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과 비보험 사이
혈전용해제? 항혈소판제제? 항응고제?
같은 듯 다른 듯 헛갈리는 약물들
뇌경색 중에서도 정확한 증상 발생 시점으로부터 3시간에서 4시간 반 안에 오면 혈전용해제를 사용해볼 수 있는데, 혈전용해제를 사용하는 것은 고려해야 할 많은 것들이 있다. 왜냐하면 조금만 금기시되는 경우에 사용했다가는 터질 수도 있고 출혈의 위험도 크므로, 실상 쓸 수 있는 시간 안에 내원하였어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혈전용해제는 주사제다. 서두에 써놨듯 일반인은 용어를 헛갈려 할 수 있는데, 일단 제일 강력한 것이 혈전용해제이며, 세 종류 중 가장 드물게 사용되고, 응급실에서 급한 상황에 1시간 동안 모니터 해가면서 주의해서 사용하는 정맥 주사라고 기억하면 된다. tPA, 액티라제라는 약을 주로 사용한다.
항혈소판제제는 다들 많이 들어 본 아스피린, 플라빅스와 같은 약이며, 항응고제는 와파린을 포함하여 자렐토, 릭시아나, 다비가트란, 엘리퀴스 등이 있다. 오늘은 혈전용해제와 보험 문제, 그리고 뇌경색 환자들의 산정 특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40대 환자가 심방세동이 있고, 심부전을 앓고 있었다. 항응고제를 먹다가 특수한 상황으로 복용을 중단한 차에 복시와 구음 장애, 편측 위약감으로 내원하였다. 환자는 근무 외 시간에 증상 발생으로부터 1시간 만에 내원하였고, 환자를 정확히 보지 못한 상태로 혈전 용해제를 사용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었다. 환자의 MRI에서 저명한 뇌경색 소견은 보이지 않았다. 뇌경색은 영상을 너무 빨리 찍은 경우에도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을 수가 있다. 따라서 논문에서도 임상적으로 증상이 명확하다면 CT 결과(뇌출혈만 배재된 상태로)만으로도 tPA를 쓸 것을 권고하고 있다. MRI에서 병변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CT에서 뇌출혈 소견은 없고, 심장의 위험 인자가 아주 명확한 상태에서, 나이까지 매우 젊었으니, 일정 점수 이상만 충족한다면 tPA를 써야 할 상황이다. 고민 끝에 tPA를 쓰자고 오더를 내리고선 후다닥 병원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복시만 호소했다던 환자가, MRI를 찍고 났더니 좌측 편마비와 구음 장애까지 생겼다고 하니, 뭐라도 해보는 게 이익이라고 판단했다. 무엇보다도 환자 나이가 너무 젊었다.
병원에 도착을 해서 환자를 보는데, 그 십여 분 사이에 증상이 좋아져 있었다. 잠시 나빠졌던 모든 증상이 호전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경우 일과성 뇌허혈 발작(TIA, Transient Ischemic attack)이라는 진단명이 붙게 된다. 자,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환자는 뇌경색이 강력히 의심되어 빠른 시간 안에 tPA가 일부 들어간 상태다. 하지만 나머지 약을 쓰기에는 증상 대비 위험 부담(출혈)이 커서 약을 바로 중단하였다. 약은 5mg 만 쓰고 45mg가 남아 있는 상황이지만, 50mg 하나를 깠으니 통으로 전체 비용이 발생한다. 진단명이 TIA로 바뀌었으니 보험이 되지 않아 비급여로 120만 원을 날리게 되었다.
환자는 다 쓰지도 않은 약값으로 120만 원을 날리게 되는 상황이 매우 억울할 수 있다. 처음에는 뇌경색이 의심되어 사용하였으니 뇌경색 코드를 넣고 보험을 해주는 게 도리이다 싶었고, 비록 중간에 약을 중단하긴 하였지만, 유감스럽게도 약값 전체 가격(보험 금액으로는 60만 원 정도)이 청구될 것이라고 환자에게 설명하였다. 뇌경색 의증이라는 진단명이 환자에게 따라붙게 되겠지만, 그래도 약값 지원은 받을 수 있게 (환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나름의 배려를 해준 셈이다. 환자가 여기까지는 동의를 하였다. 어쨌든 본인을 위해서 약을 깠고, 그 약을 다 못쓴 채 폐기했음에도 돈은 전체 용량으로 청구된다는 내용을 어느 정도는 이해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퇴원 후 나중에 심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다시 문제가 불거졌다.
심사과에서 직접 사람이 찾아왔다. 나라에서 증상 발생 24시간 안에 내원한 일정 점수 이상의 뇌경색 환자에게는 중증 등록을 해주는데, tPA는 24시간 이내 일정 점수 이상에서 쓰게 되니까 tPA를 보험으로 쓴 사람은 자동으로 중증 등록이 되어버리고, 환자는 중증 대상이 되어 버린다고 한다. 딴에 배려해준답시고 tPA를 보험으로 청구했더니, 환자 입원비의 전체를 다시 재심사하여 오히려 금액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환자의 입원 기간 전체를 산정특례 해주면 환자에게 좋은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또 그렇지가 않다. 보험 재정은 한정적이며(이게 다 우리 건강보험료다!), 꼭 특례를 받아야 할 대상이 그 혜택을 받아야 하는 것인데, 어쩔 수 없이 깐 약값 '비급여 120만 원을 청구하기가 미안하니까' 증상이 없어진 사람에게 특례를 해준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애매한 상황에서는 나중에 고스란히 삭감을 당하고 병원에 피해를 주게 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심사과와 오랜 상의 끝에 환자에게 욕먹을 각오를 하고 결정하였다. 비급여로 가자. 60만 원을 더 내게 하고, 뇌경색 진단은 붙이지 말고, 개인 사보험(실비) 처리를 할 수 있게 도와주자. 다행히 환자는 감사하게도 이해를 해주었다. 하지만 보험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해진다.
문제는 언제나 돈이다. 그리고 가끔은 심평원의 보험 문제로 상황이 골치 아프게 흘러간다. 물론 의료 보험 제도가 만든 기준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규정을 정해놓아야 하고, 객관화를 위해 점수화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임상적으로 유의하나 점수가 맞지 않아 보험을 받지 못하거나 불편을 감수해야 하거나 손해를 보는 일이 왕왕 생기고 만다.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은 있고, 조금씩 뭔가 개선이 되고는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tPA 기준에 나이 제한이 있었는데 지금은 상한 연령 제한은 사라지고 없는 것을 보면. 하지만 여전히 행정적으로나 간발의 시간 차로 현실적인 문제들은 생긴다. 엄밀히 말하자면 앞선 경우는 주입을 시작하기 전에 증상이 빠른 속도로 회복을 보였던 경우로, 약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주입 직전에 좋아졌다던 환자도 약이 들어가고 나서야 그 말을 하였고, 이미 그전에 약은 깐 상황이었다. 간발의 차이로 문제 상황이 되어버린 것.
모든 의학적 상황들이 교과서대로만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 예외 상황, 특수 상황 없이 교과서대로 딱딱 증상을 이야기해주고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크게 부담스럽지도 않은 상황들만 이어지면 얼마나 편할까. AI가 의사를 대체하면 좀 더 의사 결정이 쉬워질까? 선과 악이 분명한 꼬맹이들이 사회 문제를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이 간결한 것처럼, 알면 알수록 옳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무엇이 더 중하고, 무엇을 더 가치 있게 보느냐에 따라 치료 방향이나 진단 과정의 간소함의 정도가 달라진다. 그리고 환자를 배려해주려는 마음이 오히려 독이 될 때도 있으니, (사소하게는 검사 결과 설명을 다른 날 들으러 오는 경우 진료비를 빼주기도 하는데 그러면 주차비 정산을 못 받게 되어 차후 불만으로 이어진다.) 예기치 못한 상황의 연출이란 참으로 어렵다. 점점 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마찬가지로 보험 문제에서 있어 계속되는 예외 상황, 특례는 모두를 혼란하게 할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정말 특례 받아야 할 사람이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개선이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