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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May 19. 2022

책의 공간

북 스테이


'북 스테이'를 들어보셨는지? 오늘은 2군데 북 스테이를 추천해볼까 한다. 서울 근교에는 다양한 콘셉트의 북 스테이가 있는 것 같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부산 근교에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게 바로 북 스테이다. 책을 읽으며 쉬어 가는 공간, 책에 둘러싸여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검색하다가 찾아낸 게스트 하우스 <몽도>. 그런데 뭐? 게스트 하우스? 2021년 검색 당시 '경남 북 스테이'로 검색하면 숙박이 가능한 곳은 이곳밖에 없었다. 게스트 하우스라면, 여럿이 함께 생활하는 공동 구역이 있다는 소린데, 어린아이가 과연 가도 되는 걸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방공호는 한 가족만 받는다고 명시되어 있어서 용기를 내보았다. 게다가 방문자 리뷰가 498개, 평점이 무려 4.95라잖아? 어맛, 여긴 꼭 가야 해!



우리가 묵었던 방공호. 2-4인


게스트 하우스이지만 방이 무척 조용하고 정갈하다. 무엇보다도 침구들이 뽀송해서 좋았다. 누나가 하시는 거라는데 향도 좋고 바스락대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주인이 향에 민감하신 분인지, 각종 아로마와 식물들로 좋은 향을 남기는데 공들였고 화장실조차 특유의 매캐한 냄새가 없었다. 방공호 방에는 이층 침대가 두 개, 화장실이 하나 딸려 있는 곳이다. 자그마한 공간에 책상에 소소한 책 몇 권, 그리고 거울과 수건, 드라이기까지 깨알 진열되어 있었다. 각종 소품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 느낌이었는데, 남해 중에서도 깡시골 느낌의 삼동면에 위치한 일반 가정집이면서도 촌스러운 느낌 없이 세심하게 물건 하나하나, 애정을 담아 전시해둔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각 침대 머리맡에는 수건 두 개와 아로마, 엽서 그리고 개인 등이 있다. 이미지 출처 : 몽도 공식 블로그



둘째는 널브러진 책 중에 하나를 골라와 읽어달라고 하였고, 첫째는 만화책과 우주 책을 골라와 읽기 시작한다. 지루해지면 2층 옥상 마당으로 올라가 과자를 먹으며 별을 보기도 했다. 별이 빛나는 밤에 우수수 별빛이 쏟아지던 남해의 게스트 하우스. 옥상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 우리가 저녁으로 먹었던 고깃집 사장님이 대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탁 트인 시골 정경이었다. 바로 앞의 고깃집 사장님은, 부산에서 내려와 뒤늦게 남해에 정착하여 집 짓고 닭, 개 키우며 전원생활 중이었다. 친절하신 주인 내외는 같은 지역 출신인 우리들을 살갑게 챙겨주셨다. 사실 주변 어디 딱히 갈 곳도 없어 보여서 그저 들른 곳인데 의외로 제법 맛도 있고 꽤 만족스러웠다. 식후땡으로 아이스크림 찾아 마을 산책을 한 것도 너무 좋았다. 살랑한 바람 부는 저녁 어스름 불빛 따라 걷던 시골길. 사람 하나 보이지 않던 골목. 언젠가 나도 전원생활을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이토록 합리적인 가격 네 식구 12만 원에, 무려 아침 조식까지 나온다. 정갈한 상에 미역 누룽지와 3가지 찬이 나오는데 아침으로 먹기에 과하지 않고 딱 좋았다. 자그마한 서점동에서 책을 보다가, 방에 와서 쉬었다가, 옥상에 가서 뛰놀다가, 자연을 벗 삼아 책과 함께 고즈넉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텔레비전이 없어서 아쉬웠다고 평가하던 아이들이었지만, 오히려 나는 텔레비전이 없어서 더욱 좋았던 곳. 언젠가 둘째가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또 한 번 들러보려 한다.


몽도 책갈피와 바깥 풍경. 이미지 출처 : 몽도 공식 블로그









다음으로 가본 북 스테이는, 책을 사랑하는 딸을 가진 친구가 추천해준 곳이다. 바로 평택에 위치한 <아르카 북스>. ARCA는 이태리어로 방주(피난처)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북캉스에 아주 최적화된 곳. 이곳 주인은 오랜 교직 생활 이후 '적게 벌어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자'며 책방지기가 되었다고 한다. 서점 동과 숙소 동은 2m도 채 떨어져 있지 않다. 숙소를 예약하면 서점 마감 시간 이후로는 예약한 가족들만 단독으로 서점 전체를 이용할 수 있어 좋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진열된 책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높은 천장을 이용하여 표지로 책을 진열해 놓은 방식이, 책에 별반 관심 없던 사람이라도 뭔가 하나 집어 들고 읽고 싶게 만든다.


아르카 북스와 북 스테이의 시작은 어른을 위한 동화책 모임에 참여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아빠는 직장에, 엄마 또한 직장과 육아, 가사에, 아이들은 경쟁 위주의 학사 일정에 지쳐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세대 간의 대화와 위로라고 생각했고, 그 좋은 매개체가 쉽게 잃을 수 있으나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그림동화책이라고 생각했다고. 취지가 일단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 목적에 부합한 최적의 공간을 지어내신 것 같아 머무는 내내 무척 감사했다.


서점동과 숙소동 그리고 주인 가족이 거주하는 집이 있다. 이미지 출처 : 아르카 북스 공식 홈페이지


무려 부산에서 평택까지 왔는데, 1박만 하기에는 너무 아쉬울 것 같아, 2박 3일의 일정으로 거의 6개월 전쯤 예약을 한 것 같다. 추천해준 친구는 많은 사람들이 알기 전부터 본인이 찜해둔 곳이었고 예약이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힘든 곳이 아니었기에 자주 들르곤 했다는데, 점점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예약이 어려워지고, 최근에는 수영장까지 개장하는 바람에 더욱 힘들어졌다고 투덜댔다. 우연히 찾아낸 모래알 속 진주는 나만 보고 싶은 법이다.


2박 3일의 일정 동안 원 없이 책을 읽었다. 평택 주변은 별로 구경할 것이 없었다. 낮에 잠시 아이들과 캐니언 파크 동물원 구경을 다녀와 점심을 먹고 들어왔고, 들어오는 길에 저녁을 사들고 왔다. 이곳은 조리가 불가하다.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배달도 힘들다. 식사만 적당히 해결된다면 더없이 책에 빠져 지내기 좋은 환경이다. 서점동에서도 우리만의 시간이 있어서 얼마든지 원하는 책을 꺼내 읽어볼 수 있었고, 숙소동에도 진열된 책들이 제법 있어서 심심하면 책을 읽을 수가 있다. 2박 하는 동안 <취향의 기쁨>,  <기적의 아키타 공부법>, <나는 말하듯이 쓴다>, <당신의 문해력>을 보고 왔다. 책 선정에 기준은 별로 없다. 그저 눈이 가는 곳에 그 책이 있었을 뿐이다. 물론 아이들 동화책이야 10권도 더 읽은 듯하다. 동화책이야 흐름이 짧고, 한 권 금방 뚝딱이니. 옆에서도 읽고 읽어주기도 하고. 동화책들이 앞표지로 진열되어 있어 아이들도 책 고르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1. 서점동 2. 숙소의 1층 풍경 3. 숙소 2층의 다락방.



아르카 북스의 건축물 자체도 마음에 들지만 주변 풍경도 좋다. 평택호와 평택 국제교가 보이는 풍경이 아닌, 그저 한적한 시골 느낌만 있어도 물론 좋았을 것이다. 이곳의 전반적인 고즈넉하고 정갈한 감성이 좋았다. 까슬하면서 폭닥한 침구와 적당한 향내,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던 숙소동, 탁 트인 높은 층고의 구조와 센스가 묻어나는 각종 물건들이 모두 좋았다. 각종 굿즈들(스티커와 손거울, 책갈피, 엽서 등)도 좋아서 몇 가지는 사 오기까지 했다. 엽서 속 스케치를 누가 그린 건지 참으로 궁금한데, 깔끔하게 그려낸 펜 감성이 좋았다. 군더더기 없던 아침상도 좋았고, 거기 나온 고양이 잔받침조차 아이들이 잘 가지고 놀아서 오는 길에 검색해서 주문을 했을 정도다. 하릴없이 그저 책 한 권 꺼내 읽게 되는 상황도 좋았고, 아이들이 텔레비전 없이 책에 빠져 지내는 잠시나마의 경험을 하게 된 것도 좋았다.


           

그곳에서 사온 엽서를 찍어보았다.



아주 다독자는 아니지만 책을 애정 하는 편이다. 책 속에 있는 나를 좋아한다. 책과 함께인 순간들이 좋다. 출퇴근 운전보다 지하철 이용을 선호하는 이유도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도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이런 공간들이 우후죽순 늘어났으면 좋겠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수요가 부족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북 스테이를 좀처럼 찾기가 쉽지 않다. 능력 있는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남쪽에도 북 스테이를 만들어 준다면 참으로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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