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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May 09. 2022

진료를 보다가

키득키득



어느 날 혈관성 두통이 의심되는 환자가 내원하였다. 일반적인 두통은 대부분 영상 촬영을 먼저 권하지는 않는데, 찍어서 확인해봐야 하는 경우들이 있다. 예를 들면 운동을 하거나 힘을 주는 상황에서 생긴 두통이라면 영상을 권고하게 되는데, 뇌 MRI의 경우 보험이 적용되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설명을 해 준다. 두통이나 어지럼으로 촬영하는 경우에는 심평원의 조건이 까다롭기에 보험이 일부만 적용되는데, '보험'이라고 이야기하려는 것이 순간 '할인'이라는 말로 튀어나왔다. 어떻게 보면 환자 입장에서는 나라에서 할인을 해주는 셈이기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어가 틀렸으니 바로 "아, 일부 '보험' 적용이 됩니다." 즉각 수정하여 말을 하는데 같은 방에 있는 간호조무사의 웃음이 터져버렸다. "예약 잡으시고 필요시 약 타가시면 됩니다." 겨우 마무리하는데 환자가 "네 수고하세요~" 했고, "아, 네 수고하, 에?, 아, 안녕히 가세요."라고 해버린 게 아닌가. 콤보로 웃음이 터지고 만 조무사. 환자에게 들키지 않게 웃음을 끅끅 참느라 혼났다고 했다. 한번 말실수가 터지고 웃음이 터지니 걷잡을 수 없게 되어 너도 웃고 나도 웃고, 별 일도 아닌데, 바로바로 수정하는 게 웃겨서 배를 잡고 깔깔댔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음 환자를 불렀는데, 한참을 설명하던 중에 갑자기 보호자가 시계를 본다. 나의 자동 사고는 순간 "아, 바쁘신가 봐요."라고 해 버렸고, 설명이 길어졌나 보다 싶어 허둥지둥 서둘러 설명을 끝내버렸다. 보호자가 시계를 보던 장면을 목격하지 못한 조무사는 '바쁘신가 봐요' 이후 갑자기 서둘러진 결말에 또 웃음을 참기 시작했고, 나는 영문 모른 채 따라 웃었다. 그런 날이 있다. 이유 없이 작은 자극에도 웃음보가 터지는, 그런 날.




진료를 보다가 환자가 끊겨서 화장실에 잠시 가려는데, 낯이 익은 환자가 멀리서 걸어 들어온다. 그대로 화장실을 다녀와도 무방 할 텐데, 나가자마자 180도 유턴하는 내 발. 그 모습을 보던 조무사가 또 빵 터지고 말았다. 들킨 나도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그 환자를 후다닥 보고 다시 화장실을 향하는데 별로 웃기지도 않은 일인데 자꾸 웃음이 났다. 키득키득. 터벅터벅 걷다가 바로 급 유턴이라니.




진료실에서 일어나는 재밌는 일이 뭐가 있나 곰곰이 떠올려 본다. 환자들이 가끔 뭘 갖다 주고 가는데, 보통 나는 먹을 것을 주로 받는다. 전공의 시절부터 비실비실 말라 보여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먹을 것을 쥐여주곤 하셨다. 요즘에는 손뜨개 수세미를 그렇게 받아온다. 꽃무늬 마스크를 핸드메이드로 만들어 주시기도 한다. 달라진 선물의 종류를 보면서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싶다.


성의 표현은 사람마다 아주 다양하다. 지인은 느닷없이 집으로 쌀을 받은 경우가 있었다 한다. 유독 술을 많이 받아 오는 사람도 있고, '쾌남'이나 빨랫비누 같은 것을 자꾸 받아서 스스로 위생에 문제가 있어 보이나 고민하는 사람도 봤다. 시골에 근무하는 사람 중에 상추 고추 등의 채소를 그렇게 받아 오는 사람도 있었다. 김영란법 이후 촌지 등의 적나라한 금품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지만,  이게 참 애매하게 거절하기 힘든 것들을 주신다. 애써 가져온 상추를 도로 들고 가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날 위했든 아니든 수세미를 애써 만들어 왔는데 거절하기가 참 무안하고도 미안하다. 특이하고도 재밌는 선물에 대해 써보려 한 건데 신박한 아이템이 더 떠오르지는 않네.


오늘도 즐거운 진료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아 본다. 출근하자마자 퇴근을 바라고, 퇴근하자마자 바로 육퇴(육아 퇴근)를 바라는 건 너무 슬픈 일이 아닌가. 뭔가 즐겁고 재밌는 것이 없을지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기로 한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즐거운 하루가 되기로 마음먹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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