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 있는 사랑

by 느루 작가

그럴만한 자격이 뭘까?

그럴만한 조건이 뭘까?

당연한 건 뭘까?


반복에 반복이지만 그 반복 속에서 나는 스스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경제적 난제에 부딪힐 때마다 조금 휘청이기도 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보여주는 나의 나약함과 연약함이 누군가에게 약점으로 비춰질까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올렸다. 부딪히고 깨져봐야 성장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래서 그런 걸까? 나의 글은 참으로 투박하다.


그림을 그릴 때는 어떻게든 예쁘게 그리려 하고, 잘 다듬고 싶어한다. 그림은 바라보는 순간 감각을 전달하기 때문에 첫인상이 아주 중요하다. 글은 그럴 수 없다. 그림과 달리 첫인상이랄 것이 없다. (물론 제목이나 표지는 큰 역할을 하겠지?)

글은 그 안에 담긴 단어, 문장, 문장부호, 띄어쓰기 등. 신경 쓰이지 않을 것 같은 사소한 부분들조차 무의식에 해석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만큼은 첨가하는 게 없다. 상황과 감정을 가감 없이 담아낸다. 그래서 때론 너무 밝고, 때론 너무 어둡다. 중간이 없다.


그리고 요즘 들어서야 깨달았다. 난 예쁘게 만드는 것보다 투박하고 솔직하게 써내는 걸 가장 잘 한다는 것을. 이야기를 듣고 소통하는 것을 가장 잘 한다는 것을.


내가 잘 하는 게 뭔지, 좋아하는 게 뭔지 잘 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음에도 이렇게 계속 부딪히고 내면에서 나 자신과 싸우는 과정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낯선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기란 정말 쉽지 않은 길이다.


사실 낯설다고 표현하기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기록하던 나의 것이지만, 이를 내면에서 세상 밖으로 꺼내는 것이 나에겐 큰 도전이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꿈꾸는 것들을 쉽게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에는 대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랑 받을 만한 존재'를 끊임없이 고민해왔던 것 같다. 이 때문에 나는 매일 모든 사람과 상황 사이에서 계산적인 사람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할까?'


이 고민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내 눈에 띄는 인간 모두에게 잘보여야만 했다. 나는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을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사고를 가진 나는 스스로를 틀에 가둬버렸다. 완벽할 수 없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자격증, 면허증 시험에서 떨어질까봐 응시하지 않았다. 취업 준비를 하다가 취업에 실패할까봐 국비 지원 학원을 모두 알아봐두고는 그냥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어학연수를 가도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지 못할까봐 계속해서 미루고 미뤘다.


사랑 받고 싶다고 생각하고,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겁이 많아서 아무것도 해내지 않았다. 꿈은 용의 머리이면서. 나는 겁이 많고, 실패가 두려웠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놀림을 받을까봐 온갖 핑계를 대며 용의 꼬리조차 마다하고 뱀의 머리를 자처했다.


그렇게 몇년을 지내다 결국 나 스스로 자괴감에 빠졌다. 극심한 우울감에 사로잡혀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몇 달을 보냈다. 평소같으면 심리학 책을 보든, 영상을 보든 하며 스스로 원인을 찾고 해결하겠다고 의기양양했을 텐데, 그때는 간절히 전문가를 찾았다. 중요한 순간에 회피하고, 100이 아니면 70, 80도 0을 만들어버리는 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 하고 있어요."

"당신의 삶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상담을 통해 얻은 원인은 내 스스로 나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머릿속에서 나 스스로를 아티스트, 작가, 통역가, 교사 등 원하는 직업군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그려내고 있으면서도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지 않고, 내가 그런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포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심연엔 '나는 사랑받을 자격도 기회도 없어.'라는 마음이 굳게 자리 잡고 있었다.


왜 그런 패턴을 가지게 되었을까?

삼남매 중 둘째로 자란 나는 나의 형제자매가 못하는 걸 해냈더라도 응당해야 할 일로 치부받았다.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당연한 일이 된 것이다.


"넌 혼자서도 잘 하잖아."

"그 정도는 당연히 해야지."


내가 알아서 무탈히, 아니 오히려 우수하게 지내도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형제자매가 학교에서 사고를 쳐서 부모님이 여기저기 불려다닐 동안, 나는 모범상을 받고도 '학교 행사에 부모님이 오시지 않는 애'가 됐다. 그렇다보니 난 '더 잘해야겠다.'라는 생각과 '내가 잘하면 안 됐나?'라는 생각의 갈래에서 우왕좌왕하며 산 것이다. (이외에도 깊은 대화가 오갔으나 생략하겠다.)


상담을 하는 중에도 나는 이를 부모님 탓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거라며 스스로를 탓했다. 결국 선생님은 나를 다그쳤다.


"그런 환경 속에 살면 어느 누구도 바로 성장할 수가 없어요. 당장 나라도 그런 환경이었으면 느루님 반만큼도 못 했어요. 아니? 안 했어요."


뭐가 억울한 건지, 슬픈 건지 끅끅대며 눈물을 흘렸다. 내가 지키고자 한 나의 신념과 내 고집이 나를 지켜준 거라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대견한 거라고. 스스로를 잘 돌봐주라는 선생님의 말에 매일같이 남 걱정만 하고, 남 눈치를 보며 기회를 포기했던 내 모습들이 떠올랐다.


몇 달 간의 상담이 끝나고 1년이 지난 지금의 내가 완전히 변했다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혹여나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이들이 있다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된다고, 앞으로 가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 남을 보살피던 만큼 나를 보살펴주면 백 리, 천 리 길도 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내가 남에게 대가 없이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듯이, 나도 조건 없이 누군가의 정을 나눠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내가 나를 가꾸면 자연스레 그 마음이 다른 이에게도 스며든다고, 꼭 그럴 것이라고, 감히 당신에게 믿음을 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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