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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Jul 12. 2022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

아이가 어릴수록, 부질없어?


꼬맹이들 비행기 타는 거 극혐이야
저 엄마는 무슨 생각으로 태운 거야?
네, 죄송합니다.. 그 엄마가 접니다.


아이와 함께 여러 군데 여행을 많이 다닌 것을 자랑삼아 떠벌리는 사람도 있고, 어린 시절 여행 다니는 것을 애가 기억도 못할 텐데 굳이 왜 하냐고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있는 듯하다. 전자도 후자도 아닌 나는, 그냥 내가 쏘다니길 좋아해서 어딜 가고 싶으면 아이를 데리고 간다.


부정적인 시선들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특히 아이가 어린 시절 다니는 경우엔 더하다. 말도 통하지 않을 때 데리고 다니면서 비행기 속에서 조용히 자고 싶어 하는 사람들한테 민폐나 끼치는 민폐객이 되기도 한다. 아이는 기억하지도 못할 텐데 고생만 하고 돈만 많이 드는 가성비 떨어지는 비이성적인 엄마로 전락하기도 한다. SNS용 사진이나 남기기 위한 디스플레이 자랑용으로 아이를 이용한 듯이 보일 때도 있을 것이다. 오랜 비행이 아이의 청력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검증되지 않은 기사를 보내며 애들 오랫동안 비행기 태우지 말라며 조언 아닌 조언을 받기도 한다.


너무 아이가 어려 비행을 굉장히 힘들어했다고 치자. 그래서 비행기 속 사람들에게 일부 피해를 끼쳤다. 이것이 두려워 무조건 비행을 피할 것인가? 그럴 수도 있으니, 아예 기회조차 박탈당할 것인가? 난 여행을 가고 싶은데, 아이를 맡기자니 힘드실 부모님께 죄송스러워서 데리고 간다면, 부모님께는 미안하니 안 되고, 타인(비행기 속 불특정 다수)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은 괜찮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최대한 덜 민폐 끼치기 위해 여러 장치들을 마련하여 시도해 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럴 수 있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나는 포기해야만 하는가. 내가, 나의 행복을 위해 내 행복을 아이에게 전파하고 함께 행복하기 위해 하는 이 행동들은 나의 이기적인 발상이며, 이기적인 행동일까?


이미지 출처 : pixabay



내가 원한 것은, 일상으로부터의 일탈과 환기이며, 아이와의 정서적 교감이었을 뿐인데. 다들 곡해하는 경향이 있다. "아, 이번 주에도 어딜 가시나 봐요? 그렇게 고생하셔 봐야 아이들은 기억하지 못하더라고요." 악의가 없는 것은 분명한데 '넌 삽질을 하고 있어'라는 인상을 분명 남긴다. 아이들이 어딜 갔는지 정확히 기억을 하게 하려고 여행을 가는 것이라면 나 역시 어린 시절에는 그 목적을 전혀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것이, 내가 제주도에 갔어! 제주도는 현무암과 바람이 많지. 오름도 많아. 성산 일출봉과 한라산이 유명하고, 내가 먹는 이 천혜향도 제주산이지! 뭐 이런 것을 기억시키려고 가는 게 아니지 않나? 내가 살고 있는 곳과 다른 공기를 맛보고, 엄마 아빠가 여행을 통해 마음의 여유를 얻고 좀 더 유해지는 것을 느끼며 아이들도 그 여유를 느끼고, 유치원이나 학교의 정해진 틀에서 잠시 벗어나 일탈하며 마음의 정화도 하고, 원하는 체험이나 활동을 하며 즐거움을 찾고, 엄마 아빠와의 즐거운 추억 하나를 장착케 하는, 그런 일련의 과정을 '함께' 겪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꼭, 그렇게, '어디'를 갔다고 '기억'을 해야 하고, 뭔가 '얻는' 것 하나쯤은 있어야 하고, 그런 건 아니지 않을까?


내 아이가 본인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고 앗 여기는 그리스네? 아크로폴리스가 어쩌고 저쩌고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엄마와 그리스 거리 한 복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그 기분 좋았던 기억 하나를 심연의 깊은 마음속 어딘가에 간직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빙산의 일각에 드러나지 않아도 좋다. 그러면 집 앞 이마트 24 마당에서 아이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되지, 굳이 왜 그리스까지 가느냐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 거리 한 복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엄마의 마음, 엄마의 시선이 달라지기에, 그 마음과 시선을 느끼는 아이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물론 때로는 나를 힘들게도 하겠지만, 한순간의 행복으로 상쇄가 가능하다면, 나는 그 행복을 좇아 열 시간 넘는 비행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로 정의하기도 했다. 인간은 끝없이 이동해왔고, 그런 본능은 우리 몸에 새겨져 있다고. 각종 책과 사진, 프로그램, 또는 인터넷 방구석 여행이 손쉽게 가능해진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다녀보고 체험하고 보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왜 돈을 주고 고생을 사서 하는가 싶은 사람들은, 그 가치관에 맞게 방구석 여행을 다니면 된다. 하지만 다가올 여행에 설레고 즐거이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굳이 초를 칠 이유는 없다. 그리고 그 대상이 아이라 하더라도 아이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엄마와의 교감을 쌓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 여행을 위한 나의 고생은 부질없지 않다. 아이가 기억하지 못해도, 서로 간의 교감과 행복을 쌓아가는 과정이지, 아이가 어려 기억도 못할, 가성비 떨어지는 하찮은 행위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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