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미움받을 때가 있었다. 지금도 그가 왜 나를 미워했었는지 잘 모르겠다.
이유가 있는 미움은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반 친구들이 나와 놀아주지 않았던 건 내가 시골(안동)에서 전학 온, 사투리를 요란하게 쓰는 촌스러운 애였기 때문이다.
이건 인정. 미움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는 대체 왜 나를 그토록 미워했나.
그를 만난 건 11살인가 12살 어느 영어 학원에서였다. 아빠는 엄마의 성화로 나를 영어 학원에 보내기로 (어렵게) 결정했는데 조건이 있었다. 절대로 한국인 선생님은 안되고 원어민 선생님이어야 한다는 것. 무거운 발을 질질 끌며 수업에 들어갔던 첫날이 생각난다. 외국인과 태어나서 말 한 번 섞어 본 적이 없는데 선생님이랑 단둘이 이야기하라니 가슴이 (무쟈게) 벌렁거렸다. 아빠는 선생님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들으면 이렇게 말하라고 같은 뜻의 다른 영어 문장 5가지를 알려줬다. 외우라 했다. (왜 인지 모르겠는데 아빠는 영어를 잘했고 지금도 잘한다) 역시나 외국인 앞에 서자 눈물이 터질 것 같이 무서웠고(그는 아무 잘 못이 없다) 작아지고 작아져서 그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원어민 선생님과 두 번을 만나고 (두 번 다 울었다) 아빠 몰래 학원에다 반을 바꾸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한국인 선생님이 가르치는 친구들이 많은 반으로. 비싼 돈을 내고 저렴한 수업을 들었다.
그 반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그는 다른 친구 한 명과 항상 붙어 다녔는데, 처음 본 날부터 마지막 본 날까지 줄곧 나를 노려봤다. 공부를 하러 온 게 아니라 나를 노려보는 게 학원에 오는 목적 같았다.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고, 내가 싫다고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사람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느라 늘 어깨가 아팠다. 그는 내가 못 앉도록 미리 와서 남은 자리를 다 밀어 버리거나, 내가 발표를 하면 뒤에서 조그맣지만 분명하게 비웃거나 코웃음을 쳤다. 차라리 욕을 하거나 말로 싸움을 걸면 좋을 텐데 교묘하고 티 안 나게 조용히 괴롭히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 날 향해선 직접적으로 말 한마디를 뱉지 않았다. 친구들이 있는 반에서도 친구가 없는 것처럼 혼자 다녔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내가 수업 중 뛰쳐나왔던 날이다. 꼭 내 뒤에 앉아야 하는 그는 그날도 선생님이 묻는 나의 대답에 비아냥 거렸고 나는 처음으로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서 그를 노려 보았다.
“너 뭐가 문제야, 너 나한테 왜 그래!” 소리를 꽥 질렀다. 갑자기 너무 큰 일을 저질렀다 싶은 기분에 책가방에 교재를 다 집어넣고 교실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좀 영화 같음) 계단을 미끄러지듯 내려가자 뒤에서 선생님이 쫓아왔다. 나를 붙잡고선 다 알고 있다는 듯 한쪽 어깨를 쓰다듬어 주는데 다리에 힘이 빠졌다. 그럼 난 뭘 할 수 있었겠나. 그대로 주저앉아 난간 붙잡고 엉엉 울 수밖에. 그 뒤로 학원에 계속 결석하다 끝내 그만두었다.
오늘 갑자기 왜 그 일이 생각나는 걸까. 수업을 박차고 나올 만큼 그런 큰 용기를 낸 것이 살면서 별로 없는 일이라 그런 것 같다. 그는 참 어지간히도 내가 미웠다보다 웃음도 나고. 나처럼 나이를 먹고 어디선가 그의 하루를 살고 있겠지. 나보다 예뻐졌으면 너 가만 안 둔다.
#1일1행복챌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