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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Apr 28. 2022

겹쳐 보임

복시



물체가 두 개로 겹쳐 보이는 현상을 복시라고 한다. 갑작스러운 복시 현상이 생겼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바로 한 눈씩 가려 보는 것이다. 단안 복시인지, 양안 복시인지에 따라 안과에 갈지, 신경과에 갈지가 결정된다. 한 눈씩 보면 선이 한 줄로 선명하게 잘 보이는데 두 눈 뜨고 봤을 때 두 개로 보인다면, 뇌병변일 가능성이 높다. 신경과로 가야 한다. 좌안만 봤을 때는 하나로 잘 보이는데 우안으로만 봤을 때 겹쳐 보임이 있으면 안과로 우선 가보자. 오른쪽 눈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양안 복시로 물체가 두 개로 생긴 경우라 신경과에 가게 되면 거의 대부분은 입원 행이다. 해야 할 일이 많다. 여러 감별 질환들이 있기 때문인데 생각나는 몇몇 케이스를 일반인의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흔한 연령대와 성별을 임의로 지정한 것임을 미리 알려둔다.


1. 32세 남자. 어느 날 갑자기 양 옆으로 물체가 두 개씩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에 살이 많이 쪘는데 머리도 지끈지끈 아프고 시야도 약간 흐리게 보인다. 최근에 우울감이 심해 폭식하고 술도 많이 먹은 탓에 살이  20kg는 족히 찌고 말았다. 언제부터인가 멀리 보이는 문 같은 것들이 자꾸 선이 겹치더니 두 개로 보이기 시작했고, 한눈씩 가려야만 선명하게 보였다. 특히 멀리 있는 물체를 보면 더 상이 벌어져 보였다. 뇌단층 전산화 촬영을 하고 뇌척수액 검사를 하고 나서야 뇌압 상승으로 인한 6번 신경마비였음을 알게 되었다. 다른 원인을 찾아봐야 해서 이것저것 검사를 하고 나서 내린 결론은, 특발성 또는 비만으로 인한 것. 살을 무조건 빼야 한다고 했다. 나는 더욱 우울해졌다. 내게 운동을 하고 살을 뺄 여력 따윈 없는데. 입원 기간 동안 뇌압을 떨어트리는 주사를 맞고 뇌압을 낮추는 약을 처방받은 채 퇴원을 했다. 몇 달 후 살도 많이 빠졌고 겹쳐 보임은 서서히 좋아졌다.


2. 26세 여자. 자고 일어나면 선명한데 오후가 되면 눈이 피로하고 자꾸만 쳐진다. 일을 하다가도 잠시 자거나 눈을 감고 쉬어야만 다시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다. 피곤함이 극에 달하면 지인들이 보기에도 눈이 이상하다고 할 만큼 변화가 많아졌다. 나는 쉬이 피곤해지고 무력감을 느꼈고 살도 자꾸만 빠졌다. 주말 동안 많이 쉬고 나면 또 어느 정도 회복을 하기에 스트레스 때문인가 생각했지만, 가끔은 물체가 두 개로 보일 때도 있다. 병원에 갔더니 아세틸콜린 수용체에 대한 항체를 보기 위해 피검사를 하고, 흉부 CT를 찍고, 이상한 반복 신경 자극검사를 하더니 내게  중증근무력증(Myasthenia gravis)이라고 했다. 흉선종 때문에 생긴 경우라고 한다. 이 경우에는 흉선종 절제술을 하고 나면 50-85%는 증상이 호전된다고 했다. 비록 수술의 상흔이 생기기는 했지만 몇 달이 지나 이제는 눈 처짐이나 겹쳐 보임, 무력감 없이 잘 지내고 있다.


3. 67세 여자. 머리가 아프다. 눈알도 빠질 것 같이 아프더니 갑자기 눈이 처졌다. 한쪽 눈을 스스로는 뜰 수가 없고 억지로 띄우면 세상이 아래위 두 개로 보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평소에 당뇨가 있고 비염이 심했는데 최근엔 더욱 나빠진 것 같다. 눈이 감긴 쪽이 너무 아프다. 응급실로 갔더니 뇌척수액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해면 정맥동 증후군(Cavernous sinus syndrome)이 의심되며 곰팡이 균으로 인한 동안신경 마비일 수 있다고 한다. 곰팡이균이 머릿속에 가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 독한 약을 주사로 써야 하는데 대부분은 힘들고 콩팥 기능에 무리가 많이 갈 수 있다고 하였다. 면역이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서 잘 생긴다고 한다. 평소에 당뇨 조절을 철저히 했어야 하는데. 두통이 어서 좋아지고 눈이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4. 64세 남자. 머리가 아프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이 처졌다. 한쪽만 그냥 아예 감겨 버렸다. 띄워서 보면 동공도 한쪽만 커져 있는 거 같다. 안과엘 갔다. 안과적인 문제는 아니란다. 신경과엘 갔다. 동안신경 완전 마비가 왔고, 머리 사진을 찍어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보호 1종 대상자다. 보험이 되느냐 물었다. 최근엔 뇌 자기 공명 영상 촬영도 머리 쪽은 보험이 된다고 하였다. 급하게 찍어본 결과 후 교통 동맥에 위치한 뇌동맥류가 너무 커서 동안신경을 압박하고 있다고 한다. 터지면 뇌출혈로 사망할 수도 있다고 하여 시술을 했다. 쉬이 눈이 돌아오지는 않고 있지만 특별히 시술 부작용은 없어 다행이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는 것일까? 한쪽 눈은 감긴 채 살아가기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원근감도 떨어지고 거리감이 없어지니 계속 넘어지거나 헛손질하게 된다. 뇌출혈이 발생하기 전에 발견되어 다행이긴 하지만, 하루빨리 눈도 좋아졌으면.


5. 41세 남자. 곤봉 같은데 넘어지면서 눈 위를 부딪혔는데 이후로 물체가 아래 위로 두 개로 보인다. 한쪽으로 고개를 돌려야만 선명하게 보여서 자꾸만 고개를 기울이게 된다. 반대로 고개를 돌리기라도 하면 상이 두 개로 멀어지고 계단을 내려가려고 아래쪽을 보기만 해도 계단선이 겹쳐서 너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외상으로 인한 활차 신경마비라고 했다. 몇 달 동안은 고생할 거라고. 조심히 살아야겠다. 하나로 선명하게 잘 보이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것이었다는 걸 체감한다.


6. 70 남자. 어느  갑자기 물체가 양옆으로  개로 보인다. 멀리  때는 그나마 괜찮은데 가까이   심하다. 한쪽 눈이 안쪽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팔뜨기가 불가능해졌다.   안근마비(Internuclear ophthalmoplegia, INO)라고 했다. 갑자기 생겼으니 MRI 찍어보자고 했고, 뇌교 뒤쪽에 하얀 점으로 보이는 작은 뇌경색 병변을 확인할  있었다. 젊은 여성에게서 이런 현상이 양측으로 발견되는 경우에는 다발성 경화증 같은 것을 의심해봐야 한단다.  달이 지나 눈은 거의 돌아왔고,  개로 보이는 현상도 거의 좋아졌다. 아스피린 같은 항혈소판제를 예방적으로 평생 먹어야 한다고 했다. 매일 운동을 하고, 고혈압과 고지혈증을  관리하며 별다른 문제없이 지내는 중이다.

         




오늘은 당뇨로 인한 4번 신경 마비로 의심되는 환자가 입원을 하였다. 당뇨가 있으면 심하지 않더라도 신경 마비가 일반인에 비해 많이 일어나는 편이다. 감별 진단을 위해 보통은 MRI를 촬영하게 되고, 안과 검진이 이어진다. 이런저런 감별 질환들을 배제하고, 다른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가장 흔한 원인인 당뇨로 인한 활차 신경의 미세 허혈로 설명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불편감을 해소하기 위해 몇 가지 팁을 알려줄 것이며, 안과 검진을 주기적으로 하면서 어느 정도로 회복하는지 추적 관찰하게 될 것이다.


복시(Dplopia)는 핵상 마비(supranuclear palsy)에서부터 외안근 마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부위의 병변에 의해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매우 드문 양상이나 질환들까지 언급하려면 책 한 권도 모자랄 지경이라 그나마 종합병원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질환 위주로 생각나는 대로 써 보았다. 이렇게 케이스 나열로 쓰고 싶지는 않았는데 신경과에는 이런 식으로도 환자들이 다양하게 오는구나, 생각해주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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