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부자

나도 아빠와 다를 게 없었다

by 나무늘보

아빠는 예쁘게 말하는 재주가 없다. 유독 엄마에게 더욱 그랬다. 아빠의 퉁명스러운 말투는 언제 들어도 적응되지 않았고, 전주로 가는 차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큰맘 먹고 떠나는 여행이었다. 집에만 있느라 답답해하는 부모님과 조금 먼 곳으로 바람 쐬러 가기로 했다. 운전하는 아들 옆에는 아빠, 뒷좌석에는 엄마가 탔다. 오늘도 아빠는 퉁명스러운 말을 쏟아냈고, 신이 나서 말하던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말을 삼켰다.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괜히 여행 가자 했나 후회가 앞섰다. 말 한마디 예쁘게 못하는 아빠가 미웠다.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아들은 엄마에게 무슨 말이라도 걸어야 했다. 말 없는 아빠 옆에서 엄마와 이 말 저 말을 주고받다가 순간, 예상치 못한 엄마의 잔소리 공격을 받았다. 나는 큰소리로 짜증을 냈고, 그런 내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나도 아빠와 다를 게 없었다.


세 시간을 달려 전주에 도착했다. 숙소는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한옥 게스트하우스였다. 짐을 풀고 숙소 밖으로 나와 천천히 한옥마을을 걸었다. 엄마는 옷과 액세서리 파는 가게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고, 꽃이 보이면 휴대폰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렀다. 그 옆에 딱 붙어 다니던 아들은 작가님의 지시에 따라 여기저기 서서 모델 노릇을 하고, 작가님도 부지런히 찍어야 했다. 그 사이 아빠는 저만치 앞서 걷고 있었다. 엄마는 그런 아빠가 재미없다고 투덜댔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걸으면 좋겠다고, 나란히 걷다가 서로의 기분을 물어보면 좋겠다고, 예쁜 꽃이 보이면 그 앞에서 활짝 웃는 얼굴로 함께 사진을 찍으면 좋겠다고. 엄마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빠는 태연하게 앞만 보고 걸었다.


아빠를 따라 잡기 위해 엄마와 아들의 걸음이 바빠졌다. 옛날에는 앞서 걷다 사라진 아빠 찾아 한참 동안 헤매야 했다. 성치 않은 다리로 느릿느릿 걷는 아빠를 따라잡는 건 이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참 걷다 지쳤는지 저 멀리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아빠가 보였다. 이때다 싶은 엄마는 아빠 옆에 아들을 나란히 세웠다. 여러 가지 포즈를 지시하고, 능숙한 동작으로 카메라 셔터를 연달아 눌렀다. 갑자기 비가 후드득 소리내며 떨어졌다. 각자 우산을 쓰고 나란히 걸었다. 아빠와 걸음을 맞추고, 아들은 당신의 기분을 물어보았다. 대화는 한두 마디로 끝이 났고, 어색한 나머지 결국 엄마에게로 갔다. 엄마와 이야길 나누며 한참 걷다 보니, 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처진 아빠는 부지런히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었다.


전주는 아빠의 어린 시절이 오롯이 녹아있는 곳이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의 아빠는 집을 나와 하숙 생활을 했고, 그곳이 여기 한옥마을이다. 옛 추억이 새록새록 샘솟는 아빠는 한옥마을 가이드를 자처했다. 한옥마을 사이사이 골목길을 천천히 걸었다. 먹거리와 기념품 가게가 즐비한 거리를 벗어나니 일반 가정집들이 꽤 많이 보였다. 골목 어딘가에 숨은 중학생 시절의 아빠가 '짠'하고 나타날 것만 같았다. 부모 없이도 혼자 일찍 일어나 하숙집 밥을 배불리 먹고, 야무지게 책가방 메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를 외치는 까까머리가 보인다. 까까머리는 가볍고도 날쌘 걸음으로 골목골목을 돌아 학교로 향한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제일 먼저 들어온 당신은 굳게 닫힌 창문들을 활짝 열어젖힌다. 분필 자국 남은 칠판을 깨끗이 지우고, 칠판지우개의 먼지를 남김없이 털어낸다. 예순 해가 지나도 아빠는 그때 그 골목을 여전한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고, 나는 가만히 당신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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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천이 흐르고 있었다. 드넓은 천 따라 걷다 보니 한옥마을과 서학동을 잇는 남천교가 웅장하게 뻗어 있었고, 그 위에는 청연루가 우아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청연루에 올라가니 시원하게 뚫린 전주천이 또 다르게 보였다. 청연루에서 내려다보는 한옥마을의 전경은 고즈넉한 운치가 있었다. 넓은 청연루 바닥 곳곳에 자릴 잡은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싸온 음식을 나눠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캔맥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아빠는 그때 그 하숙집이 저기쯤이었을 거라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한벽루를 가리키며 저 근방에 오모가리탕을 하는 식당이 모여있다고 했다. 평소에는 몇 마디 주고받으면 굳게 닫혔을 아빠의 입은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를 줄줄이 쏟아냈다. 한옥마을 구석구석 걷다 보니 벌써 저녁 시간이 다 되었다. 아빠는 오모가리탕을 먹자고 했다. 민물매운탕이라는 말에 (특유의 비린 맛이 싫어) 미간이 조금 찌푸려졌지만, 아빠의 추억여행 중이었으므로 당신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사실 아빠의 또 다른 이야깃거리가 끓고 있을 오모가리탕이 궁금했다.

옛날에는 전주천 따라 오모가리탕을 파는 식당이 즐비했다고 한다. 지금은 서너 곳밖에 보이지 않았다. 인적이 드문 거리에서 가게 밖 평상에 앉은 식당 주인들이 자기네 식당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간절한 손길을 모두 마다한 우리는 아빠가 예전에 자주 갔다는 식당으로 갔다. 문 열고 들어가니 계산대와 주방이 보이고, 긴 복도를 따라 방들이 여러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 옛날 모습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한 식당이 반가운 아빠의 표정이 한층 밝아 보였다. 아빠는 우렁찬 목소리로 식당 주인을 불렀다. 당신이 옛날에 여기 자주 왔었다고, 오늘은 가족들과 같이 왔는데 아들이 사는 저녁이라고. 한껏 들뜬 마음에 자랑하고픈 말들이 아빠의 입에서 술술 나왔다.


오모가리가 '뚝배기'의 전북 방언이란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엄청나게 큰 오모가리가 휴대용 버너 위에 놓였다. 주인 인심 그득 담긴 고봉밥이 놓이고, 보글보글 끓고 있는 오모가리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지친 몸이 스르르 풀리는 것만 같았다. 한술 뜬 국물은 비릿하지 않았고,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아빠는 옛날 맛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고봉밥을 깨끗이 비워냈다. '전주' 하면 비빔밥과 콩나물해장국이 으레 떠오르지만, 오모가리탕만큼 토속적인 음식이 있을까 생각했다. 낯선 음식을 기꺼이 도전하던 밤, 아들은 아빠의 입맛을 시나브로 닮아가고 있었다.


세월의 문이 정말 존재할까. 테드 창의 소설집 <숨>의 첫 번째 단편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을 보면, 세월의 문이라는 신비한 물건이 등장한다. 이 문을 통과하면 수년 전 또는 수년 후의 나를 만나러 갈 수 있다. 아빠와 아들은 서로를 묘하게 닮아버린 탓에 둘 중 한 사람은 세월의 문을 통과하지 않았을까. 38년 전으로 돌아온 나를 만나는 것 같기도 하고, 38년 후로 넘어간 나인 것 같은 오묘한 상상을 해본다. 아빠는 나의 현재이기도 하고, 과거이며 또 미래다. 내 외모와 걸음걸이와 습관과 성격이 아빠와 참 많이도 닮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물론 지나온 환경과 시간과 인연은 전혀 다르지만, 그것으로 인해 또 다른 나를 마주하게 한다. 아빠는 아빠고, 나는 나지만, 때론 아빠와 나는 서로가 된다. 자꾸만 앞서 걷다가도 뒤를 돌아보게 된다. 익숙한 뒷모습에 숨은 당신의 낯선 표정이 보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속도를 늦추면 당신과 나란히 걸을 수도 있으니까. 아빠는 할 수 없었지만,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점점 늘어난다. 아빠는 꾹꾹 눌러 삼켰지만, 나는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어진다.


한옥마을을 빠져나와 횡단보도 앞에 서니 우뚝한 풍남문이 보였다. 풍남문을 끼고 좌측으로 도니 남부시장이 나왔다. 골목마다 상점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주말 밤마다 야시장으로 북적이는 곳이었으나 평일 낮이라 한산한 시장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흑백 사진관 앞 '한 장에 5천 원'이라고 쓰인 현수막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무작정 사진관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온 손님 둘이 우정사진을 찍고 있었다. 얼결에 따라 들어온 엄마와 아빠는 한쪽에 놓인 소파에 앉았다. 뜬금없는 가족사진이었지만, 역시 남는 건 사진이니까. 핸드폰으로 찍는 것도 좋지만, 전문가가 찍어주는 멋진 사진을 부모님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은 날이 언제였나 생각해보니, 십 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조명 달린 거울 앞에 아빠와 아들이 나란히 섰다. 촬영 전 매무새를 가다듬으라는 사진사의 말을 고분고분 따랐다. 어색하게 선 채로 거울 앞에 놓인 빗으로 머릴 빗었다. 첫 번째 사진은 엄마와 아빠 두 사람이 주인공이었다. 프로다운 엄마의 미소 옆 아빠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하하 소리 내어 웃으라는 사진사의 요청에 아빠는 마지못해 멋쩍은 웃음소리만 냈다. 살짝 미소라도 지으면 좋을 텐데, 무엇이 그리 심각한 지 굳어버린 아빠의 얼굴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셋이 같이 찍는 차례가 왔다. 활짝 웃으라는 사진사의 말에 나는 있는 힘껏 미소를 지었다. 사진사는 여러 장 찍은 사진 중에 인화할 사진을 고르라고 했다. 모니터에 비친 내 얼굴은 어색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아빠와 다른 게 하나도 없었다. 영락없는 붕어빵 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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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할 수 없었지만,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점점 늘어난다.
아빠는 꾹꾹 눌러 삼켰지만,
나는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어진다.



<아빠의 말풍선>, 두 번째 이야기


글 / 나무늘보
그림 / 조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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