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공원과 불국사
겹벚꽃을 좋아하시는지? 왕벚꽃은 꽃잎이 5장으로 흰색에 가까운 꽃이고 겹벚꽃은 주름 모양의 꽃잎이 분홍에 가까운 꽃이다. 일반적으로 흔히 보는 벚꽃은 4월 초 꽃이 지고 나서 잎이 돋아나는 한편, 겹벚꽃은 4월 중순에서 5월 초에 초록색 잎과 꽃이 함께 피어나는 것이 특징이다. 겹벚꽃의 나뭇가지는 가지가 축 늘어져있으면서 끝이 살짝 올라가 있다.
계절에 맞는 꽃을 보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한창 벚꽃철이던 3-4월을 신학기 적응으로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고 4월 말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봤는데 이미 벚꽃들은 초록잎만 남겨둔 상태였다. 그렇다면 어떤 꽃을 볼 수 있을까 고심했더니 생각난 겹벚꽃. 부산 겹벚꽃 명소로는 민주 공원과 유엔 공원이 있는데 좀 더 가까운 유엔 공원으로 행선지를 정했다.
당시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첫째는 4월 말부터 그림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학교에서 써온 일기장의 첫 제목이 <UN 공원의 봄>이었다. 자매가 걸터앉아 꽃 아래에서 사진 찍히고 있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 딸이었다. 겹벚꽃은 만졌을 때 본인의 애착 담요처럼 부들부들해서 좋다고 한다. 날이 맑고 초록초록 봄빛이 좋았다. 푸르른 하늘이, 초록초록 풀밭이, 분홍분홍 겹벚꽃도, 분홍분홍 아이들도, 모두 예뻤던 UN 공원의 봄이었다.
겹벚꽃의 명소로는 경주 불국사가 있다. 어느 날의 늦봄 경주. 불국사 일대는 겹벚꽃 분홍색으로 물들었다. 의도치 않게 비 온 뒤 흙탕물에 예쁜 새 구두를 빠트린 첫째였지만 이 또한 추억이라며 즐거워했다. 꽃 자체는 UN 공원이 화려하고 예뻤지만 불국사는 아이들이 뛰놀 언덕이 있어 나름의 매력이 있다. 몽글몽글한 핑크빛 꽃과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아이들은 봄의 색깔을 분홍이라고 하였다.
겹벚꽃의 꽃말은 ‘정숙, 단아함’이라고 한다. 찾아보니 벚꽃도 종류가 다양하며, 동서양의 꽃말이 조금씩 다른 것 같다. 꽃이 겹겹이 쌓여 단아하게 분홍빛을 내는 겹벚꽃은 참으로 매력적인 꽃이다. 실제로 만졌을 때의 느낌도 좋고 꽉 찬 봄을 느낄 수 있어 좋다. 다섯 개의 꽃잎을 흩날리며 꽃비를 내리는 왕벚꽃도 좋지만, 겹벚꽃의 묵직한 느낌도 좋다. 삶이 팍팍한 누군가도, 내년 봄에는 봄내음 가득한 겹벚꽃 구경 다니며 삶의 여유를 찾았으면 한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자괴감에 빠지거나, 꽃구경을 여유 있는 자의 놀음 같은 것으로 치부하지 말고, 큰 숨 한 번 쉬고, 주변을 바라보며, 꽃의 아름다움을 느껴보는 시간들을 가졌으면 한다. 삶이 팍팍해질수록, 남들 놀러 다니는 꼴을 보기 싫으면 싫을수록,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감상할 수 있는 신의 예술 작품에 감탄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