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사람들은 가끔 이야기한다. 잠을 한숨도 못 잤어요. 말똥말똥 누워만 있었어요. 하지만 과연 정말 그럴까?
불면증(Insomnia)의 정의를 살펴보자. 수면을 위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에도 불구하고 수면 장애(sleep difficulty)를 호소하며 일상 활동에 기능 장애가 발생하는 것이다. 수면 장애란, 잠이 들기 어렵거나 수면을 유지하기 어렵다(difficulty initiating or maintaining sleep). 또는 너무 일찍 깬다(early morning awakening). 혹은 둘 다에 해당하는 경우를 말한다.
ICSD-2에서는 불면 장애를 여러 아형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불면증 환자들은 여러 아형을 같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한 가지 아형에만 해당하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어, ICSD-3에서는 만기와 단기로만 나누고 있다. ICSD-2에서 설명하는 아형 중에, 역설 불면증(Paradoxical insomnia)이라는 흥미로운 아형이 있어 소개해보려 한다. 역설 불면증 환자들은 오랜 시간 전혀 못 자거나 거의 못 잤다고 표현하지만 가족들이 보기엔 그럭저럭 잔다고 한다. 그러면 환자는 '그냥 눈감고 있었으니 그렇게 보였겠지!'라며 화를 내기도 한다. 객관적으로 검사를 해봅시다, 라며 수면다원검사(PSG)를 하게 되는데, 결과를 보면 아주 잘 자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특징적으로 이런 사람들은 심한 수면 부족에 합당한 주간 기능 저하나 졸림이 별로 없다. 이러한 불면증의 경우는 일종의 인지 왜곡에 해당한다. 객관적인 검사 결과를 토대로, 잘 자고 있다고 안심시켜주고,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 CBT) 등을 해 볼 수 있다.
신경과에서 웬 인지행동치료냐 싶겠지만 수면클리닉이 있는 병원은 신경과에도 원발성 불면증 역시 진료 대상이므로 이에 대한 인지행동치료가 세팅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경험해본 바로는 시간은 많이 소요되고(한 명당 진료 시간 오분을 넘기지 못하는 한국 진료 구조상, 의사가 30분은 기본으로 소요되는 인지행동치료를 하기엔 무리가 있다), 가시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기에 세팅 자체에 한계가 있다. 객관적인 툴도 없고 그렇다고 시간 대비 수가를 매길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병원이나 신경과의 경제적인 이득으로 이어지지도 않아, 양질은 커녕, 받아보는 것조차 힘든 게 현실이다. 어쨌든 현실은 그러하지만, 이상적으로는 왜곡된 인지가 강할수록 치료 효과는 크다고 볼 수 있다. 역설 불면증의 경우,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고, 왜곡된 인지 자체를 인지시켜주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효과를 볼 수 있는데 스스로 수면리듬을 체크해 보며 의식적인 인지를 해보는 것도 개선에 도움을 준다.
부제목에서는 다소 자극적인 거짓말! 을 붙였다지만, 물론 그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본인은 실제로 하나도 못 잤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왜곡된 기억이, 중간중간의 각성 시간만을 기억하기 때문인 것이지, 실제로 잤으면서 안 잤다고 잡아떼는 것이 아니다. 알고 있지만, 그들의 인지가 객관적인 사실과는 괴리가 있었음을 알리는 강조 효과 같은 것으로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환자의 왜곡된 기억이나 인지를 경험하다 보면 우리의 뇌는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망상이 있는 환자들도 그들은 그 망상이 실제로 느끼는 감각이지 않나? 심지어 이성적으로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보이는 경우도 있으니 단순한 인지의 왜곡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실제로 일어난다. 말도 안 되는 현상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가운데, 역으로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지는 것이다, 처럼 뇌의 착각을 긍정적으로 이용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도 생각해본다. ‘잘 잘 수 있다, 잘 잘 수 있다, 오늘은 잘 잘 것이다. 나는 잘 잘 수 있는 사람이다.’ 반복하여 세뇌해보자. 머리만 갖다 대면 잠드는 나 같은 사람이 하는 말 따위 듣고 싶지 않다고? 속는 셈 치고 일단 해보자. 혹시 아나, 진짜로 뇌가 속아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