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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Aug 23. 2022

계절별 하동


대한민국은 사계절의 변화가 명확하며, 애정 하는 곳의 계절별 변화를 느껴 보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인 일이다. 같은 곳이라도 누구와 가는지, 언제 가는지에 따라 매번 다르다. 그 변화를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처음 와본 것처럼, 새로운 곳에 온 것처럼, 지루하지 않게 여행할 수 있게 된다. 하동은, 나름의 매력이 있는 곳으로, 아이들과는 3번 가 보았다. 그 3번이 마침 봄, 가을, 겨울이었어서 계절별 다른 특색에 중점을 두어 써볼까 한다.


1. 가을의 하동


첫째가 돌이 채 되지 않았을 때다. 아기띠를 하고 다니던 시절. 나는 일 년 동안 의사 가운을 벗고 아이 양육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주말이면 언제나 어딘가로 나섰고, 점점 그 거리가 멀어지더니, 종국에는 하동까지 가게 되었다. 아이는, 차를 타는 데 어려움이 없는 편이었고, 차를 타면 오히려 얌전히 잘 자 주었기 때문에 오히려 여행을 가는 것이 수월하다고 느꼈다. 아마도 언젠가 나의 어린 시절 갔겠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던 하동. 쌍계사와 화개 장터가 하동에 있는 줄 새삼 깨달으며 아침부터 부산하게 짐을 싸고 쌍계사 근처 동정 산장으로 향했다. 하동에서 근무하고 있는 지인의 추천으로 가본 곳인데 미리 전화하면 미리 재워둔 토종닭 한 마리를 숯불에 구워 먹을 수 있다. 바로 아래 계곡으로는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지리산 공기를 머금은 청량하고 맑은 공기와 함께 토종닭을 호로록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아기는 이유식을 먹이고, 남편과 나는 닭 숯불구이를 먹으면서 계곡 멍을 하였다.



아이는 이내 잠이 들었고, 자는 아이를 데리고 근처에 있던 쌍계사를 구경했다. 예전 사진들을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아이가 정말 많이 컸구나 (현재 초2) 싶다. 쌍계사를 나오려는데 잠에서 깬 아이와 쌍계사 안내 지도 표지판을 바라보며 다소 허탈한 웃음을 짓던 기억이 난다. 날이 선선했고, 지리산의 청량한 기운이 좋았다. 자고 있던 아이도, 그 기운을 느꼈으리라, 내 맘대로 생각해 보았다. 아이가 둘인 지금 시점에서, 자유의지가 발달하지 않은 돌 전의 아이가 오히려 데리고 다니기 편했다 싶다. 아이가 크면 짐은 줄어들지 모르나 (기저귀, 이유식, 우유 등이 필요 없어졌으니) 둘이 치고받고 싸우고 의견 일치 안 될 때가 많아 오히려 마음은 더 힘들달까. 지나고 나서야 생각하는, 그래 저때가 좋았지. (아마 그때도 힘들지 않았을까)



아기띠 안에서 잠들어 버린 아기와 함께 둘러본 쌍계사



재정비의 시간 후 화개장터로 향했다. 꿀호떡, 밤, 쥐포, 우엉차, 뻥튀기 등 군것질거리를 비롯하여 다음날 아침에 먹을 메밀묵, 재첩국, 지리산 흑돼지 등을 사고 장터에서 저녁을 먹었다. 아침에 먹은 메밀묵과 재첩국이 너무나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지리산 흑돼지가 얼마나 두껍던지, 장터에서 먹었던 저녁보다도 훨씬 맛있게 잘 먹었다. 사간 재첩국을 냉동 보관 후 가끔 해동해서 먹곤 했는데, 재첩이 아주 크고, 실하고, 재첩 자체의 씁쓸한 식감이 많지 않아 좋았다. 더 많이 사서 쟁여 놓을걸.



둘째 날에는 최참판댁에 들러보았다. 토지를 감명 깊게 읽은 사람이라면 감동이 배가 되었을 텐데, 읽어보지 않은 채 와서 아쉬운 마음이 크다. 가을스럽던 감나무와 낙엽들이 고즈넉한 집과 참으로 잘 어울린다. 내려오던 길에 자그마한 공방 등이 있어 소소하게 구경하기 좋은 곳이다. 최참판댁 초입부에 있던 평사리 국밥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나서는데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비 내리는 하동도 운치 있고 좋구나. 평사리 평야를 지나는데 노랗게 물든 평야가 어찌나 가을스럽던지. 아이와 노란 배경으로 우산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후로도 스치는 가을을 놓칠세라, 추워지기 전에 매주 여기저기 쏘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육아에 전념했던 그 일 년이 나쁘지 않았는데. 한 사람의 쥐꼬리 만한 전공의 월급으로도 행복한 한 해였다.


첫째 300일 기념(?) 여행 하동 최참판댁



2. 봄의 하동


나름 전에 한 번 와 봤다고 하동이 벌써 익숙한 우리들이다. 이때는 아마 첫째 16개월 즈음이 아니었나 싶다. 봄의 하동, 하면 의당 떠올리는 것이 바로 십리 벚꽃길이 아닌가 한다. 시기를 잘 맞춰 가면 아름답고도 길고 긴 십리 벚꽃길을 감상할 수 있지만 교통 정체와 인파를 이겨내야 하는 단점이 있다. 4월 말에 접어들고 있던 차라, 벚꽃은 거의 진 상태의 하동을 만날 수 있었다.


두 번째 들른 하동에서는 송림 공원이 특히 좋았다. 조선 시대 때 만든 첫 인공 정원이라 들었다. 섬진강도 보이고, 소나무 향내가 폴폴 나는, 마음에 쏙 드는 곳이었다. 아이들에게도 자그마한 미끄럼틀과 시소 등의 시설물이 있어 좋다. 오다가다 운동할 수 있는 기구도 있고, 자연과 함께 하는 힐링의 공간이랄까. 이상하게 주력 상품보다도 서브 상품에 더 눈길이 가는 나는, 취향이 독특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메인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대고 정신없지만, 서브에는 여유가 있어 좋달까.




하동 송림 공원. 섬진강 바라보며 산책하고, 아이는 무한 반복 미끄럼틀을 탔다.


먹거리에 진심인 남편 덕에 2월부터 4월까지가 제철이라는 엄청 큰 섬진강 벚굴을 먹으러 갔다. 벚꽃이 피는 시기에 가장 맛이 좋다고 하여 벚굴이다. 강에서 나는 굴이라 하여 강굴로 불리기도 한단다. 둘이서 5kg 먹고 10kg는 싸들고 갔는데 어떻게 먹어치웠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허름한 가건물 같은 곳에서 맛있게 후루룩 먹었던 기억이 난다. 언젠가 봄에 다시 하동을 찾게 되면 십리 벚꽃길을 보고 또다시 벚굴을 먹고 오겠지. 각종 맛있는 먹거리로 입이 즐거운 곳이 바로 하동이 아닌가 한다.



3. 겨울의 하동


그렇게 꼬맹이 시절, 쾌적한 날에 들렀던 하동이었는데 그 꼬맹이가 어느덧 초등학생이 되었다. 아쉽게도 방학은 무더운 여름 아니면 겨울이니. 20년 세월을 함께 한 친구가 추천해준 숙소가 있어 가 보기로 하였다. 하동의 빠하디. 독채 풀빌라인데, 무려 식사상을 차려 주고 설거지는 다 해주는 곳이다. 코로나 이후 이러한 콘셉트의 풀빌라 숙소가 우후죽순 늘어가고 있는 듯한데, 남해의 캐슬 529가 그랬고, 이곳이 그러했다. 무엇보다 가기로 마음먹은 최종 마침표는 바로, 우주를 사랑하는 딸을 위한 천체 관측소가 있어서였다. 추운 겨울이지만 실내에서 지리산 바라보며 수영할 수 있고, 한 집만 이용할 수 있는 키즈 카페에, 잘 차려진 밥상까지. 코로나 시국 속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진정한 휴식을 선사하는 곳이다. 해외 가는 돈 여기 쓴다 생각하고 그냥 질렀다.

 


하동 키즈풀빌라. 숙소에 비싼 돈 쓰기 싫었는데 사람은 역시 변하더라.


수영하고 키즈 카페에서 놀다가, 잘 차려진 밥상에서 밥 먹고, 구름빵 영상 좀 보다가, 별자리 관측하고 사탕까지 얻은 아이들은 이곳이 천국이다 싶었을 것이다. 물론 너희들이 좋았던 그 시간에 우리도 쉴 수 있어 천국이었단다. 진정한 휴식을 위해 찾은 2박 3일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기가 하동인지 서울인지 부산인지 모른 채 숙소에만 거의 머물렀다. 바로 코앞에 있던 매암 제다원의 녹차밭을 잠시 구경하고 왔고, 동정호를 본 것이 이번 하동 여행의 관광의 전부였으니. 코로나 시국에 사람이 적은 곳을 찾아다니고 독채에만 주로 머무는 여행법이 생겨난 탓도 있지만, 이전 기록과 사진들을 보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나만의 하동 지도가 완성되었다.





봄 하동도, 가을 하동도, 겨울 하동도, 각자의 매력을 발산했던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같은 곳이라도 계절별 특색을 보고 제철 음식을 찾아다니며 그 계절에 맞는 여행지를 선정하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특별히 더 좋아하는 제주와 경주를 포함하여 국내 여러 곳곳을 계절별로 둘러보고 싶다. 대한민국에는 여러 지역에 숨은 진주와도 같은 매력들이 산재해 있는 것 같다. 둘러보고 기억하고 추억할 곳이 많다는 것은 참으로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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