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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Sep 08. 2022

죽음의 언저리에서

왜 내 손을 거치면 부고가 뜨나


우연의 일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힘든 건 사실이다. 한 달 사이 전해 들은 여러 부고에 대해 생각한다. 마음이 힘들다. 어서 일을 그만두어야겠다고도 다짐한다. 신경과에는 의식이 쳐지는 환자들이 많다. 상태가 많이 안 좋을 때 거치는 관문 같은 곳이니, 스치듯 죽음을 제법 접한다. 가끔 부담이 된다.


#1.

췌장암이었고, 수술이 잘 되었고, 비교적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나이가 그리 많지 않았고 스스로 보행 하에 서울까지 다녀올 정도로 컨디션이 많이 회복한 상태였다. 보호자인 딸은 불행 중 다행으로 수술이 잘 되어 기뻤고, 사랑하는 엄마와 나들이를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식이 쳐지더니, 경련을 하기 시작한다. 신경과에 협진 의뢰가 되고 신경과 의사인 나는 환자의 멀쩡한 상태는 모른 채 경련을 하는 환자를 처음으로 대면하게 된다. 경련은 주기적으로 일어났고, 의식의 회복 없이 반복했다. 이런 경우 경련 중첩증 상태로 보고 치사율이 아주 높다고 설명한다. 모니터가 필요할 수 있으며, 많은 양의 항경련제가 투여되면서 부작용이 발생하고,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환자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이전의 상태를 다시 만나보지 못한 상태로 헤어짐을 맞이했다. 임종의 순간 효심 깊던 딸의 얼굴을 상상한다. 감히 내가 그 슬픔을 가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차트를 통해 만난 부고는 내 잘못이 아니라고 소리치는 이성의 부르짖음은 무시한 채 침잠하는 마음을 오롯이 느끼게 했다.




#2.

간암이었고 비교적 관리가 잘 되던 환자였다. 소화기 내과 과장님의 특별 관리 하에 있는 환자 같았다. 환자 중에서도 마음이 쓰이는 환자는 있기 마련이다. 치료자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본인의 질병에 대해 숙지하며 치료에 성심성의껏 따라주는 사람은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법이다. 뭔가 물질적인 보상이 없어도, 물질적 보상에 대한 부담 없이, 마음을 다해 치료해주어야 할 것 같은 사람들이 분명 있다. 어떤 종류의 환자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과장님이 꽤 마음을 쓰고 있다, 는 느낌을 주는 환자였다. 특별히 의식 저하의 이유는 없어 보였고, 대사성 뇌병증이라고 판단했다. 뇌파도 특별한 게 없었고, 뇌 CT에서도 특이 소견이 없었다. 의식 회복 없이 누워 있으면 환자는 더 나빠지기 마련이다. 식사를 하지 못하고, 욕창이나 폐렴 등의 합병증이 생기면서 악순환을 거친다. 원인이 명확한 경우에 그 원인을 해결하면 좋아지기도 하지만, 여러 소소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결국, 환자의 의식은 끝내 회복하지 못했고, 어느 날 협진이 더 이상 뜨지 않았다. 차트를 들여다보는 것이, 두려울 때가 있다. 한참 잘 내원하다가 소식이 끊긴 환자의 차트를 살필 때, 상태가 좋지 않던 환자가 협진 목록에서 갑자기 사라질 때. 이건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마음을 쓰다가 어느 날 마음 쓸 곳이 사라졌을 때는 허탈하다. 해줄 것이 없었기에 홀가분한 마음도 일부 들면서, 기분은 한없이 가라앉고 만다.




#3.

불과 일주일 전이다. 어지럽고 보행이 좋지 않아 응급실로 내원한 환자가 있었다. 강박으로 많은 약물을 복용하고 있던 분이라 약물로 인한 증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약물 조절 및 평가를 위해 입원을 할 예정이었다. 환자는 같은 병원 타과 의사의 아버지였고,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기립경 검사를 하고 추가 검사들을 시행하려던 찰나, 간병 예정이던 부인이 코로나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는 바람에 보호자와의 상의 하에 일단 귀가를 했다. 외래에 오셔서 결과를 설명드렸는데, 당시 약을 줄였더니 잠을 못 자 힘들다고 하였다. 약은 기존 다니던 정신과에서 조절을 잘해 보자 설명했다. 그게 불과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분의 부고 알림이 울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도대체 갑자기 무슨 연유로? 상주인 아들에게 연락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한 양, 가슴이 벌렁거렸다.


혹시나 하여 차트를 다시 들여다본다. 뭔가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아무리 들여봐도 마지막 내 기록 외에는 딱히 다른 기록이 나오지 않았다. 세심하게 사인이 될만한 것들을 찾아본다. 내가 놓친 것이 있을지도 몰라. 없었다. 설마 잠을 못 자 약을 털어 드신 건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부랴부랴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상주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아침에 돌아가신 채로 발견되었다 한다. 심폐소생을 했지만 소생을 못했다고. 아마도 코로나에 뒤늦게 감염되고 혈전으로 인해 급사했던 것이 아닐까 짐작만 하였다. 어쩌면 남인 내게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인데 의사인 아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루 종일 울어 얼굴이 퉁퉁 부은 상태였다. 짧은 순간, 기록을 다시 살피며 정신없던 내 모습을 생각해보면 아들의 지난 몇 시간이 어땠을지, 얼마나 많은 후회의 시간을 보냈을지 조금은 짐작이 되었다. 정신과 의사도 본인이 치료하던 환자가 자살을 하면 하루 종일 차트를 보며 죄책감과 미안함과 자괴감에 시달린다고 한다. 하물며 친가족은 어떠할까. 자살이 아니더라도 갑작스러운 죽음은 주변인에게 큰 트라우마를 안긴다. 




#4.

심장 질환이 있던 분이고, 지인의 아버지였다. 심폐소생술을 한 시간 반 동안 하고 기적적으로 살려냈다. 하지만 완벽하게 호흡이 돌아오지는 않았고, 저산소성 뇌손상 가능성이 다분한 상태였다. 뇌간 반사가 비교적 보존되고 있어 다행이었지만, 어느 날부터 전신 경련을 하기 시작한다. 중간에 찍어본 뇌파가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간헐적으로 하루에 두 번 꼴로 경련을 했고, 환자는 경련 중첩증 상태로 판단하여 다량의 약물이 투여되었다. 지켜봐야 하겠지만, 여전히 의식은 좋지 않은 상태이며 다량의 약물로 인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심장 시술은 잘 되었다고 하나 앞으로의 상황이 조마조마하다. 딸이 매일 아버지의 상태를 살펴보고 자그마한 사인도 놓치지 않고 보고해준다. 매사에 감사할 줄 아는 딸로 잘 키운 아버지인 환자에게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뇌파를 한 번씩 찍어보고, 경련을 조절하는 것뿐이지만. 빠른 시일 내로 좋아지길 진심 어린 마음으로 기도한다. 더 이상의 부고는 원치 않아. 거역할 수 없는 신의 뜻일지라도 내 손을 거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힘에 겨운 일이다. 나이가 들어도, 시간이 흘러도, 많이 겪어봐도,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다.


죽음과 문득 가까워진 8월이었다. 휴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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