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궁금한데 좋은 사람 #2 메이한
안 궁금한데 좋은 사람 #2 메이한
누구나 한 번은 ‘헬조선’을 외치며 대한민국 땅을 박차고 나가 새로운 곳에서 살아보는 것을 꿈꿔 봤을 것이다. 여기만 떠나면 더 나은 내가, 더 나은 환경이, 더 나은 앞길이 보일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외국 타지 생활이란 것이 생각하는 것만큼 녹록지 않은 것 같다. 꽃길만 있을 것 같았는데 어느새 가시밭길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 전혀 모르는 나라에서 전혀 모르는 일에 도전한다는 것, 그것은 얼마 큼의 용기를 가진 자가 해낼 수 있는 걸까.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온갖 노력 끝에 성공이란 단어를 쓸 수 있을 만큼의 결과를 내는 자는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런 사람을 만났다. 내가 말로만 하는 일을 실제로 몸으로 하고 있는 사람을.
PART 1 “내 앞에서 욕을 한다 해도 몰라 먹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에이미: 와, 정말 2020년 작년부터 역사 속에 길이 남을 만한 상황 속에 살고 있는데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문에 한국에 못 온 지 오래되셨죠. 우리가 이렇게 줌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네요. 한국에 못 와서 가장 아쉬운 것은 무엇인가요?
메이한: 한국에 못 간지 1년 반 정도 됐네요. 가족들 친구들 오랫동안 못 보고 있는 게 젤 아쉽고요, 그리고 제가 순대국밥을 참 좋아하는 데 그걸 못 먹고 있어요. 좋아하는 순대 국밥집이 있는데 거기서 주는 맹물도 맛있거든요(웃음). 태국에도 파는 데가 있긴 한데 아무래도 맛이 다르죠. 한국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먹는 음식은 짜장면이에요. 인천공항 딱 도착하면 지하 푸드코트에서 짜장면을 먹어요. 그래야 공항 밖 시내로 나갈 힘이 생깁니다. 잠깐, 질문이 뭐였죠? 왜 갑자기 먹는 얘기로 빠진 거지(으하하).
에이미: 태국 방콕에서 거주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을 떠난 지는 얼마나 되신 거죠? 한국을 떠난 이유와, 떠날 때의 마음은 어땠었는지 알고 싶어요.
메이한: 2014년 11월에 태국으로 왔어요. 올 11월이면 꼭 7년이 되네요. 남편이 태국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혼하고 바로 넘어온 거예요. 한국에서 직장 다닐 때 태국으로 출장도 많이 가고 여행도 많이 했기 때문에 낯선 느낌은 없었어요. 개인적으로 태국이란 나라를 너무 좋아했으니까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와 즐거움이 훨씬 컸던 것 같아요. 태국이랑 한국은 멀지도 않은 데 가고 싶을 때 가면 되지 쉽게 생각했죠. 이렇게 못 가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에이미: 여기는 외국이고, 나는 타지에서 살고 있다, 라는 느낌을 매일 자각하며 지내시나요? 한국에서 지냈을 때와 심적으로 크게 다른 점이 있을까요? 가령 제가 호주에 1년 정도 있었을 때, 그때도 돈은 벌어야 해서 일을 하긴 했지만, 뭔가 마음은 여행 온 것 같고 분명 여유로운 느낌이 존재했거든요. 한국에서 살 때와는 조금 다른 마음가짐이었는데, 그건 제가 너무 짧게 있어서 그렇게 느꼈던 걸까요? 7년 정도 있으면 또 다를까요?
메이한: 처음 와서 한동안은 놀러 온 것 같은 기분에 매일 신나서 여기저기 다니고 그랬어요. 그런데 딱 3개월 지나니까 향수병이 오더라고요. 한국으로는 돌아갈 기약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좀 사람이 무기력해지고 가만히 보니 제가 방콕에서 방콕을 하고 있더라고요. 여기서 어떻게든 살아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여행’의 마음이 바로 ‘일상’의 마음으로 바뀌어 버리더라고요. 지금은 꽤 안정적인 일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태국어도 많이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고, 태국 문화나 사람들에게도 적응이 되었거든요.
에이미: 방금 언어에 대한 부분을 살짝 말씀하셨는데, 외국 생활을 꿈꾸시는 분들에겐 언어가 가장 큰 고민이 될 것 같아요. 어느 나라 말을 사용하고 있는 거죠? 혹시 따로 공부 같은 것도 하고 계시나요?
메이한: 혼자 구석구석 다니는 걸 좋아하다 보니 처음부터 언어의 장벽에 딱 부딪혔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래도 영어인데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소통이 어려웠어요. 슈퍼를 가거나 택시를 타도 영어 할 줄 아는 태국 사람이 많지 않았거든요. 지금은 그래도 많이들 하죠, 예전보다.
영어는 못 알아들어도 느낌상 추측이라도 가능한데 태국어는 와, 내 앞에서 욕을 한다 해도 몰라 먹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죠. 태국어엔 성조라는 게 있는데 성조에 따라 같은 단어라도 의미가 달라지는 거예요. 이게 진짜 어려운 부분인데 그런데 제가 또 부산 출신이잖아요. 스스로 생각해도 은근 잘하는 거 같은 거예요(웃음). 학원 9개월 정도 다니고 태국 친구들에게 교과서에는 잘 안 나오는 구어체(?) 나 욕 같은 것을 배워서 생존 태국어를 하고 있습니다. 영어와 태국어를 번갈아 사용하다 보니 어떤 단어를 떠올렸을 때 양쪽 말이 동시에 떠올라서 혼란스러울 때가 있어요.
에이미: 태국의 물가는 한국과 또 차이가 많이 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제가 잠깐 일본 도쿄에서 지냈을 적엔 월세가 너무 비싸서 정말 가난하게 지냈거든요. 작은 반지하 원룸에 룸메이트도 한 명, 토끼도 한 마리 같이 살았어요. 월급 받아 월세 내면 생활비가 정말 쥐꼬리만큼 남아서 외식도 못하고 냉동식품만 먹으며 지냈었어요. 물가가 한국보다 저렴한 곳에서 살면 상대적으로 비교가 되니까 풍요로운 느낌이 들까요? 나 지금 밥 한 끼 한국으로 치면 삼천 원에 먹었네 뭐 이런 거?
메이한: 너무 행복했죠. 뭘 먹어도 한국보다 싸게 먹은 거 같으니까. 싼 데 비싼데 가리지 않고 진짜 여기저기서 잘 먹고 다녔어요. 태국 음식이 또 맛있으니까. 그러다가 한 3개월쯤 지났나, 수중에 돈이 없는 거예요. 나, 파산했어하고 다녔죠. 그 후로 비싼 거 못 먹었나 보다. 지붕 없고 에어컨 없는 식당에서 대부분 먹었죠. 돈 벌기 시작하기 전까지.
PART 2 “맥주 마시면서 고민하고, 술 깨면서도 고민합니다.”
에이미: 태국에서 완전히 새로운 도전을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한국에 있었을 때 하던 일과 태국에서 시작한 일은 어떻게 다른가요? 그리고 지금 하고 계신 일을 좀 소개해주세요.
메이한: 대학 졸업 후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홍보 담당으로 쭉 일했어요. 재밌게 일했는데 태국에 오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둔 거예요. 방콕에 도착하고 보니 언어나 환경이 많이 달라서 경력을 살려 일하기 어렵겠더라고요. 여기서 무슨 일을 하던 큰 도전이 되겠구나 싶었어요.
주변에서는 집에서 내조해라, 남편 잘 나가는데 무슨 걱정이냐, 이런 소리 많이 했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인생이 희미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 이름을 찾고 싶었어요. 내 명함이 갖고 싶고, 일을 하고 싶고. 남편에게 안 기대고 내 힘으로 태국에서 살아남야지 생각하니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뭐든 기회가 있을 때 잡아서 해내겠다고.
그러던 중에 기회가 진짜 온 거예요, 기적처럼. 제가 운동을 하게 되다니 생각도 못했죠. 방콕에 필라테스 스튜디오를 오픈했어요. 기구 필라테스가 한국에선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인기 운동인데 태국은 아직인 거예요. 잘 사는 사람들만 누리는 운동처럼 아주 소수만 하고 있어서 기회가 아닐까 생각했죠.
제가 오지랖이 참 넓어요. 그런데 그게 운동을 가르치면서 좋은 점으로 작용하더라고요. 운동을 더 세밀하게 시킬 수 있고, 몸 쓰는 것을 잘 관찰을 했다가 부족한 부분을 설명해주니까 운동 오신 분들의 만족감이 높더라고요. 그분들이 많이 믿어줘서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에이미: 현재는 필라테스 외에도 정말 다양한 운동을 배우고, 또 여러 자격증도 따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체 얼마나 열정이 많은 사람인 거죠? 아니면 욕심이 많은 사람인가요? 본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메이한: 열정이나 욕심은 저랑 거리가 멀지 않나 싶고요(웃음). 음, 남들보다 운동을 늦게 시작했고, 늦은 만큼 더 효율적으로 운동하고 싶은 생각 때문에 여기저기 많이 기웃거려 보는 것 같아요.
스튜디오 사업을 접고 개인 트레이너를 준비하다가 코로나가 터졌어요.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태국에서도 락다운이 시작됐고 그때부터 조바심에 할 수 있는 다른 많은 운동들을 배우기 시작했죠. 온라인으로 공부했고, 그러면서 자격증도 많이 따게 되었어요. 자격증이 스스로에게 모티베이션이 되더라고요. 자극이 되고 도전의식이 생겨 버립니다(웃음). 어쩌다 보니 자격증 수집가처럼 되긴 했는데, 종잇조각만 모으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계속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뉴트리션 코스를 공부하고 있는데 꽤 재밌어요. 공부를 한다는 게 필라테스 인스트럭터로서 ‘책임감’인 것 같아요. 절 찾아주고 함께 운동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함께 있는 시간 동안 더 편안해지고 몸과 마음이 행복해졌으면 하거든요. 공부해야 단 한 동작이라도 도움될 수 있는 heartmade 프로그램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에이미: 일 하는 데 있어 즉흥파 계획파 중 어느 쪽에 가까운 사람인가요? 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또 판단해야 하게 되면 매 순간 어깨가 무거울 것 같아요. 저는 항상 실수할까 봐 두렵거든요. 남들 평가에 늘 좌지우지하고. 선택에 있어 망설임은 없는 편인가요?
메이한: 하아, 고민은 늘 많아요. 맥주 마시면서 고민하고, 술 깨면서 고민하고, 맑은 정신으로 고민하고, 조언도 많이 구하고, 정보도 많이 찾아보고, 리서치도 많이 하고요.
저는 작은 일은 즉흥적으로 하고 큰 일은 소심하게 합니다. 태국에서의 선택들이 항상 인생이 걸린 선택들이었어서 계획을 세웠다기보다는 여러 가지의 경우의 수를 많이 생각해 봤어요. 잘되면 어떨까, 잘 안되면 어떨까, 이렇게 여러 길의 대략적인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면서 각각의 플랜을 세웠어요. 지금 내 선택과 이로 인한 경험이, 앞으로 내 인생에 헛된 시간이 되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많이 이야기했어요. 나의 선택이 언제나 가장 나다웠고, 나로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그리고 마지막은 워런 버핏을 떠올리며 존버를 외쳤죠.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겁니다.
PART 3 “수세미를 많이 떠서 가져오면 그간 고독이 깊으셨구나 생각합니다”
에이미: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거나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을까요?
메이한 : 제가 이 대답을 하면서도 어색하지만 공부를 많이 하고 싶습니다. 필라테스 스튜디오를 하면서 보니까 의외로 다른 운동을 하다가 다쳐서 오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갑자기 궁금증이 든 거예요. 다른 운동은 어떻게 하는 거길래 이렇게 다쳐서 오는 거지 하고요. 그래서 다른 운동을 파기 시작했어요. 운동 방법을 공부한 거죠. 제가 진짜 옛날부터 공부하는 거 안 좋아하는 사람인데 공부에 흥미가 생겼다고 하니 말 다했죠. 필라테스가 의사들도 환자에게 추천할 만큼 코어나 자세근, 속근육을 만들기에 좋은 운동이에요. 그래서 저는 좋은 운동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그런데 겉핥기식이 아니라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 공부가 제 운동의 퀄리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생각했어요. 같이 운동한 분들의 몸이 변하고, 그에 따라 마음도 변하는 걸 봅니다. 절 믿어주는 분들이 있으니 더 잘하고 싶어요. 개인 스튜디오를 오픈하는 게 가장 가깝게 계획하고 있는 일입니다.
에이미: 외국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길 꿈꾸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메이한: 외국 생활해보세요! 해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대신 준비를 많이 하시고 오세요. 왜냐하면 허상이 깨지고 현실이 되는 순간이 금방 와요. 현타가 온다고 하죠. 처음엔 낯선 것들을 즐기면서 너어무 재밌는데 곧 외로워지고, 한계를 느끼고, 그러다가 결국 다시 돌아가는 걸 많이 봤어요. 작은 취미 같은 거 만들어서 오시면 외로울 때 좋고요, 네일 케어 같이 기술 같은 거 하나 있으면 취업의 폭이 더 넓어지는 걸 느끼실 거고, 외국어 공부 미리 해 오시면 빨리 적응할 수 있습니다.
시야가 열리고 경험이 쌓이면 우리의 인생이 다양한 각도로 펼쳐지더라고요. 거기서 또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또 발견하게 됩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몰랐던 걸 알게 돼요. 아무튼 저는 외국 생활을 준비하시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파이팅!
에이미: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 외로움에 취약해질 것 같은데 어떠세요? 외로움에 대처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나요?
메이한: 제가 아는 한 분은 그렇게 수세미를 뜨세요. 수세미를 많이 떠서 가져오면 그간 고독이 깊으셨구나 생각합니다. 저는 맥주를 마시는데요, 늘어나는 맥주캔을 보며 외로웠던 나를 위로합니다(웃음).
에이미: 방콕은 관광지로 매우 인기 있는 곳이잖아요. 나만 알고 싶은 방콕의 숨은 명소 있으면 알려주세요.
메이한: 우리 집 발코니가 제일 예뻐요. 하하 농담이고요. 예전에는 한국인이 안 가는 현지인만 아는 명소나 맛집, 이런 거에 목숨 걸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거 다 필요 없더라고요. 어딜 가든 누구랑 가는지, 그리고 거기서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지가 더 중요한 하다는 걸 알았어요. 우리나라 네이버 검색을 따라올 데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태국에서도 네이버 검색하고 갑니다. 가까운 시암 갈 때도 시암 맛집을 검색합니다. 와, 진짜 네이버 짱!
‘처음’과 ‘시작’이라는 두 단어 앞에서 내가 작아질 때, 어디선가 채집했던 문장을 기억한다. 두려움에는 출처가 없고 지나고 보면 다 별거 아니다. 끝까지 해보기 전까지는 늘 불가능해 보인다. 근심을 없애고 배짱을 얻는 글임은 분명하다.
어제를 고칠 수 있거나 내일을 예측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언제나 완벽할 것이다. 완벽한 삶이 불가하다는 것을 일찍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믿음을 믿는다. 언제나 최선은 매 순간 가장 나다운 걸음걸이로 걷는 일이라는 것을 메이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인생을 굴러가게 하는 것은 결국 배짱이라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