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 주기에 진심인 편
언제부터였을까,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 중 목장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 국내에서 제대로 여행 좀 간다 하면 으레 떠올리게 되는 제주도를 간다 치자. '제주 목장'을 검색해 볼까? 초록창에 나오는 제주 목장 목록은 다음과 같다. 광고를 제하고, 1. 성이시돌 목장 2. 목장 카페 드르쿰다 3. 조랑말 체험공원 4. 아침미소 목장 5. 도치돌 알파카 목장 6. 렛츠런 팜 제주 목장. 이렇게 한 페이지에 주르륵 나온다. 나는 순간 얼었다. 우리가 가본 곳이 무려 다섯 군데이기 때문. 개인적으로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위해 대부분 가봤다니 나 엄마 맞는구나, 스스로가 대견해진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아침미소 목장이다. 다섯 살 첫째와 만삭 즈음의 둘째와 갔다. 조금 어린아이들이 놀기에는 좋은 곳이다. 아기자기하고 포토 스폿이 많아 4-5세 정도가 가기에 좋다. 5월의 푸릇푸릇한 제주가, 뛰노는 아이들과 무척 잘 어울렸다. 아마도 가장 기억에 남은 이유는, 날이 좋았고, 첫째가 소에게 우유를 줄 때 너무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는 이후로 어딜 가나 먹이 주기에 진심이었다.
렛츠런 팜은 먹이 주기 체험이 말에게 풀을 주는 정도만 있다. 농장이 드넓어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가족사진을 많이 남길 수 있었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어린아이들에게는 광활하여 무리였던 장소 선정이었다. 장성한 아이가 정말로 말의 생태가 궁금해한다면 가봄직하겠다.
도치돌 알파카 농장은 11월 늦가을에 가 본 곳이다. 코로나로 발이 묶이고, 여행을 가더라도 쉬쉬하던 시절을 지나, 너도 나도 제주도라도 가자 하던 때였다. 어딜 가더라도 딸바보 남편은 목장부터 알아보는 것인지, 나는 들어보지도 못한 곳을 보여주며 여기 가면 어때 한다. 도치돌 알파카 농장은 제법 크고, 다소 투박한 느낌이다. 아주 대놓고 꾸며놓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상업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알파카 먹이 주기를 제일 좋아했고, 먹이를 두어 번 더 공수해 주고 나서야 아빠의 지갑을 털고 만족스러운 발걸음으로 나갈 수 있었다. 바로 앞에는 펜션이 있었는데, 꾸며 놓은 정원에 핑크 뮬리가 있어 예뻤다. 해가 질 무렵의 풍경이 특히 좋았다.
목장 카페 드르쿰다는 아주 대놓고 사진 예쁘게 찍으라고 스폿을 만들어 놓고, 여러 체험도 할 수 있는 곳이다. 제법 다양한 연령대를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다. 카페에서 하고 싶은 체험권을 사서 시간이 되면 내려가 체험을 하고 오는 시스템인데, 중간중간 무더위나 추위를 피할 수 있어 좋았다. 아무 맛나지는 않지만 적당히 아이들과 먹을 만한 피자 등의 식음료도 있다. 첫째는 겁 없이 뭐든 잘하는 편이라, 장거리 승마를 시도했고, 둘째는 호기롭게 언니와 함께 승마를 하겠노라 표는 끊었지만, 말에 태우려는 순간 무서워하여, 울며 겨자 먹기로 아빠에게 기회를 넘겨주고 말았다. 카트도 있고 다양한 체험과 포토 스폿이 있는 곳이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씀씀이가 불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조랑말 체험 공원은 <봄의 제주, 1박 2일> 때 갔던 곳이다. 유채꽃이 만발한 늦봄에 가볼 것을 추천한다. 유채꽃밭을 말과 함께 살랑살랑 걸으며 말에게 당근도 주고 하다 보면, 아이들도 부모도 힐링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말타기를 두려워하는 둘째는 이번에도 승마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당근을 주면서 깔깔댈 수 있었다.
제주 외 목장에 대한 기억은, 고창, 강릉과 남해가 있다. 상하 농원에 대해서는 <여름의 상하농원>에 여행기를 남겨 놓은 바 있고 강릉에 대한 기억은 평창 삼양 목장에 가보려다가 전향했던, 강릉의 대관령 아기 동물 농장이었다. 만삭의 배로 4월경 평창과 강릉 여행을 계획하고 머나먼 길을 떠났는데 느닷없이 눈을 만났다. 평창의 4월은 겨울이구나 했다. 원래는 월정사 전나무숲도 구경하고 삼양이나 양 떼, 또는 대관령 하늘 목장에 가보려 했는데 눈이 펄펄 날리고 쌓이고 추워서 나갈 수가 없었다. 하여, 바로 노선 변경 후 강릉으로 향했고 아이는 동물들을 몰고 다니며 신나 했다.
메추리 모이 주기, 병아리 모이 주기, 토끼, 닭, 햄스터, 기니피그, 아기돼지, 송아지, 물고기 등 다양한 모이 주기 체험이 있었고 첫째가 엄청 좋아했다. 아이가 어찌나 열심히 먹이를 주던지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진지한 얼굴로 먹이 세 통이 동나도록 끝없이 먹이를 주고 나서야 만족스러워하던 첫째였다. 아이가 끌려갈 정도로 살벌하게 송아지가 우유를 빨았는데, 아이는 송아지 우유 주기가 가장 재밌었다 하였다. 둘째는 뱃속에서 나의 놀라움을 느꼈을까.
남해엔 양모리 학교와 양 떼 목장이 있다. 위치상으로 거의 붙어 있는데 1년 간격을 두고 가본 것 같다. 가을에 찾은 남해에서 만난 단풍은, 해안도로를 따라 빨갛게 물들어 바다가 반사하는 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이름도 없는 소공원에서 빛나는 바다를 보며 바다와 단풍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그 순간이 계속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았다. 가을 햇살이 좋았고, 단풍과 볕이 참으로 예뻤다.
양 떼 목장에 도착하여 각종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고, 깡통 기차를 타고, 굿즈를 샀다. 아이들은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양뿐만 아니라 새도 많았는데, 처음에는 둘째가 새를 질색하며 피해 다녔다. 하지만 금세 적응하고 나중엔 제법 여유 있게 새 모이를 주고 있는 모습을 보니 흐뭇해졌다. 새로운 경험을 할 때에도 같은 배에서 나온 자식이라 해도 성향이 매우 다름을 느낀다. 첫째는 일단 하고 보자 하고, 둘째는 낯가림도 제법 있고 처음이 쉽지 않다. 먹이 줄 때도 첫째는 일단 주고 보고, 둘째는 멀찍이 떨어져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성향이 달라 그런지, 투닥투닥 싸우기도 얼마나 많이 싸우는지.
아이들의 일상이 차곡차곡 쌓인다. 아이들과 함께 한 8년 세월이 쌓여 제법 많은 기록들이 생겼다. 왜 나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의 기록은 따로 해두지 않았을까.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기록을 해두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개인의 역사가 쌓이고, 아이들의 역사가 저장되는 시간. 기록들 틈에서 목장에 관한 것들을 끄집어내어 오늘도 글을 쓰고, 기록하며, 저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