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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Apr 29. 2022

봄의 제주, 1박 2일

벚꽃 지고 유채꽃 만발




주말 동안 제주도를 다녀왔다. 1박 2일의 여정이었지만 나름 알찼고, 그만큼 돈을 많이 썼다. 어쩜 그렇게 돈이 많이 드는지. 식구 넷에 고작 1박인데 돈 백만 원은 훌쩍 넘어선다. 제주시에 있는 그랜드 하얏트가 새로 생겼다기에 다녀왔는데 예상외로 괜찮았다. 일단 퀸 퀸 더블이라는 게 제일 마음에 들었고, 세면대 2개에 화장실 따로 세면대 하나 더까지 세 개였다. 널찍해서 특히 좋았다. 모던한 디자인에 편의성 최고. 공항도 가까워 짧은 투숙객이라면 위치도 최적이다. 가습기 공기청정기 침대 가드 베이비 어메니티까지 풀 세트로 신청을 하고 룸서비스까지 시켜먹었다. 아이들은 오고 가는 비행기를 구경하며 널찍한 방 복도에서 비행기 흉내를 내며 뛰어다니며 놀았고, 코로나로 힘들었던 우리들의 마음을 고삐 풀린 말처럼 제주도에서 풀어냈다.


이미지 출처 : 그랜드 하얏트 제주 공식 홈페이지



4월 초 가장 따듯한 날이었던 것 같다. 벚꽃이 후두두 떨어지는 벚꽃 눈이 날렸고, 봄스러운 싱그러운 유채꽃들이 눈을 호사스럽게 해 주었다. 냄새는 났지만 조랑말 체험도 하고 아이들은 먹이를 주며 좋아했다. 둘째는 생각보다 낯을 많이 가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편이며 섬세하다. 그래서 이번에도 말을 타지는 못했지만, 말에게 당근을 주면서 무척 즐거워했다. 성향이 굉장히 다른 두 딸임에도, 먹이 주기 만큼은 한 마음 한 뜻으로 좋아한다. 볕이 강했다. 살랑살랑 바람이 시원하고 조랑말 뒤로 이어지는 유채꽃밭이 쨍하니 예뻤다.



제주도는 언제 가도 좋은 곳이다. 언제 가도 새로이 볼 것이 있고, 똑같은 곳을 또 가도 계절마다 다른 풍경에 또 새롭고 좋다. 갈 때마다 몇 월 제주도로 계절별로 검색을 하는 편이지만, 매번 다른 곳이 신흥강자로 떠오르니 또 이것을 찾아다니는 재미도 쏠쏠하다. 물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코시국 여행에서는 어떻게 하면 사람이 적고 볼 것은 많을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게 되지만, 이번에는 시간도 너무 짧고 해서 계절에 맞게 볼 수 있는 공항 근처들로 동선을 정했다.




숙소와 비행기만 정해놓고 나면 그다음은 그 계절에 맞는 몇 군에만 찾아보고 그에 맞게 움직인다. 세세하게 계획해봐야 아이들의 컨디션에 따라 변수가 많아 계획이 무너지기 일쑤다. 그래서 그저 물 흐르듯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춘다. 하도 자주 갔던 제주도인지라, 나의 제주도 지도에는 다년간 검색하여 쌓인 맛집들이 곳곳에 저장되어 있었고,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곳도 제법 나왔다. 제주에 점심 즈음 도착하여 설레는 마음 뒤로 이내 배고픔을 느끼며 그제야 어디 갈지 주변을 물색했다. 기왕 플렉스하기로 마음먹은 거, 입이라도 호강시켜주자 싶어 결정한 곳은, 일식 오마카세 집 <이노찌>. 언제 적 저장인지 알 수 없어, 혹시나 해서 전화를 해보니 현재 식사가 가능하며, 대강 다시 찾아본 최근 평점도 평가도 괜찮았기에 바로 당첨.

 



마침 이노찌 일대가 벚꽃길이었고, 벚꽃 눈이 휘날리는 중이었다. 아이들은 떨어지는 벚꽃을 잡으러 다니며 마냥 즐거워했다. 물론 지나고 생각해보니 좋은 기억만 남은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칼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가 마땅히 주변에 갈만한 곳을 찾지 못해 내가 먹고 싶은 것으로 노선 변경을 한 데에 마음이 상한 첫째의 투정이 먼저 있었다. 주는 대로 비교적 잘 먹던 첫째였는데 음식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니 오마카세 집에서 얼마나 눈치가 보이던지. 이어지는 둘째의 잠투정 플러스 짜증 공격까지. 하지만 사장님은 대인배이셨다. 오랜 불임 끝에 아이가 들어섰는데 아이가 아직 어리며, 미래에 겪을 일을 미리 배우고 공부하는 중이라며, 본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다고 해주었다. 나중에 다른 예약 손님이 올 것이지만, 그들도 충분히 이해해줄 것이니, 민폐라 생각지 말고 식사하시라는 배려 깊은 말까지 전했다. 그런 말이 아니더라도, 이 집은 정말 맛있었다. 남편은 아이들을 신경 쓰느라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더라는 후일담을 전했지만, 비린내에 특히 예민한 코를 가진 나는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찾고 싶을 정도로 맛있게 잘 먹었다. 아주 미식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젬병도 아닌 수준의 평가로 들어주면 될 것 같다. 아이들 먹으라고 나눠준 한라봉조차 너무 맛있었다. 매일 새벽 신선한 식재료를 직접 모두 골라 온다고 하셨는데, 그 고르는 눈썰미가 여간 대단한 게 아닌 듯했다. 식후 멜론도 내가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달콤하고 맛있었다.





블루보틀은 여전히 웨이팅이 많았다. 꽃병에 벚꽃 나무를 꽂아둔 게 멋스럽다.




만족스러운 제주에서의 첫끼 이후 근처에 핫해 보이는 커피집에 들러 식후 커피 한잔을 사 먹고 아이들과 봄을 만끽했다. 우연히도 지금 계절에 딱 맞는 곳을 잘 찾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여행이 주는 우연성과 우연이 주는 기쁨 덕분에 힘들어도 여행을 지속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의 니즈에 맞춰 다음 코스로 이동하려는데 둘 다 잠이 들었다. 급 노선을 변경해서 지난 제주 여행 때 오픈했지만 못 가봐서 아쉬웠던 블루 보틀로 향해본다. 여전히 대기가 길고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제주에 있으면서 바다 없이 숲 한가운데에 위치한 숲 뷰였는데도 이렇게 사람들이 많다니. 놀라 플로트, 드립 커피와 녹차 호떡을 시켰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나타난 내 이름. 수기로 이름과 그림을 그려준 영수증이 고객의 격을 높여주는 느낌이다. 조금 한적하면 너무 좋을 것 같은데. 파랑 보틀 모양 디자인도 예쁘고 건물도 멋스럽고 뷰도 좋고 맛도 있고 다 좋은데 너무 사람이 많은 게 최대 단점이다.

 




용두암에도 봄이 찾았다. 주변의 유채꽃과 용연 구름다리의 풍경이 살랑살랑 봄내음을 풍긴다.



칼국수를 먹고 싶었지만 먹지 못했던 첫째의 설움은 다음날이 되어서야 풀렸다. 용연 구름다리 바로 앞에 위치해 있던 <용연 보말칼국수>에서 칼국수를 드디어 먹었기 때문. 내 입맛에는 사실 그렇게 맛있진 않았지만 (면이 뻣뻣하고 굵은 편) 아이들은 잘 먹어 주었고 위치가 좋았다. 용두암 산책로를 걷고 용연 구름다리를 둘러보고 나서 출출해지면 칼국수 하나 먹고 공항으로 가면 딱 좋은 코스다. 근처에도 제법 많이 펼쳐져 있던 유채꽃. 1박 2일 일정이지만 그래도 바다는 한번 보고 와야 하지 않을까 싶어 들른 용두암이었는데 봄기운 만연하여 더욱 좋았다. 돈이 좋긴 좋구나, 이러려고 소같이 나는 일을 해왔구나. 코로나로 힘들었던 아이들도, 제주의 짧은 여행 이후로 뭔가 정서적으로 안정된 느낌이 들었다. 마음을 풍요롭게 해 줄 좋은 기억을 간직한 채, 유연히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다음 제주를 기대한다. 넌 왜 그렇게 제주도를 많이 가? 친구들이 묻지만 갈 곳이 없어 가는 것은 아니다. 그냥 좋아하는 곳은 언제 가도 또 가도 자주 가도 그저 좋다. 내게는 제주도가 그러하다. 똑같은 곳을 가도, 같이 가는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르며 계절마다 다르다. 그 미세한 변화들을 알아차리는 것이 좋다. 그리고 새로운 발견을 하는 것도 좋다. 이번에는 렌트 없이, 이번에는 철저한 계획 하에, 이번에는 몸만 가보기, 이번에는 맛집 탐방, 이번에는 아이들 위주로, 이번에는 풍경 위주로, 매번 콘셉트도 다양하기에 지루할 틈이 없다. 그래서 나는 또 언젠가 가볼 제주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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