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 50점짜리 밖에 안되네

by 피츠로이 Fitzroy

이제서 생각해 보는 혼자만의 여행의 좋은 점이라 함은 혼자라서 많은 걸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식사할 때 민감하게 느끼는데 한 명 안 받는 식당이 있어요, 멀리까지 찾아갔는데)

그런 것들이 그 순간엔 너무 화가 나면서 다시는 혼자 오지 말아야지 분통을 터뜨리게 된다.

그런데 목욕탕에 와서 30분째 탕에 몸을 담그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물결에 흔들려 아스라이 보이는 내 발을 들여다보면서 혼여행의 좋았던 기억이 슬금슬금 살아나는 걸 깨닫는다. 저녁을 쫄쫄 굶고 외로움에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던 그 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혼자 하는 것에 꽤 두려움이 없는 편이라 혼자 밥 먹기, 혼자 밥 먹으면서 술 시키기, 혼자 숙소에서 자기 등이 보통 사람들의 평균치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지난주 홀로 떠난 청송 여행은 나답지 않게 숙소를 모텔에서 펜션으로 바꿨고, 해지고 나가서 무작정 저녁 먹을 곳을 찾는 대신 굶는 걸 택했다. 혼자 가는 여행의 필수품인 무겁게 메고 온 책 두 권은 숙소에서 펴 보지도 않았다.

외로움과 서러움을 잘 구별 못하겠는데 왜냐하면 외로울 때 서럽기 때문이다. 통나무 펜션에 도착해 가방을 내렸는데 펜션은 생각했던 것보다 별로고, 배는 고픈데 근처 식당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벽지고, 방바닥은 뜨끈한데 웃풍이 심해 약간의 몸살 기운이 느껴졌다. 서러웠다. 그니까, 뭐하러, 굳이, 혼자 와서 너도 병이다 병…. 하면서 허기진 배에 사과 자판기에서 꺼낸 사과 한 알과 사과즙을 채워놓고 넷플릭스를 켰다. (청송=사과)

여행 중엔 이상하게 점수를 매기게 되는데 (진짜 이상하다) 이번 여행 50점짜리 밖에 안되네 하며 쓴 입맛을 다시다 잠들었다.


그런데 그 외롭고 서럽고 배고픈 밤이 얼마나 좋았는지 나만 알기 너무 아까워 안달 나 죽겠다, 지금.

그 밤에 책 대신 본 영화 한 편+ 반 편과, 정확히 어딘지 모르겠는데 조금씩 움직이면 어딘가 분명 뜨끈한 방바닥과, 침대 옆 뚫린 창으로 보이는 시골집의 푸르스름한 풍경들, 샤워할 마음이 들지 않는 볼품없는 화장실, 자면서 점점 컨디션이 좋아지는 걸 알 수 있는 몸의 소리, 가 다 너무 좋았다.

여행은 어쨌든 안 좋기가 더 어렵지만 청송 여행은 분명 50점짜리 여행은 아니었다. 훨씬 훠얼씬 더 좋았다.


혼자 다닐 수 있는 씩씩한 내가 좋고, 혼자 다니는 사람들에게 정이 간다.

이 글을 다 썼더니 몸이 퉁퉁 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백일장 산문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