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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Aug 09. 2022

여름의 상하 농원

고창과 부안

핫 여름 상하 농원에서



띠링, 폭염주의보가 울렸다. 둘째의 유치원 방학을 맞이하여 우리가 가기로 한 곳은 바로 상하 농원 파머스 빌리지, 전북 고창되시겠다. 석 달 전인가, 후배가 오늘 예약 가능한 날이에요! 하길래 덩달아 덥석 신청했던 곳이다. 오후에 들어갔더니 글램핑만 남아 있어 어쩔 수 없이 이 더운 여름날, 글램핑을 해야 한다. 과연 우리는 무사할 수 있을까?


2022년 최고로 더웠던 날에 글램핑을 하다니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아이가 동물 먹이주기에 진심인 것을 보고 점차 목장에 관심을 갖게 된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맛보게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니. 제주 아침 미소 목장에서 아이가 소에게 우유를 주면서 홀릭하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남해 양모리 학교에서 먹이 주며 신나 하던 모습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 상하 목장이라니, 먹이 주기에 특화된 곳이 아니겠는가! 어맛, 여긴 꼭 가야 해. 게다가 수영장에 미끄럼틀까지 있으니 아이들이 좋아할 요소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더워도 너무 더웠다. 글램핑 내 에어컨 아래를 조금만 벗어나도 너무 더워서 헉헉댔다. 폭염주의보 속의 글램핑은 너무도 힘든 것이었다. 왜 나는 지난 글램핑을 통해서 얻었던 교훈을 이리도 쉽게 깡그리 잊고 말았을까. (참고 글 : 불멍을 좋아하세요?) 첫날 너무 더워서 아무것도 못하고 다음 날은 원 없이 수영만 하자 싶었다. 수영을 하면 괜찮을 거야. 그런데 점심 휴식시간에 딱 맞춰 수영장에 들어갔네? 아이들은 한 시간을, 축 늘어진 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어른도 이리 지치는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이미지 출처 : 상하농원 홈페이지



첫째는 목장에서의 스트링 치즈 체험 이후 더위에 지쳤고 물놀이도 두 시간을 채 안 하더니 이만 나가자고 하였다. 참고로 첫째는 바다에서 내리 6시간을 엄마 안 찾고 놀만큼 물을 좋아하는 아이이다. 오후 내내 물놀이할 줄 알았던 난 다소 당혹스러웠지만, 딸과 함께 야외 스파를 하면서 나름 힐링의 시간을 보내었다. 야외 온천탕의 온도가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딱 적절해서 좋았다. 첫째도 둘째도 온천의 묘미를 알게 되어 냉탕 온탕을 넘나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주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변수가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 셈이다. 온천욕을 즐긴 후 아이들은 스스로 만든 스트링 치즈를 뜯어먹으며 행복해했다. 저녁이 되자 남은 불로 마시멜로도 구워 먹고, 막대 폭죽도 터트려 가며 제법 캠핑 감성을 누릴 수 있었다.


시간 나면 가봐야지 하고 지도에 저장했던 구시포 해수욕장과 책마을 해리는 폭염주의보 속에 기회를 잃고 말았다.






고창에서 부안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다. 동해안은 많이 봤지만 서해안은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은 이번 기회에 서해 바다를 만끽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가게 된 곳이 부안 변산반도. 서해 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으로 다음 숙소를 잡았다. 아이들의 즐거움을 위해 미끄럼틀이 현란한 곳으로 결정. 그리고 그런 나의 선택은 옳았다. 네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미끄럼틀 타고 즐겁게 놀던 아이들이었다.



서해 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으로 숙소를 잡았다.




숙소에 가기 전, 슬지 제빵소에 들렀는데 마치 이곳은 부안의 성지 같은 느낌이다. 부안을 들르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거쳐가는 관문 같은 곳이었달까. 가는 길 내내 아무도 보이지 않더니 모든 차량이 다 여기 와 있었다. 마침 소금 빵이 나올 시간대라 사 먹어 보았다. 정말로 짠맛, 소금이 든 빵이다. 슬지네 찐빵은 전통 발효 효모 찐빵으로 우리밀, 우리 팥, 우리 쌀, 천연재료로 만들었다 한다. 홍보도 홍보지만, 주변 농업인과 함께 하는 기업 정신이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게다가 예쁘게 잘 꾸며 놓아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한 인테리어로 이리 들어오너라 사람들을 유혹했다.



정말 쨍한 날이었다. 더위를 식히려고 샀던 음료와 맛보기 빵들.



서해 바다의 일몰을 바라보며 저녁을 먹는데, 숙소에서 바라본 일몰이 너무도 예뻤다. 동해의 일출도 좋지만, 서해의 일몰도 꽤 좋았다. 개인적으로 일몰을 더 좋아라 한다. 하루를 마감하며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해를 바라보며 멍 때리는 시간이 좋다. 서해 바다는, 지는 해가 발갛게 수평선을 물들이며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시간을 적나라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다음 날, 부안의 명소 채석강으로 향했다. 내가 원한 뷰는 해식동굴에서의 실루엣 뷰였는데, 아이들이 협조를 해주지 않았다. 층층이 쌓인 돌들 사이에 있던 고둥과, 새우와, 물고기를 잡느라 여념이 없던 꼬맹이들 덕에, 해식 동굴은 근처도 못 가보고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그 고둥과 물고기는 며칠 후 부여의 리조트 어딘가에 방생되었다 한다. (꼬물거리며 커피잔을 기어오르는 것을 구경하는 재미는 있었다.) 채석강은 전북 기념물 제28호이다. 지형은 중생대 백악기의 지층이며, 바닷물에 침식되어 퇴적한 절벽이 겹겹이 쌓여 마치 책을 쌓아놓은 듯한 형세이다. 우리나라 제주도 아닌 곳에서 검은 돌 뷰를 보게 될 줄이야. 제주의 사계 해변이나 광치기 해변이 생각나는 장면들이었다.



채석강. 내가 원한 뷰는 해식 동굴이었는데.


지리적으로 서해 바다를 접할 일이 별로 없던 내게 이번 여행은 나름 새로운 시야를 갖게 해 주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도 갈 곳이 많은데, 전 세계를 다 둘러보려면 얼마나 더 살아야 하는 걸까?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고 느낀 여름휴가였다. 방학은 봄가을에 한 달씩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날 좋고 선선할 때 쏘다니고, 덥고 추울 때는 여행 다니기 힘드니 하릴없이 공부시키고. 내 마음 같지 않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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