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탄력성
29세 여자가 울면서 외래에 들어온다. 오른팔을 들 수가 없어요. 증상이 생긴지는 몇 시간 되지도 않은 시점이었고, 팔의 근위부 위약이 심한 상태였다. 29살이? 갑자기? 응급실 아닌 외래로?
설마 했는데, 애써 아니겠지 다른 드문 이유가 있는 거겠지 생각했다. 발음도 괜찮고, 안면 마비도 없다. 젊은 여자니까 다발성 경화증이나 신경 압박이나 다른 이유가 먼저여야 했다. 뇌경색을 일 번으로 생각하기 어려웠던 상황. 하지만, 갑자기 그랬다는 것은 혈관성이 일 번이다. 나이가 너무 젊은데? 설마?
이런저런 가능성을 설명하며 일단 뇌 MRI 촬영을 해봐야 알 수 있는 상황임을 알렸다. 물론 나이를 고려한다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른 젊은 나이에 발병할 수 있는 원인들을 찾아보아야 한다. 사진을 보면서도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로 뇌경색이었다. 그것도 큰 혈관 하나가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입원을 하자마자 신경외과(시술하는 과는 병원마다 다르다. 영상의학과 또는 신경외과 또는 신경과에서 혈관 조영술 관련 세부 수련을 받은 사람이 있는 병원에서만 가능하다.)에 연락을 해서 혈관조영술을 시도했다. 좌측 중뇌동맥이 막혀 있었고, 양측 전뇌동맥이 보이지 않는다. 뇌경색 증상은 심하지 않지만, 병변이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상태였다. 29세의 나이에, 주요 혈관 세 개가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은 그 누구도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혈관 박리가 의심되어 혈관을 개통 후 스텐트 삽입을 했다. 양측 전뇌동맥은 측부 순환이 잘 되고 있어 손대지 않고 시술을 종료하였다. 별다른 부작용이나 합병증 없이 시술을 끝내고 나서야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29살의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 나 역시 시술 내내 마음이 졸일 수밖에. 시술 중에 큰 일이라도 날까 봐 조마조마했던 시간을 지나, 온 가족이 내원하여 상태를 궁금해했다. 당연하다. 29살인데!
시술이 끝난 뒤, 급성기 뇌경색 평가 및 재활 치료에 돌입하였고, 엄마의 간병 하에 정서적으로도 안정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정말로 회복력이 빠르다는 것이었다! 보통 뇌경색은 60대 이후로 오기 때문에 내 입원 환자의 평균 연령은 거의 70대에 달한다. 그런데 파릇파릇한 29세라니! 회복력도 50대 다르고 40대 다른데 심지어 20대라니. 정말 빨랐다. 다음 날 팔을 들기 시작하더니, 그다음 날 글씨를 평소와 다름없는 수준으로 쓰기 시작했고, 그다음 날 거의 신경학적 증상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회복하였다. 실상 별로 재활을 할 것도 없었다. 빠른 시일 내로 퇴원을 하고 싶어 했고, 일반적인 급성기 뇌경색 치료 기간인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퇴원을 하였다.
어쩌면, 그 아이는 이번 일을 계기로 전화위복 삼아 세상을 정말 열심히 살게 될지도 모른다. 건강의 소중함을 모른 채 살아가는 20대 청년들이 많은 가운데, 누구보다 먼저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고 관리를 해 나가며 하루하루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희박한 확률로 병을 얻었지만, 또한 드문 확률로 후유 없이 회복을 했다. 빠른 회복력에 모두가 놀라고 완쾌에 가까운 결과에 감사한다. 울면서 처음 내 외래에 발을 들인 그녀는, 전혀 다른 아주 평범한 20대의 모습으로 다음 외래에 방문했다. 젊음이란 이토록 대단한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동시에, 늙어가는 내 몸뚱이를 조금 더 소중하게 관리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