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무나 보고 웃는다.

오늘의 행복

by 피츠로이 Fitzroy


비밀이 있는데 난 아무나 보고 웃는다.
나의 직업병이다.

본사 사무실로 출근한 지 둘째 날 팀장님이 날 불렀는데, 내가 돌아보자 그는 흠칫 놀라며, 그렇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너무 긴장했나 힘을 좀 빼야 하나 했지만 자동적으로 웃는 눈, 친절한 눈, 초롱초롱한 눈이 되는 건 내 마음대로 조절이 되지 않는다.
사회생활 13년 동안 10년 이상을 서비스직에서 일하다 보니 만들어진 습관이다.

오오래 전 마케팅팀에서 일하던 꿈도 열정도 많던 이십 대의 아름이는, 와,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만 보고 평생을 살아야 하나 아찔한 생각이 들어 사무실 출근을 그만둔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러 나가야지 마음먹고 ZARA의 판매 사원으로 취직을 한다.
다행히 그 직업이 나의 성향과 잘 맞았는지, 본사 아시아 담당 매니저의 눈에 금방 띄어, ZARA의 모든 직원이 저 직원처럼 스마일 할 수 있도록 트레이닝시키라는 과제를 한국 매니저에게 주고 떠났다.
나는 웃는 건, 그리고 남 얘기 들어주는 건 정말 잘할 수 있었다. 왜 멀쩡한 대학 나와서 그런 데서 일하냐고 할까 봐 매장에 아는 사람이 오면 피팅룸에 숨어 있어야 했던 게 유일한 안 좋은 점이긴 했다.

오늘 오후, 회사 탕비실에서 텀블러에 물을 채우고 있었다.

-아르르르르르음 매니저님!
-오 과자장님 흐흐 안녕하세요오
-누군지 알기도 전부터 왜 웃고 있어여. 난지 몰랐잖아. 하여튼 직업병이야.
-그르니까, 갑자기 아아 용은주 과장님 온다 온다 느낌이 확 왔는데요. 하, 그러니까 이게 진짜 직업병이에요, 아무나 보고 웃는 거. 늘 뭔가 준비되어 있는 거.
-대단해애, 사무실 생활 적응 좀 돼요?
-2주 차 해보니까 이제 쫌 적응돼요. 매장에 너무 오래 있었어서 하루 종일 앉아만 있는 건 힘드네요.

나는 오피스 직원으로 여전히 안 어울릴 수 있다. 그렇지만 모두에게, 공평하게, 밝게 웃는 얼굴로 인사하는 유일한 직원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생각에 잠시 행복했다. 그러니까 오늘의 행복의 ㅎ은 자뻑에서 나왔다.

매거진의 이전글아프게 아프게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