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두 상자

by 피츠로이 Fitzroy

사 년 전, 머리를 여는 수술을 앞두고 유언장 같은 걸 썼다. 돈이 많아서 누굴 나눠주려고 했던 건 아니고, 대출이 얼마 있는지, 보험은 어떤 걸 들어 놨는지, 적게나마 가지고 있는 돈은 어디에 어떻게 들어있는지 알리고 싶었다.

내 재산을 다 너에게 줄게 하고 쓸 수 있었다면 남편에게 줬을 텐데, 갚아야 할 돈이 더 커서 동생에게 주춤거리며 건넸다. 결혼한 지 일 년도 안 됐는데 큰 수술을 하게 되니 남편에게 이상하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동생은 그걸 받고 나에게 대출이 있다는 것에 놀랐던 것 같다. 나나 내 동생이나 간이 콩알만 해서 큰돈에 잘 놀란다. 없이 자라서 그런가.

나랑 남편은 둘 다 백수일 때 결혼했고, 양가 부모의 도움은 하나도 받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지만, 아예 줄 생각이 없었던 친정 아빠와는 달리, 시엄마는 500만 원을 보내며 도와주셨다. 그래도 돈이 모자랐던 우리는 대출을 받았다. 한 명은 무직이고 한 명은 외국인이라 이자가 제일 높은 카드론으로.

그래서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거냐면, 우리 아빠 얘긴데, 우리 아빠는 나에게 뭘 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나도 받는 방법을 잘 모른다.

수술이 끝나고 얼마나 지났을까, 남편이랑 일본에 다녀와 인천공항에 내려 수화물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빠에게 메시지가 왔다.

“대출 많이 받았니? 아빠 돈 조금 생겼는데 줄게, 갚아봐.”

아빠가 뭘 주겠다는 말을 스무 살 이후로 처음 들었다. 너무 적응이 안돼서 이 양반이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안 하던 짓을 다 하네, 걱정이 먼저 앞섰다. 그런데 나 대출 있는 건 어찌 알았냐 했더니 동생이 술 진탕 먹은 어느 날, 그런데 누나 대출 있는 건 아느냐고 했단다. 동생은 술을 먹어야만 아빠랑 이야기를 한다.

아빠가 돈이 생기면 어떻게 쓰는지 아는 남편은 일단 받아두고 조금씩 용돈처럼 돌려주라고 의견을 냈는데 나는 됐다고 잘라 말했다. 내 대출은 내가 갚는다 하고. 받으면 되는데 그냥.

언젠가 아빠 사는 천안 집에서 둘이 새벽까지 술을 마셨는데 술이 꽤나 취한 아빠가 자기가 2천만 원 정도 모아볼 때니 결혼식을 하라는 뜬금없는 소릴 했다. 우리가 결혼식을 안 했던 건 공장처럼 찍어내는 똑같은 결혼식이 싫어서였는데 아빠는 아무래도 그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나는 또 잘라 말했다. 결혼식 그거 안 한다고. 의미 없지 않냐고, 잘 알지도 못 하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재빨리 밥 먹고 사라지는 거 별로라고. 돈만 이라도 달라하면 되는데 그냥.

내가 아는 아빠는 2천만 원이라는 여윳돈을 수중에 둔 적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것을 장담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 준 건 어쩐지 고마웠다. 너무 취했던 건지 자기가 한 말을 기억도 못 하는 것 같은 게 문제지만.

세 번째 아빠가 나에게 뭔가 주려고 시도한 게 사과 두 상자다. 지난주 나에게 연락해 지인이 농사지은 사과를 싸게 5박스 샀는데 2박스 보내줄까 물었다. 지난주 나는 아빠한테 지금껏 살면서 한 번도 이야기하지 못한 ‘싫어요’라는 단어를 꺼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고, 미운 아빠만 생각하다 보니 내가 아빠에게 대체 뭘 받았나 서글픔에 휩싸여 있던 참이었다. 나 사과 두 상자쯤 받아도 되지 않나.

“보내주세요. 잘 먹어 볼게요.” 처음으로 그렇게 아빠에게 뭔가를 받겠다고 답했다. 평소의 나 같으면 됐다고 아빠 드시라고 했을 거다.

그렇게 해서 사과 두 상자가 회사로 도착했다. 도착한 사과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참, 그 뭐냐 순두부찌개에 든 순두부처럼 뭉글뭉글 해졌다. 아빠한테 사과 36알을 받았는데 3천6백만 원 받은 것보다 더 부자인 것 같은 마음. 아빠가 내게 사과 보내준 사실이 너무 기뻐서 막 떠들고 싶은데 남들에겐 너무 별게 아닌 일 같아 그건 못 하고, 다 같이 나눠 먹으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다녔다. 나 사과 많은데, 엄청 많은데, 사과 좀 같이 먹겠느냐고.


내가 스무 살 되던 해 엄마가 갑자기 떠났고 나는 아빠에게 뭐든 다 해주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아빠가 분명 이상한 사람이긴 한데 불쌍했다. 따져보면 나도 불쌍한데 그땐 아빠만 보였다.

아빠 대신 참 많은 것들의 주인이 되어 주었다. 유선 전화, 핸드폰, 인터넷, 자동차, 대출 등 내가 쓰지 않고 내 것이 아닌 것들을 내 이름으로 계약했다. 내 신분증 같은 건 진작에 내 손에 없었다. 내 손엔, 내 이름으로 날아온 미납/연체 고지서, 독촉장만이 있었다. 가끔은 돈을 제때 낼 수 있는 아빠를 골라 태어날 수 없었던 나를 탓해 보기도 했다.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하고 어느 날은 회사로 걸려오는 경찰의 전화 같은 것도 받았다. 아빠의 취미 생활을 위해 내 명의로 된 차도 3대쯤 굴리게 해 드렸다. 과속 과태료나 자동차세 체납 고지서 같은 건 남편에게 걸리지 않게 잘 숨겼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아빠에게 주는 역할을 맡아 해온 사람이었다.

“아빠한테 사과를 받은 게 왜 그렇게 기뻤을까요?”라고 물은 건 내 상담사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스무 살이 되니 아빠가 경제적 지원을 뚝 끊었는데 그게 참 힘들었거든요. 대학교 때 돈이 없어서 많이 굶고 다녔어요. 그게 너무 약이 올라서 난 당신에게 아무것도 안 받아도 잘 살 수 있다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게 지금까지 왔는데, 그런데 사과 받아 보니까요 이렇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빠한테 당당하게 뭐 받는 거,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상담 선생님과 헤어져도 되겠구나 생각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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