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초'만' 보냅니다
사립초등학교에 보내 보니, 일단 '일하는 엄마' 입장에서는 좋다. 일찍 가고 늦게 온다. 아이를 스쿨버스 태워 놓고 출근하면, 퇴근할 때까지 아이는 학교에 있다가 돌아와 간식 먹고 숙제하면 딱 맞다. 물론, 아이의 입장은 다르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이 스트레스라고 한다. 학교 생활이나 다양한 활동에는 긍정적이나, 시험이 많은 것은 질색한다. '시험이 많다'는 건 언제까지나 상대적이다. 공립 초등학교에서는 점점 일기 쓰기도 사생활 침해라고 사라져 가고 단원 평가 같은 것도 재량이기 때문에 보통 시행하지 않는다. 사립은, 수학은 매 단원마다 단원 평가가 있고, 일 년에 두 번 영어 평가가 있다. 영어 단어 시험을 치고, 국어 받아 쓰기도 한다. 알림장이나 독서록, 일기에도 평가가 매겨진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국어 평가 사회 과학 시험도 생긴다고 하니, 분명 상대적으로 시험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아이가 어느 정도로 따라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고 무엇을 잘하고 부족한 파트는 어딘지 피드백할 수 있어 좋지만, 시험이란 게 원래가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스트레스다. 시험을 안치면 몰라도, 치면 또 잘 쳐야 할 것 같거든.
우리 집에 스쿨버스가 오는 사립학교 중에 한 곳에 입학 원서를 넣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온라인 추첨이었다. 직접 가서 해야 했다면, 아마 난 넣지 않았을 것이다. 간단히 온라인으로 한다기에, 그냥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했다. 워킹맘한테 좋다 하니 일단 넣어보고 혹시 설마 당첨되면 고민해야지 했다. 경쟁률이 거의 8대 1이었다. 그리고 덜컥 당첨이 되어버렸다. 실시간 유튜브로 당첨자를 공개하는 순간에도 나는 무심하게 진료 중이었고, 나중에 온 문자를 보고서야 당첨 사실을 알았다. 주변의 축하가 이어졌고, 나는 벙벙한 마음으로 그 축하에 감사와 기쁨을 표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잘 된 일일까?
당첨 후 아이에게 물었다. 사립초등학교에 원서를 넣었는데, 당첨이 되었다. 하지만 네가 선택을 할 수 있다. 여기는 경쟁도 세고, 다들 가고 싶어 하는 곳이긴 하지만, 우리한테 맞지 않으면 다른 데를 선택하면 된다. 다양한 활동을 하고, 스쿨버스를 탈 수 있고, 배움의 기회가 넓어서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일찍 일어나야 하고 테스트가 많다. 결과에 일일이 스트레스받을 것 같으면 엄마는 보내고 싶지 않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 선택 이후에는 번복은 할 수 없으니 신중하게 정해 보자. 아이는 어떤 이유로 선택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립초에 가 보겠다고 하였다.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영어 레벨테스트가 이뤄진다. 선행을 많이 하고 오는 아이와 알파벳도 잘 모른 채 들어오는 아이가 섞여 있으므로, 효율적인 영어 수업을 위해 반을 나누어 시작한다. 총 8개의 반으로 나누어, 한 분반에는 12명가량의 아이들이 모여 수업을 한다. 처음에 나뉜 반으로 한 학기 수업이 이루어진다. 2학년부터는 1년 동안 한 반이다. 반을 나누는 평가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1년에 2번 치는 공식 테스트뿐만 아니라, 학기 시험 및 단어 시험도 있고, 학습 태도, 이해도, 수행능력 모두를 평가받는다. 결국 점수화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점수가 드러나고 분반이 나뉜다는 건 은연중에 서열 매김이 될 수 있다. 아이들 사이에서 보다는, 엄마들 사이에서 은근히 드러난다. 누구는 어디를 다녔고, 지금 어느 반에 속해 있어요. 엄마들은 성적이 좋은 반에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 아이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 영유를 마음속으로 찜해두고, 둘째의 교육 방향을 정한다.
아이는 7시부터 학교 갈 준비를 하고 등교한 뒤 16시나 되어서 집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원 차량으로 하교를 한다. 영어 유치원에 이어 영어학원과 수학학원 정도는 기본 세팅인 듯했다. 나는 내가 없는 시간에 아이가 혼자 방치되지 않고, 기왕이면 학원 뺑뺑이가 아니라 학교만 보내도 골고루 어느 정도 활동이 보장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립은 그야말로 좋은 곳이 아닌가. 하지만 그보다 더한 활동이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정말 대단하다. 어른도 출퇴근하기 싫고 하루하루 힘든 법인데, 아이들은 그저 제 친구들은 다 하니까, 그러려니, 어려움 없이 (나름 즐겁게!) 하고 있었다. 그걸 뒷바라지해주는 엄마들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챙길 게 얼마나 많을 것이며, 그걸 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꼬드김과 입 발린 보상이 있었을까. 잘 따라오는 아이에게 여러 경험의 기회를 주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의 의사와 행복이 아닐까?
나의 천사, 나의 아이는 주류가 되지 못했다. 주관이 또렷하고, 스스로 무엇이 힘들고 무엇이 하기 싫은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학원을 다니면 학교 숙제도 있는데 숙제가 더욱 가중될 것을 알고 있었고, 본인이 힘들고 하기 싫어질 것을 정확히 예견하고 있었다. 학원을 질색하던 아이는, 정말 학교만 다녔다. 처음에는 학교 적응도 시켜야 하고, 너무 긴 시간 밖에서 공부하는 것도 지치고 힘들겠다 싶고, 무엇보다도 아이가 싫어하니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영유만 다녔잖아.) 2학기 때 다시 레테를 보고 세팅해야지 했던 것도 차일피일 미뤄지더니 결국 학원은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1년이 흘렀다.
모두가 말렸다. 어서 외주를 맡겨라. 영유 보낸 돈이 아깝지도 않으냐, 영어는 조금만 안 해도 금방 까먹는데 이렇게 오래 쉬어버리면 어쩌려고 그러냐,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었지만 나는 조언대로 하지 못했다. 애가 안 가겠다네요. 어쩔 수 없잖아요. 그러면 물품 공세를 해봐라, 일단 데리고 가봐라, 또 조언이 이어졌지만, 아이에게 언제나 지고 마는 나는 아이와 단 하나만 약속했다. 매일 '연산 두 장과 영어책 한 권 읽기'는 꼭 하기로. 그리고 자기 전 독서 조금. 정말 짧은 시간이면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 1년간 해왔고, 또 하는 중이다. 아이도 나도 행복한 길을 서로 찾아나가며 방향을 정하고 있다. 나도 엄청 팔랑귀라 중심이 흔들릴 때도 많이 있지만, 그럴 때마다 육아 서적을 찾아 읽거나 공부를 한다. 그러면 또 제법 중심이 잡힌다.
목표가 일 번이고, 방향을 정하고 나면, 아이와 엄마는 공동 운명체로 나아간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 너무 앞서갈 필요도 없고, 성적만이 세상의 중심이 될 필요도 없다. 나는 내 아이가 자신의 꿈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는 것을 응원하며 잘 커주고 있음에 감사한다. 다른 누구의 평가도 필요 없다. 내가 대견하면 되는 것이다. 아이는 날고 기는 아이들 속에서도 밝고 건강하게 자라주고 있다. 따스함을 잃지 않고, 예쁜 말을 아낌없이 하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아이다움'에 있어서 나는 잘 키우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