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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May 06. 2022

이차성, 비정형이 왜 붙죠

다 같은 파킨슨병 아니야?


"박인순 씨, 들어오세요."하고 나서도 한참이 걸려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자박자박, 천천히, 오랜 시간에 걸쳐, 걸어 들어온다. 표정 변화는 거의 없고, 구부정한 자세이다. 신경과의 진료는 이미 반응 속도에서부터 시작된다. 한참 뒤에나 들어오거나 여러 번 말해서야 오는 사람들은 1) 보행 이상이 있거나, 2) 청력 저하가 있거나, 둘 중 하나다.


환자가 들어왔다. 앉는 데만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안정 시 진전이 명확하고, 표정 변화가 없으며, 자박자박 걷고, 뻣뻣하며, 균형을 잘 못 잡고, 변비가 있고, 잘 때마다 옆 사람을 때리고 호통하고 악몽을 많이 꾼다면, 특발성 파킨슨병 환자일 가능성이 1번이다. 그러면 도파민 반응성을 보고, 이차성이나 비정형 파킨슨 증후군 등 다른 질환 감별을 위해 뇌 MRI를 촬영하거나 도파민 PET CT (FP-CIT PET CT)를 권고하게 된다.


우선, 특발성 파킨슨병(Idiopathic parkinson disease, IPD)은 중증 난치질환이며, 산정특례 대상이다. 산정특례 질환이라 함은, 5년간 요양급여비용의 10%만 본인이 부담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도파민 신경세포의 소실로 인해 발생하는 신경계의 만성 진행성 퇴행성 질환이며, 알츠하이머 치매 다음으로 흔한 퇴행성 뇌질환이다. 60세 이상의 노령층에서는 약 1%, 65세 이상에서는 약 2% 정도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보행이 안 좋다. 몸이 뻣뻣하다. 손이 떨린다. 행동이 느리다. 이 네 가지를 가지고 의사가 내릴 수 있는 첫 번째 진단은, 파킨슨증(parkinsonism)이다. 파킨슨 양 징후들을 보이는 사람이라는 것이지, 질환을 일컫는 게 아니다. '저희 아빠가 파킨슨이래요.'라는 말은 '저희 아빠가 파킨슨병이래요.'와 전혀 같은 말이 아니라는 말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파킨슨이라고 하면 모두 파킨슨병인 줄 아는 경향이 있는데,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용어가 충분히 헛갈릴 수 있다. 파킨슨병은 뇌 MRI에 나오지도 않는다는데 MRI는 왜 찍으며, MRI 다 찍었는데 뭔 도파민 사진을 또 찍으라는 거야?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외래 환자들은 혼란스러워한다. 그래서, 파킨슨병이 아님 뭔데? 검사 많이 해서 돈 벌려는 수작 아니야? 응, 아니야~ 외래에 내원하는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대로 기술해보겠다. 자, 과일 안에 뭐가 있어요? 사과, 포도, 귤, 배 있죠? 파킨슨증(parkinsonism)을 과일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안에 첫 번째로 파킨슨병(IPD)이 있어요. 이걸 사과라고 해봅시다. 그러면 포도, 귤, 배도 있다고?라는 생각이 드시죠? 네, 그렇습니다. 포도, 귤, 배, 뿐만 아니라 더 있습니다. 뭉뚱그려서 이차성 파킨슨 증후군(secondary parkinson syndrome)과 비정형 파킨슨 증후군(Atypical parkinson syndrome, Parkinson-plus syndrome)이 있습니다.  '이차성'이라는 말은, 뭔가 다른 이유로 파킨슨 양 증후를 보이는 것이니, 원인 질환을 해결하면 됩니다. 혈관성 파킨슨 증후군(Vascular parkinsonism), 약물 유발 파킨슨 증후군(Drug-induced parkinsonism, DIP), 정상압 수두증(Normal pressure hydrocephalus, NPH) 등이 있습니다. 다계통 위축증(Multi-system atrophy, MSA), 피질 기저핵 변성(Corticobasal degeneration, CBD), 진행성 핵상 마비(Progressive supraneuclear palsy, PSP) 등이 비정형에 속합니다. 용어가 어려우니 이조차 잊으셔도 좋습니다. 다만 이러한 하나도 못 알아들을 여러 질환들이 바로 포도, 귤, 배 등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과인 파킨슨병은, 여러 과일 중에서도 약물 반응이 비교적 좋은 편이며, 이 질환의 경우 도파민 사진을 찍어보면 각이 대강 나오죠. 하지만 다른 과일들은 원인이 되는 것을 먼저 치료해야 하거나, 도파민에 대한 약물 반응이 더딜 수 있습니다. 사과 아닌 다른 과일들인지를 감별하려면 우선적으로 뇌 MRI가 필요한 것이고요, 거기서 이차적인 다른 원인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 도파민 사진까지 찍어보게 됩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설명이 길어진다. 나이 많으신 환자 분만 내원하는 경우 과일로 비유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신다. 점심시간 임박하거나, 퇴근 시간 임박하여 '보행 장애로 내원하셨습니다.' 하면 마음이 힘들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백화점 매장 직원이 8시 문 닫기 10분 전 까탈스러운 손님 안 반기듯, 이 역시 마찬가지다. 신경학적 검사하는 데만도 오래 걸리고, 병력 청취할 것도 많고, 무엇보다도 먹고 있는 모든 약을 조사해야 하고 (생각보다 약물 유발 파킨슨 증후군이 많다!) 설명할 것도 많은 환자군이다. 대학에 있을 때 종합병원에서 왜 이리 환자를 많이 보낼까 싶었는데,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러다가 환자는 나빠지면 (신경 퇴행성 질환이며, 증상 완화제는 있어도 낫는 치료제는 없으니 점차 나빠지기 마련이다.) 유능하신 파킨슨 전문 교수를 찾아 의뢰서를 써달라고 한다. 내가 보내지 않더라도, 알아서 가는 경우가 더 많다. (얼마 안 있어 대학은 사람이 너무 많고 불편하다며 되돌아오기 일쑤다.)


지금까지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비춰 봤을 때, 이차성이 제일 예후가 낫고 (약물 유발은 약을 끊으면 되고, 정상압 수두증은 수술이나 시술이 가능하며, 혈관성은 진행을 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다음이 특발성 파킨슨병이며 (치료제는 아니지만 증상 조절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제일 설명하기 힘들고 마음도 힘든 게 바로 비정형(=파킨슨 플러스)이다. (약도 없고 진행을 잘하며 속도도 빠른 경우가 많기 때문.) 약물 유발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또 썰을 풀기로 한다. 자다가 옆사람 때리고 소리치는 현상에 대해서도 다음 기회를 노려보겠다. 어쨌든 파킨슨이라고 다 같은 파킨슨이 아니며, 현상만 보인다고 해서 전부 산정특례를 해줄 수도 없으며, 종류에 따라 치료 반응이나 예후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 글은 반쯤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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