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궁금한데 좋은 사람 #10 윤병준
-모디스트 임팩트 대표 윤병준
커피는 엄마를 떠올리게 한다. 수능을 준비할 때 나는 공부에 지쳤었다. 그런 내게 엄마는 엄청나게 으스대며 ‘비엔나커피’라는 게 있는데 네가 대학생이 되면 그걸 사주겠노라고, 같이 마시러 (특별히) 가주겠다 했다. 1년만 참으면 네 마음대로 살 수 있다고 지금 내 말대로만 하라 했던 엄마. 커피를 시킬 때마다 종종 비엔나커피를 공약했던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는 커피를 미끼로 엄청나게 잔소리만 하다가 커피를 마실 수 있을 때가 되자 급히 떠났다. 커피 멕이는 엄마가 없이도 나는 커피를 엄청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내가 처음으로 커피 맛을 본 건 중학생 때. 엄빠는 딸내미가 탄 커피 맛 좀 보자고 커피 심부름을 잘도 시켰는데 그때마다 마지막에 살짝 맛을 봤다. 티 스푼으로 커피 둘, 설탕 둘, 프림 둘. 중딩 입맛에도 특별히 맛있는 날이 따로 있었다. 커피가 요술을 부리는 것 같이 말이다.
병준 같은 전문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커피의 맛은 왜 매번 다른 것인가. 콩이 문제인지, 내가 문제인지, 심부름시키는 엄마 아빠가 문젠지.
에이미: 병준이 마신 첫 커피, 기억나?
윤병준: 첫 커피는 프리마의 맛으로 기억하고 있어. 엄마 친구들 집에 놀러 오면 엄마가 커피를 탔어. 그냥 떠먹어도 맛있잖아 프리마는.
대학생 때 학관 1층에 카페가 처음으로 생겼는데 그때 또 핫 한 거는 다 해봐야 해서 찾아 가봤던 기억도 있고.
커피를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던 건 군대 다녀오고 학교 복학해서야. 수요일마다 중간에 수업 비는 시간이 있었는데 친한 형들이랑 같이 커피 마시던 게 개인적으로 엄청 좋은 기억이거든. 그 시간이 너무 좋아서
막 기다리게 되더라고.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커피라는 이미지가 좋아졌어.
커피 마시면서 보낸 좋은 시간들, 알게 된 인연이 많아. 커피를 매개로 나누는 대화의 농도가 딱 적당하고 좋다고 생각해. 밥과 술이 대신할 수 없는.
에이미: 대학 때 피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피자 냄새를 하루 종일 맡으니 어쩔 땐 헛구역질이 나올 때도 있었어. 집에 오면 옷이랑 머리카락까지 피자 냄새가 진동했거든. 거기 그만두고 반년 이상 피자 안 먹었던 거 같아. 아니 못 먹었나. 커피를 매일 만드는 사람도 커피를 좋아하고 매일 마시나?
윤병준: 음, 나는 매일 마셔. 내 커피가 제일 맛있어. 예전에는 쉬는 날 카페를 정말 많이 다녔데 이제는 내 커피가 나에게 제일 잘 맞다고 생각해. 굳이 어디 찾아갈 필요 없는 거지. 언제든 내가 원하는 때 커피 마실 수 있다는 게 참 좋지. 난 잠 자기 전에 커피 마셔도 잘 자는 사람이라.
에이미: 헛, 지금 좀 멋있었네, 내가 내린 커피가 제일 맛있다고 하는 그 자부심. 커피에 재미나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어?
윤병준: 지금의 모디스트 임팩트가 두 번째 카페인데 이 카페를 시작하면서부터 흥미를 느끼게 됐어. 전에 했던 카페는 커피를 전문적으로 했다기보다 대학가에서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느낌이었거든. 그땐 업체에서 커피를 납품받아 썼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커피가 만들어지는지도 잘 몰랐어. 지금은 직접 로스팅을 하는데 로스팅을 하다 보니 계속 커피에 관심이 생기더라고.
커피 맛이 달라지는 이유는 무궁무진해. 생산되는 나라, 지형, 품종에 따라 다 다른데 이걸 수확해서 어떻게 가공을 하느냐에 따라 또 맛이 달라지거든. 가공이라는 게 고추 말리듯이 선베드에 말리는 게 있고, 물에다가 깨끗이 씻어서 하는 것도 있고, 요즘에는 더 발전해서 발효를 시키기도 해.
커피를 머신에 내리는 것도 몇 그램을 사용해서 어떠한 압력으로, 온도는 몇 도에서, 추출 양은?, 등에 따라 미묘하게 맛의 차이가 생기는 거야. 그런 것들을 계속 공부하면서 조금씩 더 나은 커피가 되어 가는 것 같아. 아직 백 프로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에이미: 사람들이 술 마실 때 구실을 만드는 것처럼, 오늘은 월급날이니까 한 잔 마셔야 해, 오늘은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있으니 한 잔 마셔야 해, 이러면서 커피 마실 이유를 맨날 (굳이) 찾게 되거든, 이쯤이면 나 중독이라고 봐야 하나?
윤병준: 당신이 딱 나의 타깃 고객입니다. 모디스트 임팩트라는 이름에 숨겨진 뜻이 있어. 모디스트는 ‘평범한’ ‘특별하지 않은’ 그런 뜻이고, 임팩트는 ‘충격적인’ 이란 단어잖아. 의미가 상반된 단어의 조합인데 의도가 뭐였냐면, 모디스트한 일상 속에서 커피를 마시는 그 순간만큼은 임팩트 있는 시간으로 환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거야. 너도 커피로 뭔가 작은 충격을 주고자 하는 거잖아.
여행 같은 걸 하면서 본인한테 큰 에너지를 주고 활기를 불어넣어 주면 좋겠지만, 아주 작게는 커피로도 충분히 지루한 일상을 환기를 시켜줄 수 있다는 거지.
에이미: 한국인들의 소울 음료가 커피인가 싶을 만큼 정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시는데, 나부터도 아끼자 아끼자 하면서 제일 못 아끼는 게 커피값이거든. 한국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커피콩 한 알 안 나는 나라잖아. 사람들이 커피에 끌린 이유, 뭘까?
윤병준: 전 세계에서 미국, 중국 다음으로 한국이 커피 소비량이 많데. 커피가 이렇게까지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시하는 이유에서 비롯된 거라 생각해. 예전에는 밥 한 번 먹자가 뭔가 만남의 매개였잖아. 그런데 생각해 보면 밥은 좀 무겁고, 밥보다는 가벼우면서 쉽게 만날 방법으로 커피가 아주 좋은 거지.
지금은 또 친구 만나면 밥 먹고 커피 마시는 게 너무나 당연한 루틴처럼 되어버렸잖아. 그래서 카페들은 점점 더 많아져 가는 것 같아. 식당에서 밥 먹고 이어서 커피까지 마시면 되지 않냐 말할 수 있지만, 새로운 공간에서 분위기를 한 번 바꿔주는 게 또 중요한 포인트거든. 앞으로도 카페는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 커피가 지금까지는 여자들이 많이 마셨다면, 점차 남자들도 즐기고 있는 추세고 또 나이 많으신 분들도 커피를 찾는 게 꽤 늘었어.
커피를 매개로 나누는 대화의 농도가 딱 적당하고 좋다고 생각해.
에이미: 카페의 외관이 굉장히 독특한데, 카페 같지 않은데 또 카페가 아니면 안 될 것 같고, 어떤 콘셉트이라고 보면 될까?
윤병준: 오픈한 지 5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여기가 카페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고, 멀리서 네비 찍고 찾아왔다가 어딘지 몰라서 근처를 계속 뱅뱅 돌았다는 사람들도 있어. 쉽게 못 들어가겠다, 왠지 커피 한 잔 엄청 비쌀 거 같다, 그런 피드백을 받기도 했었어. 어떻게 보면 처음에 그것 때문에 더 장사가 안 됐을 수도 있었을 거 같아.
외관에는 아예 투자를 안 한 거고, 의도된 것이기도 해. 지나가다가 아 여기 카페가 있네, 하고 들어오는 것보다, 여기는 꼭 어떻게든 찾아가고 싶은 곳이다 하게끔 만들고 싶었어. 간판이 없어도 목적을 가지고 올 사람들은 어떻게든 올 것이다 라는 믿음이 있었지.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이야 말로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만들어 낸 것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제대로 느껴줄 수 있을 것 같았어. 커피 그냥 아무거나 줘, 하는 사람들보다 좋은 커피를 마시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오면 좋겠다 생각해.
에이미: 손님들이 이런 부분을 좋아해 주면 좋겠다, 대놓고 혹은 작정하고 보여주고 있는 건 무엇일까?
윤병준: 첫 번째는 계절에 따라서 메뉴와 디저트가 계속 바뀌는 것. 첫 번째 카페 했을 때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어. 내가 다녔던 대학교 주변에서 카페를 했는데 1년 동안은 어쨌든 계속 같은 학생들이 오는 거잖아, 그래서 메뉴를 계속 변경하고 개발해야 했어. 그걸 몇 년 동안 했던 게 익숙해서 그런지 지금도 메뉴를 바꿔야 하는 게 나한테는 별로 힘든 일이 아니야.
두 번째는 대충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봐 주길 바라고 있어. 시럽이든 소스든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거면 웬만해선 다 직접 만들거든. 가격도 다른 데에 비해 절대 싸지 않아. 비싼 만큼 좋은 재료를 쓰는 데 있어 아낌이 없는데 그런 것 까지 알아봐 주면 너무 고맙지.
에이미: 뭐랄까, 커피에 대해 정말 생각이 많은 사람처럼 보여.
윤병준: 커피에 대해 굉장히 고관여의 사람인가 봐. 생각이 너무 많아서 고생하는 스타일일지도 몰라. 처음의 모디스트 임팩트의 콘셉트는 지금과 같이 달랐어. 서울에서 본 우와 이런 게 있어, 하고 깜짝 놀랐던 거를 여기에 그대로 가져다 놓으면 난 사람들이 뒤집어질 줄 알았지. 정말 잘 될 줄 알았거든. 그런데 잘 안 된 거야.
서울에서도 아직 흔하지 않은 커피 바(Bar)를 머릿속에 구상했었어. 그래서 메뉴도 딱 두세 개 정도, 테이블도 없는 스탠딩 형식의 카페를 만들었지. 중간 과정 없이 너무 힙한 것만 생각한 것 같아. 한 번 인테리어를 싹 다시 해서 지금의 모습이 된 거야.
에이미: 매장을 운영한다는 게, 카페니까 커피도 잘 만들어야 하지만 또 한 편으론 다양한 손님들을 상대해야 하잖아. 감정 노동이라고 하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힘든 점은 없어?
윤병준: 카페를 하면서 나도 많이 변한 거 같아. 친구들도 깜짝 놀랄 정도로. 예전에는 손님들과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랬거든. 지금은 절대 내쪽에서 먼저 말 걸고 그러진 않아. 사장님 말 걸기 힘들다, 이런 말도 들어 봤을 정도야. 손님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 어떤 손님은 그런 걸 좋아해서 계속 올 때마다 내가 이야기해주길 원하는데, 어쩌다가 한 번 못하게 되면 엄청 섭섭해하더라고. 이건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야. 그래서 아예 딱 정해 버렸어. 손님과 사적은 말은 절대 나누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는 것도 대화를 나누면서 생기는 거라고 생각했고, 아예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상대도 기대가 없잖아.
한 번은 생각해 봤어. 이 커피 한 잔에 책정된 가격에는 뭐가 들어가 있을까. 이야기 나눠 주고 하는 서비스 비용까지 포함되어 있는 걸까. 결론은 아니다야. 한 잔 맛있게 누구보다 정성 들여 커피를 내어주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해.
에이미: 조치원이란 도시는 병준에게 어떤 의미야? 왜 조치원이란 지역을 골랐을지 궁금해.
윤병준: 큰 의미는 없어, 사실. 조치원에 있는 대학교에 다녔으니 있었던 거고, 졸업하고 여기서 카페를 시작하게 되면서 어쨌든 인연이 계속 이어져 온 건데. 사실 지금도 조치원에 대한 엄청난 애정 같은 건 없어. 거의 매일의 루틴이 집 카페, 집 카페 이러니까 조치원을 구석구석 잘 알 고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향 같은 곳은 아니란 말이지. 언제든지 떠날 수 있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해.
다만 일주일에도 한 두 명씩 사람들이 일부로 찾아와 주지. 학교 선배들, 후배들, 동기들. 내가 일부러 시간을 내서 약속을 정하지 않더라도 관계를 맺었던 좋은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 그 의미가 큰 것 같아.
조치원은 카페를 시작하고, 살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장소이긴 하나 그것은 카페에 한정된 건고 조치원까지 끌어안고 있는 건 아니야. 어떤 계기만 있다면 언제든지 다른 장소에 갈 수도 있지.
여기에 그대로 가져다 놓으면 난 사람들이 뒤집어질 줄 알았지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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