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엔딩? 새드 엔딩?
배우 중에 남주혁을 (꽤) 좋아한다. 김태리도 좋아한다. 이렇게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드라마인 줄 모르고 있다가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는데 좋아하는 배우들이 등장하는 것을 발견하고선 뒤늦게 시작한 드라마였다. 밤마다 애들 재워놓고 눈물 줄줄 흘려가며 몰래 보다가, 다음 날 아침 눈이 퉁퉁 부어있기를 여러 날 지나, 드디어 정주행을 끝냈다. (지금부터 스포일러 있습니다.)
1. 이 드라마는 해피 엔딩이다.
대부분의 반응들이 14회부터는 실망스러웠다는 것이었다. 15회부터는 보지 말라고 권하기까지 했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이어, 보는 사람 모두가 남편이 백이진 인지 아닌지(만을) 궁금해했다. 사람들의 기대란, 원하는 대로 보게끔 만든다. 여러 회차에서 이들은 결국 이별하게 된다는 암시를 주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첫사랑이 이뤄지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래도 남편은 백이진 일거야' 일말의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리하여 원대로 흘러가지 않음에, 사람들은 분개하고 말았다. '도대체 그럴 거면 이 드라마 왜 만든 거야!'부터 '마지막 회 안 보고 결말 모른 채로 남아 있을래'까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새드엔딩이라고 했다. 그런 반응들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욱 몰입하여 재밌게 끝까지 봤다. 사람들의 반응으로 이별할 것은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실망도 없었다. 첫사랑이 첫사랑으로 아름답게 남을 수 있어서 좋았다. 제목대로 '스물다섯 스물하나'인 시점에서 예쁘게 잘 마무리된 첫사랑이다. 결혼만이 해피엔딩일까? 결혼이 오히려 새드엔딩인 건 아닐까?
희도의 딸이 엄마의 아름다웠던 첫사랑을 엿보며 예쁘게 자랐다. 새로운 히어로의 탄생을 기대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백이진과 나희도는 여전히 서로를 응원하고, 지금도 그들의 응원이 서로에게 닿아 있다. 그들이 이별하지 않았더라면, 그 응원이 닿았을까? 미안해하고 원망하며 살아가겠지. 고유림과 문지웅은 오랜 연애 끝에 결혼까지 골인했고, 지승완은 백이진 동생과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백이진은 기자를 거쳐 앵커로 성공하여 11년 만에 가족과 재회하였다. 나희도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보듬어볼 수 있었고 엄마와 화해 구도로 돌아섰다. 펜싱으로 성공하여 고유림의 라이벌이 되겠다는 꿈도 이뤘다. 도대체 새드인 부분이 어디 있단 말인지.
2. 언론인과 운동선수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드라마에 나오는 의사들이, 현실 의사와는 많은 차이가 있듯이, 드라마에 나오는 백이진 기자도 현실 기자와는 다소 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속 국가대표도 현실 운동선수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경험하는 고충의 한 단면은 잘 보여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반인의 관점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장애 요소가 그들의 삶에 존재하고 있었다. 국가대표는 어떤 의미에서는 공인이고,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지탄과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런 공인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언론이고, 그 언론은 기자와 앵커가 전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를 수 있는데 사람의 말과 글이라는 게 어떻게 객관적인 사실만을 전한단 말인가. 만들어진 선동이나 보도가 있을 수 있고 그들 리그에서도 시청률 싸움이라든지, 공정하지 못한 경쟁이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뉴욕에서의 사회국 기자 백이진의 모습을 보면서는 함께 울어버렸다. 죽음을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이며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남는다. 911 대테러의 순간에도 그저 뉴스에나 나오는 '세상에 이런 일이' 취급했던 과거의 내가 부끄러워졌다. 911 테러를 로맨스 소재로 썼다며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전달하고자 하는 건 기자로서의 무게와 심리적 부담감이었던 것 같다. 나희도에게는 뉴스가 백이진의 얼굴을 볼 수 있는 하나의 매개체이고, 백이진이 일상이니 그럴 수도 있을 거 같긴 한데 너무 무거운 소재였던 것 같다. 그만큼 또 이 드라마가 인기가 많고 장안의 화제였음을 방증하는 게 아닐까.
3. 젊음의 열정과 다시 일어서는 용기.
나는 언제 가장 치열하게 뭔가에 열정을 쏟아 보았을까. 그저 조금씩 성실함으로 꾸준히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왔던 것 같은데. 치열한 첫사랑도 없었고 치열했던 순간도 딱히 없었던 것 같은, 어쩌면 무미건조하고 맹맹한 인생이었다. 딱히 시대에게 꿈을 빼앗기지도 않았고 많이 방황하지도 않았지만, 20여 년 전 낭랑 18세인 나에게도 소소한 고민은 많았을 것이다. 언젠가 한번 그 시절 나의 일기장을 찾아 엄마 집을 뒤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청춘은 얼마나 어리숙하고 미숙했을지, 읽으면서 얼마나 손발이 오그라들지, 궁금해졌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비슷한 나이대의 배경으로 내 또래의 몰입도 최강의 드라마로 격상한 ‘스물다섯, 스물하나’.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공감하며 몰입할 수 있게 해 줘서,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1998년, 시대에게 꿈을 빼앗긴 청춘들의 방황과 성장을 그린 청량 로맨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잖아요. 그 처음이 오늘이니까, 오늘까지만 서툴겠습니다.
꿈을 지키려는 거, 계획은 틀렸어도 네 의지는 옳아. 나는 맨날 잃은 것에 대해서만 생각해. 근데 너는 얻을 것에 대해 생각하더라. 나도 이제 그렇게 해보고 싶어.
저는 변하지 않는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 믿음에는 기대가 들어 있으니까요. 그렇게 되고 싶다는 기대. 그런데 중력은 기대와 상관없이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력만 믿을 수 있습니다.
기대하게 만들어서 그래서 자꾸 욕심이 나. 나도 잘 해내고 싶은 욕심.
넌 실력이 이렇게 비탈처럼 늘 것 같지. 아니야. 실력은 비탈이 아니라 계단처럼 늘어. 이렇게. 그리고 사람들은 보통 (계단 그림의 평평한 부분을 하나씩 가리키며) 여기, 여기, 여기에서 포기하고 싶어 지지. 이 모퉁이만 돌아 나가면 엄청난 성장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걸 몰라. (계단 그림의 평평한 부분을 더 길게 이어 그리며) 여기가, 영원할 것 같아서
온 세상이 나를 등진 것 같이 슬프다가도, 어느 날은 찢어지게 웃습니다. 우리의 우정은 늘 과하고, 사랑은 속수무책이고, 좌절은 뜨겁습니다. 불안과 한숨, 농담과 미소가 뒤섞여 제멋대로 모양을 냅니다. 우리는 아마도 지금 청춘의 한가운데에 있나 봅니다. 너의 성장통이 얼마나 아픈지, 나는 압니다.
너는 평가전에 나온 선수 중에 가장 많이 져본 선수야. 진 경험으로 그동안 계단을 쌓아 올린 거야. 생각해봐, 이제 니 계단이 제일 높다. 천천히 올라가서 원하는 걸 가져.
네가 어디에 있든, 네가 있는 곳에 내 응원이 닿게 할게. 내가 가서 닿을게. 그때 보자.
사랑, 사랑이야. 난 널 사랑하고 있어. 무지개는 필요 없어.
영원한 게 어디 있어. 모든 건 잠시 뿐이고 전부 흘러가는 거야.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니란다.
옆에서 오래 보고 싶다. 계속 계속 멋있게 크는 거.
변했지. 그땐 나희도가 하는 모든 경험들을 응원했어. 평범한 경험일수록 더. 근데 지금은 아니야. 난 걔 시간이 내 시간보다 아까워. 일분일초도 쓸데없는 경험들 안 하게 해 주고 싶어. 더 멋진 경험들만 하게 해 주고 싶어. 그리고 그걸, 내가 할 수 있어. 걔가 지금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몰라도 돼. 내가 아니까.
실패가 아니라 그냥 시련이에요, 아빠. 남들보다 너무 행복했던 대가요. 누렸던 행복에 비해 이 정도 시련은 시시해요.
그 시절 나의 일기장엔 온통 사랑과 우정뿐이다. 사랑과 우정이 전부였던 시절. 그런 시절은 인생에서 아주 잠깐이다. 민채도 뜨겁게 겪어 봤으면 좋겠다. 요란한 우정과 치열한 사랑을. 긴 인생을 빛나게 하는 건 그런 짧은 순간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