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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Jan 19. 2023

주인공은 내 몫이 아닌 세계

지나가는 행인 1


모든 인간은 별이다.
이젠 모두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지만, 그래서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고 누구 하나 기억해내려고조차 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건 여전히 진실이다.
한 때 우리는 모두가 별이었다. 저마다 꼭 자기 몫만큼의 크기와 밝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채, 해 저문 하늘녘 어디쯤엔가 에서, 꼭 자기만의 별자리에서 자기만의 이름으로 빛나던, 우리 모두가 누구나 다 그렇게 영롱한 별이었다.

- 임철우 <그 섬에 가고 싶다> 中




고교 시절, 난 연극부였다. 2학년 때 공연의 제목은, <날개 잃은 새들에게>. 연출을 맡은 친구 C가 직접 극본을 썼다는 사실은 내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 사실을 왜 이제야 유물을 통해 알게 된 것일까. 전학을 고민하는 특목고 학생들의 대화를 담은 내용이었는데, 당시 우리들의 고민을 잘 녹여낸 듯하여 C의 대단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공부만 열심히 하던 게 아니라 매사에 최선을 다하던 내 친구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고 지내고 있을지.






1998년, 그해에는 이례적으로 입학 인원이 많았다. 6개의 반, 한 반에 30명. 전 해에 비하면 두 배인 인원. 내가 속한 반에 유독 키가 크고 예쁜 여학생 A가 있었다. A와 나는 우연히 친해졌다. 유독 아는 남자애도 많고 인기도 많던 A 옆에서 나는 별로 존재감이 없었다. 여러 남학생의 눈빛은 A를 향했고, A는 내게 자신의 인기를 실감할 만한 일화들을 매일 들려주었다. 나는 그런 A가 신기했다.



유물처럼 남아 있던 학예회 종이




3월이면 각 서클마다 신입생 모집에 여념이 없다.

학교에는 '별보라'라는 천체 관측 동아리뿐 아니라, 사물놀이 '어우러짐', 연극부 '쏠', 신문부, 미술부, 음악부, 그리고 밴드부 '스터전' 등이 있었다. 별보라가 인기가 많았다. 있어 보이는 망원경과 그것을 이용해 찍어둔 여러 사진들로 신입생을 유혹했다. 우리 집 꼬맹이에게 사준 망원경에 비하면 엄청나게 훌륭한 기능과 외양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밴드부는 어딜 가나 인기가 많다.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언제 배웠는지 모를 기타와 베이스를 둥둥거리며 메탈리카, 너바나, 마릴린맨슨, 그리고 림프비즈킷을 연주했다. 락 스피릿. 학창 시절의 반항심은 하드락, 얼터너티브락 등으로 표출되었다. 그리고 그 인기는 대단했다.


-스터전 구경 가자. 거기 기타가 진짜 멋있대.

A가 이야기했다. 그날따라 나는 따라가지 않았다. 멋있는 여학생과 멋있는 남학생이 있다고 들었다. 오다가다 만난 그 소문 속 아이들은 나와는 다른 세계 사람들 같았다. 같은 반 다른 친구도 기타는 자신의 친구이자 자랑이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이 학교에서 지나가는 행인 1쯤 되는 듯했다. 주인공은 아무래도 내 몫이 아닌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같은 연극부에 들어갔다. 그해 연극부는 지원자가 많아 정원 초과였다. 오디션을 보고 최종적으로 연극부에 들어가게 된 신입생 여학생은 총 네 명이었는데 그중에 A와 내가 포함이었다.


1학년이 보통 연기자를 하고 2학년이 조명 연출 등의 스태프를 한다. 1학년 여주인공을 뽑아야 했는데, 투표로 했는지 선배들이 그냥 정했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결과적으로 나는 약간 떽떽거리는 신경질적인 여자 역할이 된다.


실상 내가 하고 싶었던 역할은 여주인공이었는데.


여주인공은 A라는 소식을 들었다.

한편으로는 부럽고 한편으로는 샘이 났다.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온 내게 이곳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모두가 과거에 일등이었고, 이곳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날고 기는 아이들은 수도 없이 많았고 다방면에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벽이 존재했다. 공부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어느 것 하나 내가 내세울 것은 없었다. 나는 날개를 잃었다.







https://youtu.be/l-EdCNjumvI

림프비즈킷 - Faith, 1998 이거 리메이크곡이었구나. 찾아보다가 이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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