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후반 여자 환자였다. 노부부가 함께 살고 있고, 새벽 6시 반에 화장실 가는 것을 확인했던 남편은 얼핏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밥을 안치고 나서 부인을 7시에 보러 갔는데 좌측을 전혀 못 쓰는 상태로 의식이 처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환자는 마지막 정상 시각으로부터 3시간 이내에 병원에 도착하였다. 연로하지만 인지 기능에 문제가 없던 남편의 빠른 대처로 가능한 일이었다. 119를 당장 부르고, 언제부터 안 좋았는지 정확히 서술했다. 우측 경동맥 전체가 아예 보이지 않는 상태였고 우측 중뇌동맥 전부가 막혀 뇌경색을 일으켰던 경우였다.
평소 할머니는 병전에 일상생활 동작에 무리가 없었다. 사람의 뇌는 뇌경색이나 외상 등의 이유로 크게 다치면, 마구 붓기 시작하는데 연로하신 분일 수록 노화의 과정으로 뇌가 위축되기에, 두개골 안에 남는 용적이 많아 뇌부종이 생기더라도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다. 평소 뇌의 위축이 저명하지 않고, 나이에 비해 기능이 아주 좋았던 경우, 즉 젊은 뇌를 가진 분들이 오히려 갑작스러운 사고에 반대 측으로 밀리는 속도가 빨라 뇌간을 압박함으로써, 빠른 속도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환자는 후자에 속했다. 치매가 아주 진행을 해서 두개골 안에 비어 있는 공간이 많았던 사람이었다면 조금 더 생존 가능성은 높았을지도 모르겠다. 병전 상태가 좋았던 만큼 ‘뭐라도’ 해봐야 했다.
현재 뇌경색에서 해볼 수 있는 급성기 치료는 2가지다. 하나는, 3시간 이내 혈전용해제이고, 또 하나는 혈전제거술이다. 환자는 둘 다 적응이 되었기에 둘 다 시행받았다. 하지만 혈관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고, 시술 접근 자체가 용이하지 않아 시술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겨우 끄집어낸 혈전들로 혈관은 재개통이 되었으나, 혈관벽이 손상되면서 거미막하 출혈로 이어졌다. 출혈까지 동반한 경우는 정말 예후가 나쁘다. 일반적인 큰 뇌경색의 부종 속도의 서너 배는 빠른 속도로 뇌부종이 악화되면서 사망에 이르게 된다.
할머니의 시술을 말렸더라면 어땠을까. 나이를 고려해서 무리한 시술은 진행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 결과를 알 수 없다. 시술 후 뇌출혈이 생기지 않았다고 해도, 이미 뇌의 1/3 정도가 뇌경색이 와버린 상태에서 그 누구도 뇌부종을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속도의 차이일 뿐이다. 연명의 관점에서는 좀 더 생존 시간을 늘릴 수도 있었겠지만, 건강 수명의 관점에서는 바람직한 결과가 아닐 수 있다. 운 좋게 살았다고 하더라도 누워 지낸 채, 오랜 기간 병원 생활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생전에 환자는 가족들과 죽음에 관한 의견을 자주 나누었던 모양이다. 평소 장기 기증에도 뜻이 있던 분이었고, 연명 치료를 원치 않는다는 서약증을 가지고 있었다. 남편은 이를 잘 숙지하고 있었다. 시술의 중간중간에 나와서 보호자에게 현 상황을 전했다. 모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달라던 남편은, 환자가 점차 나빠지자 혼란의 시간을 잠시 보내고는 이내 이성을 되찾았다. 아내가 남긴 서약증을 보이며 현 상황에서 하고자 하는 치료 범위를 병전 환자의 뜻에 맞게 지정해주었다.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미리 썼어도 이렇듯 상황이 닥치면 의료진은 다시 보호자에게 물어보게 된다. 본인이 써놓았지만 의식이 없다면, 서류가 이러하니 손을 놓겠습니다, 할 의사는 없다. 보호자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본인의 병전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슨 수를 써서든 살려야 한다. 그래서 대화가 필요하다. 많은 부분 미리 소통을 하고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
1936년의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평균 42.6세였다. 2020년 기준 기대 수명은 83.5세라고 한다. 우리는 오래 살 각오를 해야 한다. 이제는 60대라 하면 젊은 나이라고 생각될 정도다. 종합적인 고려와 케어가 필요하다. 이렇게 오래 살아본 적이 없는 우리들은 오래 사는 것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노인이 될수록 모든 병의 확률은 높아지고 불편한 삶이 기다리고 있는데, 얼마나 건강하게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평균수명보다도, 건강기대수명이 더 중요한 문제이다.
죽음을 준비하자. 남은 사람들이 나를 돌봄에 있어서 어떤 선택을 할지, 미리 많은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건강할 때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논의하고, 나이가 듦을 주제로 이야기하며 죽음을 준비해 가야 한다.
할머니는 내게 많은 숙제를 남겼다. 심한 뇌부종으로 중추성 요붕증 상태일 때 바소프레신을 줬으면 어땠을까, 뇌부종이 심한 상태였지만 오히려 만니톨을 끊어버렸다면 나트륨이 안정되고 조금이나마 더 오래 살았을까, 나이도 있고 이미 뇌경색이 크게 와버려 살릴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었는데 아예 시술 자체를 안 하시는 게 좋겠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정답은 없다. 모든 의학적 상황은 순간의 최선이 모여 결정되는 오더이며, 결과가 사망이었다고 해서 시도해볼 가치조차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 한들, 그때만 할 수 있는 최선의 결단이 그릇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난 발에 땀이 나도록 보호자에게 현 상황을 설명하고 처치를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고, 힘겨운 사망 진단이 이어졌다. 아무리 위안을 해 보아도 쉬이 기분이 좋아질리는 만무하다.
생전에 현명하게 죽음을 준비해 온 환자는, 아마도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이다. 남겨진 사람들이 너무 힘들지 않도록 빨리 생을 마감해 준 것도 어쩌면 고마운 일일지도 모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평온한 저 너머의 세계에서 몸과 마음이 평온하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