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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티피컬레이디 Oct 27. 2022

아스피 배우자와 육아하기 2편

전문가가 말하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부모

 지난 글에 이어 아스피 배우자와 육아하기에 관한 내용을 이어가 보도록 할게요. 이번 편에서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부모의 육아/양육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체적인 특징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 해 보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인지적 전환의 어려움'을 아스피 부모의 양육에 있어서의 어려움의 원인으로 꼽는데요. 인지 분야의 연구에 따르면 자폐 스펙트럼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의력의 범위와 초점을 업데이트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Berger et al 2003). 이 특별한 주의력 차이는 주의력을 빠르게 재조정하는 것을 선천적으로 할 수 없는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봅니다(Berger et al., 2003). 그리고 이 부분은 그 자체로 부모가 어린 아이들을 돌보고 통제할 때 중요한 부분에 대한 주의력 결핍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육아를 해 본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아이들은 '눈 깜짝할 새'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것이 아이들이겠지요. 마크 역시 "부모라면 자주 주의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하며 압박감을 느낄 때도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렇지만 자폐 스펙트럼에 있는 부모들은 많은 경우 주의를 전환하고 선별하는 데에 결함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입니다. 마크는 이러한 결함들은 감각 과민증 및 감수성저하와 같은 아스퍼거 증후군의 다른 신경학적 차이와도 관련이 있으며 이런 모든 부분들은 함께 그들은 육아의 핵심 작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 합니다. 


 예들 들어, 아스피 부모의 경우 갑자기 매우 강한 냄새가 나면 부모가 자녀가 (역시 갑자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감각 문제로 인해서 어린 아이들이 있으면 당연히 생길 수 있는 정상적인 소음, 난장판, 혼란을 견디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실제로 많은 아스피 부모들이 오랜 시간 동안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돌봄에 따른 부담감을 견디기가 어렵다고 이야기 한다고 합니다. 마크는 다음과 같이 아스피 부모가 직면하는 문제 상황에 대해 기술합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부모는 상황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거나, 셧다운, 멜트다운 또는 독이 되는 것 같은 자극에서 벗어나버리는 것과 같은 여러 수단을 통해 그들에게는 본질적으로 신경학적인 모욕에 가까운 자극들로에 대처합니다. 이로인해 자녀들은 스스로 자신을 돌보고 독립적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주의력 결핍 문제와 관련하여 아스피 부모들은 시각 주의력이 떨어지거나, 시청각 정보가 동시 다발적으로 입력되는 경우 동시에 주의를 기울이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 명의 아이를 동시에 돌봐야 하는 상황에 처하거나, 번잡한 쇼핑센터, 놀이공원과 같은 공간에서 아이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상황에 처할 때, 주의력 결핍으로 양육자의 기능을 충분히 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마크는 이처럼 아스피 부모들은 우리가 자폐아동(지금까지 대부분의 연구가 아이들에 대해 이루어졌고, 거의 모든 포럼에서 우리가 가장 편안하게 토론하는 대상은 아이들이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언급하는 주의력 결핍을 비롯한 모든 문제들을 동일하게 겪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다음과 같이 강조하죠. 


이 문제들은 아동 심리학자에 의해 언급되어 양육권 접근 평가에서 언급이 되어야 할 것이며, 아동 복지 사회 복지사,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아스퍼거 부모들이 직접 언급하고 해결하여 이러한 가족의 아이들이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부모 임계값을 초과하는 경우 더 나은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느끼기에 아스피 남편과 함께 육아를 하는 과정은 때로 배우자와 함께 육아를 하기 보다는 싱글맘같은 기분이 들거나, 남편과 아이 두 명의 육아를 하는 과정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제게 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 처음 알려주었던 결혼 상담사도 지적한 부분이었습니다. 육아 과정에서 마치 '싱글맘'처럼 느껴질 것이라구요. 특히 아이가 문제 행동을 할 때 훈육을 하거나, 아이의 발달 과정에 맞게 새로운 루틴과 기준들을 세워가는 것은 모두 제 몫입니다. 육아 문제로 속상한 일이 있을 때에도 남편과 이야기하며 털어내고 힘을 얻는 부분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에는 아이의 필요를 빨리 캐치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이 불안해서 독박육아에 가까운 육아 부담을 져야 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아이도 아빠와 둘만 있게 되면 단시간에 엄마를 찾고 보챘습니다. 남편도 아이와 둘만 있는 시간을 부담스러워해서 제게는 한 시간의 자유시간도 쉽지 않은 일이었죠. 그 때문에 저는 특히 제 커리어적인 측면에서 많은 포기를 하고 아이와 함께 있어줄 수 밖에 없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조금 자라서 유치원에 다니는 나이가 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남편과 아이의 관계는 매순간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몇년 전 제 블로그의 기록에 이런 내용이 남아 있네요. 


 저녁 식사 후 하루 종일 아이와 시간을 보내지 않았던 남편에게 아이와 잠시 레고 블록을 가지고 놀아달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편의 아스퍼거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에 저녁을 먹은 뒤 40여분 정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를 한 뒤 (그 동안 아이는 저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죠) 편안한 상태의 남편에게 부탁을 했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스피 남편은 만 다섯살인 딸 아이가 짓고 있던 성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아마 관심 분야가 아니었거나, 아이의 목소리가 감각 과부화를 야기해 집중하기 어려웠거나 하는 이유였을 겁니다), 아이는 아빠와 놀기 시작한지 3분만에 소리를 지르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그게 아니라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지만 남편은 자기 고집대로 성을 지어 나갔고, 아이는 아빠가 자기 말을 듣지 않고 자기가 짓던 성까지 망쳤다며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아빠를 밀치고 아빠가 싫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이를 견디지 못한 제 남편은 상황을 수습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바로 자리를 박차고 위층에 있는 자기 침실로 혼자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아이를 달래고 남편에게 가서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설명해야 하는 것은 제 몫이었습니다.  

 

 제가 그 상황에서 아이를 달래고 마음을 보듬어주지 않았다면 아이는 감정적으로 방치된 상태에서 스스로를 돌봐야 했을 것입니다. 아직 그러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인데 말이죠.



 그렇지만 제 남편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느냐구요? 그건 절대 아닙니다. 세상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제 남편입니다. 다만, 본인의 자폐가 아이와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떻게 해야 극복하는지 잘 모르는 것이지요. 제가 자폐로 인해 남편이 육아에서 잘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기 전에 위와 같은 상황들은 제게 남편에 대한 불만, 섭섭함으로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제가 먼저 노력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하자 남편도 느리지만 조금씩 이해와 인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수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요즘 저희의 육아를 살펴보면 저희의 공동육아는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스피들은 많은 경우 감정적 교류나 표현은 잘 하지 못하지만,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합니다. 저희 남편도 매우 그런 편이어서 육아와 집안일의 많은 부분을 특정 업무들을 수행하는 것으로 가족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표현합니다. 다행히 요리를 잘 하는 남편은 제가 아이의 숙제를 봐 줄 때 근사한 저녁상을 차리기도 하고, 제가 업무로 바쁠 때에는 아이를 학교와 학원에 데려다 주는 일들을 불만 없이 해 줍니다. 아이가 커 가면서 아이와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더 수월해진 뒤로는 둘이 함께 장을 보러 가기도 하고, 남편이 비교적 편안하게 함께 하는 활동들인 카드게임, 영화보기 등의 여가도 함께 즐기면서 제게 전에 없던 자유시간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아이도 잔소리가 많은 엄마는 숙제할 때, 피아노 연습할 때 함께 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신나게 넷플릭스 키즈쇼를 보고 싶을 때에는 아빠를 찾습니다. 아빠랑만 하는 놀이들도 점점 늘어갑니다. 아빠랑 놀다가 삐쳐서 슬프면 바로 엄마에게 달려오지만 말이죠. 


 아스피 남편의 부모로서의 역할에서 기대할 수 있는 기능들의 한계와 가능한 문제들에 대한 이해를 미리 했더라면,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훨씬 수월하게 이 모든 상황들을 대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가지고 있었던 남편의 아빠로서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비현실적인 것이라는 것을 애초부터 알았더라면 정형인의 기준에서 남편의 결핍이나 부족한 부분에 대해 비난하거나 화내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리고 제가 해야 할 역할과 상황에 대해 더 정확히 파악하고 필요한 도움을 외부에서 받는 더 현명한 선택을 했을 것 같습니다. 나아가 아스피 남편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과 그로 인해 공동 육아에서 해 줄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감사히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두 편의 연재가 아스피 배우자/파트너와 함께 육아를 해 나가는 혹은 앞으로 해 나가실 많은 정형인 배우자분들, 그리고 부모이시거나 부모가 되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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