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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츠로이 Fitzroy Feb 17. 2022

나 코로나 아니야? (셋째 날)

[오늘의 행복 일본 편] 스물다섯 번째 날


아침에 일어나 체온을 쟀더니 여전히 열이 높아 한국대사관으로 전화를 걸었다. (한국 대사관만큼은 날 살려 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국이 갑자기 코로나 확진자가 9만 명으로 높아진 탓인지 전화 연결이 쉽지 않았다. 난 내 차례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싶은데 저쪽에선 자꾸 일단 끊으란다. (끊기 싫다고요)

몇 번을 시도해도 자꾸 끊겨서 블로그 정보를 뒤져 도쿄 발열센터라는 곳에 전화를 걸었다. 한국어 안내가 가능하다고 되어 있었다.

일본어로 전화받은 언니(동생일 가능성도 있음)에게 한국 사람과 통화하고 싶다고 했더니, 나, 일본 언니, 한국어 하는 남자 통역사, 이렇게 셋이서 같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언니를 주축으로 언니가 이야길 하면 오빠가(동생일 가능성도 있음) 통역해서 내게 이야기해주고, 내가 대답하면, 오빠가 통역해서 언니에게 이야기해줬다. 매우 정신이 없었는데 매우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못 따라 가서 흐름이 끊길까 봐. 전화로 하다 보니 셋이 한꺼번에 동시에 말하는 무서운 상황도 발생된다. 아찔하다.

엄청나게 긴 대화가 오고 갔다. 요약하면 이렇다.


Q. 어디 사니?

A. 도쿄 카나마치 살아요

Q. 증상이 어떻니?

A. 이틀째 열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최고 39도) 배도 살살 아프고 설사도 해요.

Q. 뭘 원하니?

A. 가족들이랑 같이 있으니 옮길까 무서워 코로나 검사를 하고 싶어요.

Q. 코로나 검사는 할 수가 없어. 먼저 병원에 가서 의사 진찰을 받고 의사가 검사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때 검사를 할 수 있어.

A. 그렇게라도 할게요.

Q. 일본어 잘 못 알아들으면 병원에 혼자 갈 수 없을 텐데…

A. 일본인 남편 데리고 갈게요. (여러분, 말 안 통하는 외국에서 아프면 큰일 나는 거예요. 등골 오싹하다, 진짜)

Q. 네가 사는 근처 가까운 병원 세 군데 알려줄게. 이름, 전화번호, 주소 받아 적어

A. 네. (통역해주시는 분이 한국인인지 아닌지 확실히 잘 모르겠을 만큼 한국어가 미묘하게 서툴러서 병원 이름을 잘 받아 적을 수 없었음. 나중에 역으로 전화번호로 검색해서 병원 찾음.)

Q. 일본에 건강보험 들어 있니?

A. 아니요. (시댁 잠깐 들어온 거라고)

Q. 알려준 병원에 꼭 전화로 사전 예약하고 가야 해. 도쿄 발열센터에서 소개했다고 하고 이야기해. 절대로 PCR 검사하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마. 의사가 PCR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검사비는 무료야. 다만 넌 보험이 없으니 의사 진찰료 비용이 발생되는데 싸진 않을 거야. 그러니까 예약할 때 얼만지 미리 물어봐.

A. 네. (상심 ㅜㅜ)

Q. 질문 있어?

A. 없어요.


유우야한테 여기 세 가지 병원 중에 전화해서 빨리 예약을 잡아달라고 했다.

유우야는 계속 망설이더니 알려준 병원 세 군데가 다 너무 작은 개인 병원이고 하나 같이 평이 안 좋다고 했다. 엄마들이 써놓은 평을 보면(어디서나 엄마들 정보가 최고이지) 보험 없는 사람 상대로 비용을 비싸게 처먹고, 열나서 죽겠는데 PCR 검사 절대 안 시켜 주고는 약 먹고 3일 후에 다시 오라고 했는데 결국은 코로나였다는 평도 있다고.

그래도 나 죽겠으니 이러다 너도 죽이고 같이 있는 시부모님 다 죽인다고 얼른 아무 데나 전화 좀 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나마 제일 점수가 높은 한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주었다.

유우야는 상황을 설명했고 진료를 보고 싶은데 아내가 보험이 없는 상황이라 진료비를 어느 정도 예상해야 하느냐 물었다. 상대방이 잠시 머뭇하더니 다시 연락을 준다고 했단다. 그런데 전화가 오지 않는다. 한 시간이 지났다. 두 시간이 지났다. 전화를 다시 걸어 볼랬더니 12시부터 16시까지 쉬는 시간이란다. 유우야는 흥분을 하며 4시간을 쉬어? 할 맘이 없구먼, 하며 역시 평이 나쁜 이유를 알겠다고 수긍한다.

좋은 병원들이 얼마나 많은데 발열 센터는 그런 이상한 데만 소개해 주냐며 열변을 토했고, PCR 검사하고 싶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단속시키는 게 너무 수상하다 했다.

그 사이 나는 지쳤갔다. 우와, 타국에서 병 걸리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이 세상 세이 굿바이 어렵지 않겠는데. 그런 와중에 열이 조금씩 내렸다. 열이 내리니 급박한 마음도 조금씩 누그러졌다. (코로나 시대에 열나면 그냥 끝인 거예요. 다 아파도 열만 안나면 괜찮음.) 굳이 병원에 안 가도 되려나 하는 생각이 들어 유우야에게 그냥 말자고 이야기했다. 저녁엔 처음으로 밥도 먹었다.

열이 내리자 복통과 설사가 시작됐다. (하아)

긴 하루였다. 행복하진 못했지만 최악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즐거운 생각을 해보자. 맛있었던 드레싱?


#1일1행복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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