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

가끔 폭식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by 피츠로이 Fitzroy

집에 오니 아무도 없고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곧 내가 우울해지리라는 걸 감지하곤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힌다. 그리곤 뭔가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먹는다. 끊임없이 먹는다. 내가 싫어질 때까지 먹는다.


내가 가진 몇 가지 정신병 중에서 폭식 증세는 나 이대로 괜찮을 걸까 싶게 조금은 심각한 수준일지도 모르겠다. 절대로 사람이 있는 곳에선 그러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 누군가 옆에서 보기라도 하면 말려주기라도 할 텐데 철저히 나 혼자 일 때 슬그머니 기어 나오는 것이다.

마음이 번잡하고,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슬픈 건지, 외로운 건지, 울고 싶은 건지, 웃고 싶은 건지 잘 모르는 그 고요한 공간에서 나는 도저히 '먹는다' 이외의 동사를 찾지 못하는 것 같다. 씻지도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뭔가 먼저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건지 그나마 그렇게 마구잡이로 집어넣어 놓고는 억지로 게워내지는 않으니 거식증은 아닌 것 같다. 맛을 느끼고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홀린 것 같은 반복 행태라 섬뜩한 기운은 있지만.

치킨 6조각쯤을 먹다가 밥솥을 열어 찌개를 반찬 삼아 밥 한 공기를 뚝딱하고 입가심으로 빵 3개를 먹다 보면 아...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나 자신에게 깜짝 놀라 멍하게 있다.


근래 한 2년쯤 안 그랬던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하니 폭식으로 마음을 달래던 습관은 꽤 오래된 일. 그런 내가 끔찍하게 싫지는 않은데 나 불안정하구나 하는 생각. 오늘 회사에서 문제가 된, 매장에서 흔들거리는 곧 쓰러질 것 같은 스카프 행어처럼 나 지금 참 unstable 하구나. 그래서 씁쓸하다.


(사진은 폭식이 아닌 폭설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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