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마다 빼먹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일요일 아침마다 빼먹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미션은 아빠와 목욕탕 가는 것. 엄마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인해 주말마다 아빠와 나, 둘만의 시간이 생겼다. 평소 쉽게 뜨이지 않던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아침이 시작된다. 미적대며 방문을 열고 나오면, 진작에 일어난 아빠가 차려놓은 밥상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자동반사적으로 수저를 주섬주섬 챙겨 식탁 위에 놓는다. 이내 부지런히 움직이는 수저만 요란할 뿐, 식탁 위 공기는 평온하기 그지없다. 식탁의 시간이 끝나면, 집 근처에 있는 목욕탕에 갈 준비에 들어간다.
아빠는 언제나 검은색 목욕 가방을 챙긴다. 그 안에는 자투리 목욕용품들이 들어 있다. 언제 샀는지 모를 땅꼬마 샴푸와 린스에다, 오래전에 받은 견본품으로 추정되는 샤워젤도 보인다. 그 위로 아빠의 새 속옷과 겉옷이 들어간다. 아직 남아있는 공간에 내 속옷과 겉옷까지 꾸역꾸역 밀어 넣고 힘겹게 지퍼를 잠근다. 터질 것같이 빵빵한 가방이 내 손에 쥐어지면, 아빠와 아들은 나란히 집 문을 나선다.
휴일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목욕탕 탈의실은 한산하다. 옷을 훌렁 벗고, 아빠와 내가 차례로 체중계에 오르는 일은 으레 입탕 전 준비 의식에 해당한다.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빠와 나는 결단코 그런 약속 따위를 한 적이 없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는 아빠는 열탕 속으로, 나는 건식 사우나 안으로 각자 흩어진다. 건식 사우나에 들어간 나는 곧장 모래시계를 뒤집는다. 결국은 모래시계의 고운 모래입자가 바닥으로 다 떨어지기 무섭게 얼른 밖으로 나오고 만다. 이제 나는 때 밀 준비가 다 됐다.
아빠는 아직 열탕에 푹 잠겨 있다. 나는 얼른 목욕탕 의자 두 개를 가져다 놓고 그 위에 수건을 깐다. 어느새 내 옆 자리에 앉은 아빠가 이태리타월을 들어 보인다. 또 약속이라도 한 듯, 뒤돌아 앉아 아빠에게 자연스럽게 내 등을 맡긴다. 어릴 적 아빠의 거친 때밀이는 그 힘이 너무 강력해서 내 몸을 배배 꼬이게 했다. 그 거칠고 투박했던 손이, 이제는 내 등을 간질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빠의 손은 부지런히 내 등을 밀고 또 민다.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내 손이 닿는 부분까지 구석구석 문댄다. 나는 이미 다 컸다고 생각하는데, 아빠는 온몸으로 어린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렇게 자꾸만, 말없이 말을 걸어왔다.
한 달에 두세 번, 아빠는 어린 나를 데리고 목욕탕에 가곤 했다. 아빠와의 추억을 생각하면, 목욕탕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머리가 조금 컸다고 생각한 스무 살 무렵, 한동안 아빠와 목욕탕에 가는 일은 손에 꼽았다. 목욕탕에 가자는 아빠에게 나는 시간이 없다고, 때로는 귀찮다는 핑계로 싫다고 했다. 그때 목욕탕에 같이 가자는 말이, 사실 아빠가 내게 건네는 가장 적극적인 표현이었다는 걸 생각하게 된 건 한참이 지난 후였다.
이번엔 내 차례다. 뒤돌아 앉은 아빠의 널따란 등이 무심한 듯 나를 향한다. 여느 때와 같은 순간인데, 오늘따라 아빠의 등을 유심히 본다. 등 윗부분에 고름이 가득 찬 상처가 눈에 띈다. 상처 난 부분을 조심조심 피해가면서 당신의 등을 민다. 상처 때문에 아프시냐는 나의 물음에, 아빠는 아프지 않다고 짧게 답한다. 하지만 분명, 그저 꾹 참고 있다는 걸 잘 안다. 웬만한 아픔은 참고 넘기는 덤덤한 내 성격이 아빠로부터 왔구나 싶었다.
아빠의 고름 찬 상처는 당신의 손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때때로 그 상처가 등을 간지럽히거나 따끔하게 찌르는 듯한 고통을 줄 때 아무 말 없이 그저 참아내었을 아빠를 생각해보았다. 이따금씩 벽 모서리에 등을 부딪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무심하게 보다가 금세 TV로 시선을 돌리는 내 모습도 보였다. 그래서일까, 아빠의 그 상처가 나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돌아 올 주말에는 빨간 약과 상처 연고, 그리고 메디폼을 잊지 말기로 다짐하면서.
그래서일까, 아빠의 그 상처가 나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아빠의 말풍선>, 첫 번째 이야기
글 / 나무늘보
그림 / 조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