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늘 미안한 게 한 가지 있다.
엄마는 일찍부터 머리에 새치가 생겨서 염색을 하곤 했다. 비겐 크림톤을 찾아 주섬주섬 내용물들을 꺼내 놓기 시작하면 나는 오늘은 어떻게 빠져나갈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늘 안 보이는 뒤쪽 머리를 발라달라고 날 부르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게 너무 귀찮았다. 결국은 할 거면서 “아, 오늘 안 하면 안 돼?”라고 꼭 말했다. 결국은 할 거면서 예쁜 말과 표정으로 해주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다. 후회할 일은 어떻게 해도 생기는 것이다.
어제 만난 아빠는 코로나 때문에 미용실에 쭈욱 못 갔다며 허연 머리를 반쯤 내놓고 있었다. 염색약 사 오면 좀 발라줄 테냐 해서 이번엔 예쁜 말과 표정으로 그러겠다 답했다. 아빠 머리카락을 태어나서 처음 만져 보는 것 같았다. 기억에 없는 일이다. 아빠 머리 안을 처음 들여다봤다.
욕 많이 먹으면 안 늙고 오래 산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들어 본 거 같은데 그거 다 거짓말 같다. 내가 그렇게 흉보고 욕하고 다니는데 아빠는 너무 늙었다. 아빠가 늙어서, 노인이 된 거 같아서, 금방 죽을 것 같아서 슬퍼졌다. 내가 발라준 염색약은 흰색을 제대로 없애지 못했다. 아빠 피부가 너무 건조하고 약해 보여서 꼼꼼히 바르지 못했다, 아플까 봐.
아빠는 검은색으로 염색하는 걸 싫어한다. 새까만 것이 인위적이라서 싫단다. 그래서 아빠는 금발이다. 뒷모습만 보면 키 큰 서양인이다. 컬러를 잘 못 골라왔다며 너 써라 하고 준 블랙핑크가 모델인 오렌지색 컬러 염색약을 오래 보고 있다. 미운 사람 제대로 미워할 수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내가 안 변하는 건지, 아빠가 안 변하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