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좋아하세요?

주인공 '제제'가 나랑 닮은 이유

by 피츠로이 Fitzroy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라 생각되는데, 한동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주위가 점점 어두워지면 이제 곧 조용해지고, 모두가 잠들겠지라는 생각에 소름 끼치도록 강한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남들이 다 잠드는 그 시간에 왜 나는 못 자는 걸까, 정지되어 버린 것 같은 까만 밤은 진저리 치게 길었다.

9시 뉴스가 시작되면서 어김없이 내 방에 불을 끄러 들어오는 엄마에게 잠들 때까지만 책을 읽어 주길 부탁했다. 이건 예쁜 드라마나 동화에서 나오는 모녀지간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밤에 울다 지친 내가 선택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착한 딸은 일찍 잠들어야 하는 법. 아무리 책을 읽어줘도 잠을 자지 않는 딸은 본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나는 결국 잠든 척했다. 눈과 머리와 정신이 갈수록 또렸해 지는데, 내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 엄마가 쉬이 나가 다시 뉴스를 볼 수 있도록 연기를 했다. 실은 엄마 발에 매달려 제발 나가지 말라고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딸각하고 닫히는 방 문 소리와 함께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제발 잠들게 해 주세요.

안방에서부터 흘러나오던 텔레비전 소리가 꺼지고 전등 스위치까지 꺼지는 소리가 들리면, 컴컴한 방의 한가운데서 온갖 것들이 나타나 나에게 덤벼 들었다. 이래도 안 무서워 서로 내기라도 하는 듯.

나는 내가 못 자는 게 큰 잘못이라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당당하지 못하여 잠이 안 온다고, 밤이 너무 무섭고 길다고 엄마에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잠을 못 자는 어른은 있어도 불면증에 시달리는 여섯 살배기 꼬맹이는 없으니까.

나는 기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도를 하기 시작하면서 언제부턴가 잠을 자기 시작했다. 처음 기도를 하던 날 종교가 없던 나는 누구에게 기도를 해야 할지 난감했다. 저기요오- 로 시작한 내 기도는 나중에 하느님, 예수님, 부처님, 신령님 모두 다 불러 모으는 신의 잔치로 이어졌다.

지금 드라마에서 악몽을 꾼 오빠에게 책을 읽어주는 동생의 모습을 본다. 갑자기 심술이 난다. 왜 나는 여섯 살에 그 나이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눈치 보고, 늘 긴장하고, 걱정하고, 기도하고, 하고 싶을 말을 마음에 가득 담아둔 채 지냈던 기억만 많다. 그래서 심술이 난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으며 많이 울었다. 조숙한 '제제'가 나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왜 빨리 철이 들어야 했을까, 나는 왜 남들보다 그렇게 조숙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