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무리에 속하든 가장 눈에 띄는 애

안 궁금한데 좋은 사람 #1 정겨움

by 피츠로이 Fitzroy

<안 궁금한데 좋은 인터뷰>


안 궁금한데 좋은 사람 #1 정겨움



어떤 무리에 속하든 가장 눈에 띄는 애


이직은 힘들다.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은 저 밑 발바닥에 깔려있는 에너지까지 끌어서 써야 할 만큼 되다. 그런데 나이는 서른 후반이고, 차장에서 사원으로, 사무직에서 매장직으로 이직을 한다면 잠시 일어났다 자세를 고쳐 앉아가며 들어야 한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한꺼번에 모아 쓰는 게 가능한지, 그리고 방전된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얼마큼의 회복의 시간이 필요한지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어느 자리에 있든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 되고 마는, 그중 가장 반짝이는 눈을 하고 주위 사람에게까지 좋은 에너지를 전달하고 마는, 그런 사람을 만났다. 우리가 가끔 마주치는 입 밖으로 내진 않지만 속으로 부러워하는 사람 말이다.



PART 1 “쉽게 좌절하는 편은 아닌데 살다 보면 쓰러지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에이미: 좋은 기운 받아 간다는 말 자주 들으시죠?, 지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듣는 겨움을 표현하는 말은 무엇인가요? 최근에 들었던 칭찬 중에 가장 기분 좋았던 건 어떤 건지도 궁금해요.


정겨움: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따뜻하다, 따뜻한 사람인 것 같다, 예요. 이직을 한지 얼마 안 됐는데 이곳은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문화가 굉장히 잘 자리 잡혀 있어요. 수평적인 구조이기도 하고요. 제가 어떤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하게 됐는데, 저를 전혀 모르는 팀원이 제가 일하는 모습을 자주 지켜봤었나 봐요. 일이 끝나고 나서 저에게 그런 피드백을 해준 거예요. 잘 알지는 못하지만 순간순간의 모습에서 좋은 사람인 게 느껴졌다고. 그런 칭찬이 자존감을 높아지게 하는 것 같아요. 피드백 문화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기분 좋았던 칭찬이었어요 근래에.


에이미: 저는 ‘너 붙임성이 있다’, 라는 말을 들으면 제가 서비스직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직업병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즉 훈련의 효과로 생각하는데, 겨움이 듣는 붙임성이 있다는 말은 어떤 이유로 나오게 된 걸까요?


정겨움: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외향적이었고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해요. 낯선 것에 두려움은 별로 없고 호기심은 많았어요. 나이가 먹으면서 새롭게 생기게 된 것도 있는데 그게 공감 능력인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어요. 누군가가 쭈뼛쭈뼛해하고 있으면 저 사람이 지금 난처한 걸까 말을 걸게 되고, 또 다 같이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고, 먼저 농담하고 장난치면서 분위기를 풀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더라고요. 오지랖이 넓은 거죠. 저는 내가 있는 공간이 분위기가 좋았으면 좋겠어요. 낯설고 딱딱한 분위기를 잘 못 참죠. 오해도 많이 받았어요, 나댄다고(웃음).


에이미: 예전에 겨움이 추천해준 책에서 인상 깊게 본 구절이 있어요. 타인은 내가 모르는 낯선 세계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세계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이방인들이다. 그리고 끝내 닿을 수 없는 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들과 관계를 잘 유지하고 좋은 평가를 듣는 겨움 같은 사람에게는 특유의 어떤 노력이 필요한 건가요? 남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나만의 주특기 같은 게 있나요?


정겨움: 저 노력 많이 해요. 상대가 힘들 때 생각나는 1번인 사람이 되기 위해 다른 것들 다 제쳐 두고 달려가는 경우도 많아요. 그 자리 뺏기고 싶지 않아서. 연락이 좀 뜸해진 것 같으면 먼저 연락하고, 친구가 좋아하는 걸 선물하기도 하고요. 어렸을 때 왕따도 많이 당해 봤는데 그런 과정에서 알게 된 것 같아요. 친구를 잘 사귀고 잘 지키고 또 잃지 않아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미움받고 배척당했을 때 태연한 척 지내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알기 때문에 누군가 그런 똑같은 상황에 놓인 것처럼 보이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도 해요. 아, 나 노력 안 하는 줄 알았는데 노력하네(웃음).


에이미: 반대로 남이 아닌 본인이 생각하는 나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자신의 어디가 마음에 드나요?


정겨움: 금방 회복하고 금방 일어나는 거요. 쉽게 좌절하는 편은 아닌데 살다 보면 쓰러지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래도 오래 힘들어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어떻게 하면 빨리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생각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일상을 채우려고 노력해요. 나를 구원해줄 친구를 찾아 나서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돌아와요. 빠르면 딱 하루 만에 괜찮아질 때도 있어요, 금방 힘을 낼 수 있는 내가 좋아요.



PART 2. “팀장님이 보기에 마음에 드는 리더십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에이미: 유에민쥔 이라는 중국의 예술가가 그런 말을 했데요. 태어난 순간부터 보면 지금이 가장 늙었지만, 죽음부터 역산해보면 오히려 이 순간이 가장 청춘이라고. 그래서 저는 모든 일에 늦은 건 없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하는데, 사회 초년생이 아닌 사회생활을 10년 이상씩 한 시점에서 이직을 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대부분은 현재 자리에 안주하려 하고 어떻게든 유지하려 애쓰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움이 이직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정겨움: 안주하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었고 누군가 그냥 여기 있어, 하고 잡으면 안 갈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일단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리고 이직을 감정적으로 하지는 말자는 어떤 다짐 같은 것도 있었고요. 회사를 다니면서 힘들었던 순간이 많았지만 찰나의 감정에 휩쓸려 충동적으로 이직하는 것만큼은 하지 말자 그랬죠. 이성적으로 잘 생각했고, 내가 더 성장할 수 있는 회사인지 천천히 고민했죠. 직급도 연봉도 다 낮아지는 상황도 감수할 만큼. 너무 다른 분야라 면접을 몇 번씩 거듭할수록 자신감보다는 두려움이 커지기는 했지만요.


에이미: 이전 회사의 차장으로서의 리더십과 현재 사원으로서의 리더십은 어떻게 다른가요?


정겨움: 차장이라는 자리가 중간관리자로서 꽤 중요한 역할이었어요. 팀원들과 팀장 사이에서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하는 데 저는 좀 팀원들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던 것 같아요. 팀원들의 마음이 더 이해가 되니까 팀원들의 목소리에 더 힘을 실어 주게 됐죠. 그게 아마 팀장님이 보기에 마음에 드는 리더십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회사에서는 일반 사원인데 지금 자리에서 리더십을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신뢰를 쌓을 수 있는 방법은 알아요. 이건 저만의 팁인데, 저는 제 고민을 먼저 말해요. 어느 자리에서든 늘 힘든 점은 있으니까. 내 고충을 말하면 상대도 자연스럽게 사실은 나도 뭐가 힘들다고 또 말해줘요. 남이 다가와서 말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먼저 시작하는 거죠. 내게 의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에이미: 지금껏 해 왔던 일 중에 나와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정겨움: 바로 전 직장에서 전혀 할 거라고 예상치 못했던 일을 맡아서 한 적이 있어요. 강의를 했었는데요, 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강의를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죠. 그런데 내가 이걸 좋아하는 거예요. 어라, 나랑 잘 맞네 생각했어요. 남에게 뭘 가르쳐 준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뿌듯한 일이더라고요. 뮤지컬 동호회를 오래 했기 때문에 남 앞에 서는 것에 긴장하거나 두려운 건 없었어요. 전혀 나와 상관없는 업무를 받아 투덜거리며 하다가 거기서 뜻밖에 나의 강점을 발견하게 된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거 같아요. 내 커리어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못 할 일은 없다는 것, 그걸 알게 된 것 같아요. 그 강의 덕분에 이렇게 이직도 할 수 있었으니까요.


에이미: 조직 생활은 본인에게 잘 맞나요? 더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나요?


정겨움: 의외로 조직형이에요. 조직 안에서 또 수직적 관계에서 일을 하면서 전체의 분위기를 흩트리거나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상사들이 시키는 거 잘했고. 막 이건 아니야 하면서 쿠데타를 일으키는 성격은 아닌 거죠. 반대로 화합하려는 생각이 강했어요.

남들 눈치도 잘 보고 좀 소심한데 사람들이 그건 잘 안 믿더라고요. 이렇게 말하면 이 사람 마음 상하지 않을까 걱정해요. 착한 척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아주 피곤한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꼭 말해야겠다 생각이 드는 것은 굳세고 야무지게 말해요.


PART 3 “저는 철저하게 나를 위해 사는 사람이에요.”



에이미: 제가 요즘 하는 생각은, 내가 타인에게나 좋은 사람이었지 스스로에겐 좋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아서, 나를 아끼자! 내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다! 그런 거거든요. 그러다 보니 나를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쓰고 싶은 생각이 생기더라고요. 스스로에겐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요? 그리고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 있나요?


정겨움: 저는 철저하게 나를 위해 사는 사람이에요. 자신을 위해 쓰는 시간이 많아요. 아침에 요가하고 명상하는 것도 나를 위해 시작했어요. 여행도 인생에서 정말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 7개월간 회사 휴직하고 세계 여행도 갔다 왔고요. 뮤지컬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결국 포기했고, 아마추어라도 돼서 무대에 서고 싶어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어요. 이것도 정말 남이 아닌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죠.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가니까.

이기적으로 사는 게 확실히 더 좋다고 생각해요. 이기적인 사람들을 부러워하고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이 확실히 자존감이 높아요. 내가 지금 ‘노’를 한다고 해도 이 관계가 무너질 거라는 생각을 안 하는 거죠. 내가 솔직해도 나를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란 믿음도 있고. 노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에이미: 에너지가 많은 사람인가요?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죠? 일과 일상의 밸런스는 어떻게 맞춰 나가고 계세요?


정겨움: 욕심 많고, 하고 싶고 배우고 싶고 경험하고 싶은 게 많아서 바쁜 것 같아요. 열정만큼은 십 대 이십 대처럼 여전히 있어요.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변한 것은 그 속에서 여유도 즐길 줄 알게 된 거예요.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아요. 예전엔 그걸 못 했거든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 나만의 공간이 생긴 듯한 기분이 들어요. 좋더라고요. 아무것도 안 할 땐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근 전까지 여러 가지 일을 하는데, 일찍 일어난 것 하나로 하루를 내가 주도적으로 산다는 느낌이 들어요. 시간에 끌려다니는 느낌은 참 별로였는데. 삶에 대한 만족도가 엄청 높아졌어요.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 시간이에요, 전화도 절대 안 오고. 오롯이 백 퍼센트 나의 의지로 구현되는 시간.


에이미: 저는 언젠가 제가 죽었을 때 즐겁게, 유쾌하게 살았음을 주변 사람들이 기억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즐겁게, 유쾌하게 살고 싶고요. 겨움은 삶의 마지막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어떻게 죽고 싶은지. 나중에 어떻게 회자되는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


정겨움: 최근 나의 신조를 만들었어요. 회사 신조를 보다가 나도 만들어 보고 싶다 생각해서 개인적으로 써 본 거예요. 신조는 조금씩 고쳐 나가는 거래요. 달라질 수 있어요. 이건 작년 12월 17일에 쓴 겁니다. 질문의 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한 번 읽어 볼게요.

(핸드폰 메모에 쓴 걸 보며) 훗날 나를 기억할 때 겨움은 참 멋진 사람이었어, 그를 만나서 내 인생이 많이 달라졌어,라고 말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성장을 돕고 손을 먼저 내미는 사람, 말을 꺼낼 때 더욱 신중하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 될 것이다.




낯선 존재가 주는 어떤 생경함, 그 생경함이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어디서나 눈에 띄고 마는 사람이란 그런 긴장감 속에서 진심이 드러나 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걱정하는 마음에 염려하는 얼굴로, 호기심 가득한 제스처로, 자신이 받을 수 있는 모든 질문에 활짝 열린 눈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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