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속이 상해 엉엉 울었다. 양수는 터진 지 오래고 수술을 하기는 너무 싫었다. 유도 분만을 위한 투약을 하는 중이었지만, 진통이 아주 효과적으로 오고 있지는 않았다. 생리통이 아주 많이 심한 정도로만 진통이 왔고, 내진을 해봐도 자궁 경부는 2센티 이상 열리지 않은 채 묵묵부답이었다. 양수가 터진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 태아에게도 감염 위험이 높아진다. 산모의 스트레스는 태아의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이는 태아의 심박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산모들 사이에서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바로, 유도 분만 후 진통은 틀대로 다 틀고 아기는 나와 주지 않고 제왕 절개하는 것이다. 힘든 과정은 모두 겪고 결국 마지막에 급하게 수술하는 것을 다들 가장 두려워했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 케이스가 되었다.
뱃속의 아이가 37주가 되자마자 나는 '이제는 아이가 언제 나와도 정상 분만이다!' 외치며 짐볼을 열심히 굴렸다. 이제 분만을 위한 준비 운동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때는 바야흐로 전공의 4년 차 겨울이었고, 나는 전문의 시험을 앞두고 있어 운동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무사히 자연 분만하고 건강하게 나와 주어야 나 역시 무사히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예정일대로라면 분만 직후 바로 시험을 치러 가야 할 수도 있고, 혹은 시험 중에 진통이 시작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누구도 이 시기에 분만하도록 계획하지는 않을, 그런 날에 바로 내가 임신을 했던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의도한 것은 아니다. 다만 계획했던 날짜에 자꾸 실패했고, 점점 밀리자 이제는 다시 피임을 해야겠다고 다짐한 순간 임신이 되었을 뿐.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37주 1일이 되자마자 일단 양수를 터트렸다. (나 나름 의사인데 이런 표현이 허용되려나 모르겠다.) 엄마! 내가 어서 세상 밖으로 나갈게! 엄마 전문의 시험은 쳐야지!
누가 그랬던가. 뱃속에 있을 때가 가장 편하다고. 나는 공부하는데 너무 배가 불러 있으니 쉬이 위식도 역류가 오고, 많이 먹지도 못하고, 자세도 불편하고, 허리도 아프고, 겨울이라 옷도 두텁고 하여, 나와 주면 훨씬 내 몸이 편해질 줄로만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제 아무리 다른 이가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좋다고 했어도, 당장 배 속에 아기가 있는 상황에서는 그 말을 도저히 믿기가 힘들었다. 내 아이는 나와서도 나를 잘 도와줄 거야. 내 아이는 전문의 시험공부로 태교 했으니 별나지 않고 괜찮을 거야. 나의 신체는, 이 아이가 나와주면 조금은 가벼워지고 조금은 더 편해질 거야.
아이는 보통 정도로 순한 편이었다. 하지만, 내 몸은 그토록 많은 양수가 빠지고, 3 킬로 가량의 아이도 빠지고, 태반도 빠지고, 많은 것들이 빠져나갔는데도, 그럼에도, 신기하게도, 어이없게도, 몸무게가 딱 3킬로만 빠져 있었다. 17킬로를 찌웠는데 도대체 나머지는 어쩌라는 건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조금도 편해지지 않았다. 젖몸살로 힘들었고, 자궁 수축이 있을 때마다 오로는 쏟아져 나왔고, 아이는 시시때때로 배가 고파 울었다. 교과서로 봤고, 사람들이 말을 해줬던 것도 같은데, 겪기 전엔 모르는 거였다. 그리고 그 시기가 굉장히 길 줄도 미처 생각지 못했다. 산욕기가 왜 6주였는지, 그 기간에 왜 조심하라고 하는 건지, 몸을 따수이 하고, 외출을 삼가고, 이 시기를 보전하지 못하면 골병든다는 말을 왜 하는지, 겪어 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이었다. 왜 나는 모든 것을 직접 몸소 체험해야 알게 되는 걸까. 하지만 2주 만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찬 기운을 느끼며 조리원을 나와 시험을 치르기 위해 서울로 향했다. 남들은 귀마개와 청심환, 수면제 이런 것들을 챙긴다던데, 내가 챙긴 건? 바로 유축기. 같은 방 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세 시간 간격으로 유축을 하며, 시험 전날을 보냈다. 너무도 피곤해진 나는 머리를 대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긴장은 커녕 매우 피로해서 어서 끝나기만을 바라며 시험은 치는 둥 마는 둥 제발 커트라인으로 붙기만 해라 기도하고 재빨리 나왔다.
임신을 했던 전공의나 출산을 했던 전공의가 떨어진 사례는 거의 없었는데, 아이가 부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속설도 있다. 조리원 화장대에 족보를 붙여 놓고 짬짬이 공부를 하긴 했다. 그래도 몸이 너무 피곤하고 나른하고 힘들어 절대량이 부족했던 지라 마음을 졸였던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아기 덕분인지 아닌지 합격은 했고 아이는 엄마가 시험 치러 가고 없는 사이에도 무럭무럭 잘 자라 주었다.
내가 굳이 자연 분만을 하고 싶었던 것은, 일부러 그 고통을 감내해보겠다는 엄마의 희생정신 이런 게 아니다. 자연 분만은 산모의 회복이 빠르고, 입원 기간을 줄일 수 있고, 아이는 미생물 샤워 과정을 거치며 장내 세균총을 다양화할 수 있어 면역이 높아지기도 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 보다도 스스로 내 몸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컸기 때문에 수술하기가 싫었던 것 같다. 또한 대학 병원에 있으면 워낙 출산 과정의 좋지 않은 응급상황들을 많이 겪기에 조금 무섭기도 했다.
가끔, 아이들이 환절기마다 감기에 걸리고, 계절성 알레르기 질환을 겪는 것이, 제왕 절개 탓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 죄책감은 아니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달까. 물론 자연 분만에 완전 모유 수유만 했어도 결과는 같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항상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있기 마련이므로, 나 역시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을 뿐이다. 모유량이 부족해서 분유로 키운 아이 엄마에게 내가 '모유만 먹여봐야 똑같아, 힘들기만 하지. 요즘 분유도 얼마나 좋은데'라고 이야기해봐야 씨알도 안 먹히는 것과 똑같다.
수술하기 싫다고 외치며 울던 내가 떠오른다. 울 일도 아닌데, 내가 너무 서럽게 우니, 엄마도 남편도 따라 울었다. 응급 수술에는 전신 마취가 기본인데 산모가 전신 마취 싫다며 울고 있으니 마취과 과장님도 특별히 경막외 마취를 허용해주었고, 하체만 마취하고 의식은 오롯이 유지한 채 수술을 진행하였다. 하필이면 반사등에 일부 수술 부위가 비쳐서 수술하는 과정을 나 역시 구경할 수 있었는데, 다른 산모였으면 기겁했을 것도 같지만 나는 좀 신기하기도 하고 나름 또 재미가 있었다. 출산 이후 후배들이 조리원에 문병을 와서 수술해야 했던 상황을 설명하려는데 또 괜히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으헝헝, 이건 다 호르몬 때문이야. 내가 울려고 우는 게 아니라고..! 아직도 그때 그 후배들은 그렇게 울던 나를 놀린다. 언니 그때 뭐랬는지 알아요? 호르몬 때문이라며 엉엉 울었잖아요, 그때 너무 웃겼어요.
출산의 과정은 임신 날짜 정하기부터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출산의 날짜조차도 둘 다 예정된 날짜를 훨씬 앞서서 양수가 터지는 바람에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양수가 터지고도 유도가 되지 않아서 자연분만을 계획했었지만 출산의 방법마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에도 온통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다. 그저, 조금 비워내고 한 발짝 물러서서 그러려니 해야겠다. 어차피 계획해봐야,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