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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Apr 19. 2022

손발이 저려요

먹는 약이 너무 많아



당뇨나 만성신부전 등의 만성적인 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너무도 불편한 게 많다. 당뇨가 10년 이상 오래되면 각종 합병증들이 생긴다. 만성적으로 고혈당에 노출되면서 신경 손상이 오고 망막병증이 생기고 자율신경계가 무너져 혈압 탄력성이 떨어지면서 자주 어지럼을 느낄 수 있다. 손끝이 저리고 발바닥에 뭔가를 덧대놓은 듯한 감각을 느낀다면, 당뇨병성 신경병증이 진행했을 가능성이 있다. 불량한 혈당 조절과 지속적인 음주와 과식으로 이어진 나쁜 식습관들로 인하여, 점점 더 팔다리는 저리고, 콩팥은 더 망가지게 된다. 결국 투석까지 하게 되고 우울해지고, 더욱더 술에 빠져 살게 되고, 안주는 안 먹거나 폭식하니 당 조절은 엉망이 되고 손발은 더 저리고 결국 이런 식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게 된다. (아닌 경우도 물론 많다. 초기에 당을 철저히 조절하고 식단 관리를 하고 병에 대해 공부하고 스스로를 잘 챙기면 충분히 합병증은 예방할 수 있다.)


많은 병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매일 보면서 생각한다. 나는 오메가 3 비타민 이렇게 두 알씩 챙겨 먹는 것조차 알약이 크다는 둥 비린내가 난다는 둥 챙겨 먹기 귀찮아 투덜거리는데, 10알이고 20알이고 한 움큼씩 털어먹어야 하는 사람들은 매일 어떤 심정일까. 약이 너무 많으면 스스로가 너무 환자 같고 매일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지내는 것 같아 삶을 비관하게 될 것만 같다. 긍정주의는 결국 건강한 신체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몸이 아프고 약이 한 움큼인데, 마음만은 너무도 건강하고 긍정적일 수는 없지 않을까?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기 조절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당 조절을 철저히 해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 조절을 불량하게 한 환자 너의 잘못이잖아,라고 해 버릴 수는 없다. 이미 망가진 경우에는 의사로서 어떻게 지지하고 끌어가야 하는 것일까. '치료'가 되지 않고 증상의 미미한 '완화'에 그저 그치는 약물들을 주게 되는 경우, 참 마음이 힘들다. 환자를 만나면서도, 처방을 하면서도, 해결되지 않고 점점 나빠지는 환자들을 보면 자꾸 늙는 기분이 든다. 왜 나는 이런 진단을 붙여야 했고, 왜 치료약은 없어서 이토록 마음은 불편한지. 내 마음을 알거나 모르거나 환자들은 그러려니 약을 타 간다. 안 먹으면 더 힘드니까 한 움큼씩 먹는다. '스스로를 돌보고 사랑하세요'라는 처방전이 있어 잘만 지켜진다면 모두에게 처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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