았다.
“그냥 연애만 하시지 그래요. 외로울 때 만나 밥이나 먹고. 꼭 결혼 안 하셔도 되잖아요.”
“같이 안 살고 연애만 하면 돈이 많이 들어. 데이트할 때마다 돈 내야 하고 선물 사줘야 하고. 돈이 만만치 않게 들어.”
예상치 못했던 대답. 사랑이 돈으로 사는 것이었던가. 찝찝한 기분에 괜한 질문을 했다 싶었다.
그녀는 더 이상 내게 따로 연락을 해오지 않았고, 아빠 사무실에서도, 아빠 집의 냉장고에서도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아빠는 빨간색 사브 중고차를 사다가 그녀에게 선물했었다. 1996년 스웨덴에서 태어난 소프트탑 컨버터블. 아빠랑 헤어지며 그녀는 차를 반납했다고 한다.
“빨간 사브 너 타고 다니라고 전화했지. 다음에 내려와서 끌고 올라가. 너 사브가 얼마나 좋은 차인지 모르지. 사브는 잘 사는 저어기 청담동 싸모님들이 제일 좋아했던 진짜 좋은 차야.”
아빠는 분명 차 이야기만으로 30분은 거뜬히 넘길 것이다.
나는 사브를 타고 다니면서 가끔씩 그녀를 떠올렸다. 수술실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곤 내가 우는 걸 걱정하던 모습. 아홉 개의 손가락으로 운전대를 잡고 씩씩하게 멋진 똥차를 운전하는 그녀의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