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지르는 건 애교지
자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꿈꾸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팔을 휘두르기도 하고 발길질을 하거나 대화를 하기도 하고 고함도 치고 욕설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같이 자는 사람이 자다가 맞거나 시끄러워 못 자니까 힘들어서 데리고 오거나, 침대에서 낙상을 하거나 벽을 치다가 다쳐서 병원을 찾게 된다. 이런 경우 렘수면 행동장애(REM sleep behavior disorder, RBD)라는 임상적 진단명이 붙는다.
수면 단계 중 렘수면은 꿈을 꾸는 수면의 한 단계로, 정상적으로는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이 모두 마비되어 움직일 수가 없다. 하지만 렘수면 행동장애에서는 근육의 힘이 풀리지 않아 꿈을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유병률은 약 0.5%로 드물지 않은 편이다.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REM 단계에 무긴장이 소실되면 진단이 가능하다.
앞서 이야기했던 파킨슨병 환자의 80-90%가 수면장애를 호소한다. (참고하면 좋은 글 : https://brunch.co.kr/@neurogrim/79 ) 잠자리에서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해 하지의 통증이 흔하고, 이 때문에 수면 중 잦은 각성, 불편증, 주간 과다 졸림, 피로를 보인다. 렘수면 행동장애 역시 파킨슨병에서 자주 보이는 소견인데, 레비소체 치매나 다계통 위축증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렘수면 행동장애만 있는 환자가 약 10년 지난 후 파킨슨병 및 연관된 치매가 발생하는 비율이 제법 높아서 퇴행성 질환이 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내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확률이 일반인에 비해 높을 뿐, 아닌 경우도 있으니 지레 너무 걱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안심시킨다. (일어나더라도 10년 20년 뒤에나 나타나는데 그동안은 마음 편히 지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이유는 모른다. 특발성이 대부분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그저 현상이 신기할 따름이다. (환자와 보호자는 그저 괴로울 따름이다.) 환자들에게 써볼 수 있는 약은 두 가지 정도가 있다. 하나는 렘수면에 영향을 주고 하나는 수면리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완전히 낫는 치료제는 역시나 아직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빈도나 강도를 조금 줄여줄 뿐이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같이 자지 말고 낙상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낮은 매트리스나 바닥 생활하시면서 물건을 모두 치우라고 조언해줄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 치료제가 없는 게 대부분인 신경과의 영역에 대해 글을 쓰다 보면 결국 답 없다는 식으로 결론짓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참 허무해진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 바꿔 "렘수면 행동장애에 대한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병태생리와 치료 방법 등에 대해 연구 중이니, 현 상태에서의 최선의 치료를 하면서 좀 더 의학이 발전하길 기대하며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또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겠습니까?"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키케로-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한편 그것을 이겨내는 일로도 가득 차 있다.
-헬렌 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