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기차표를 예매하고서 급히 이동할 때였다.
'이렇게 빨리 갈 수 있는 걸, 왜 자주 가지 않았을까.',
'왜 난 한 번도 관심 갖지 않았을까.'
후회하며 가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두달 전, 이모와 엄마는 할머니의 치매 증상이 심해져서 요양원에 보내지 않으면 같이 계시는 할아버지가 더 힘들어지실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다.
할머니의 반복되는 의심과 망상에 할아버지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정신적으로 이상 증세를 보이시기까지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얘기가 나오고 한달 뒤, 할머니는 우리집 근처 요양원에 들어가기로 했고, 할아버지는 홀로 집을 지키셔야만 했다.
매일 요양사가 4시간 가량 방문하여 돌봐주셨으나, 할아버지께서 물이고, 음식이고 워낙 잡수시질 않아 가뜩이나 연약했던 몸이 결국 버티질 못하셨다.
의성을 떠나버린 할머니, 이 세상에서 멀어진 할아버지.
나는 장례식을 가는 그날이 마지막 여정이 될 줄 알았다.
지난 달이었다. 할머니가 계속해서 집에 보내달라고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하도 소리를 쳤단다.
결국 요양원에서 모시고 가는 게 어떻겠냐 말씀하셨다.(사실 오래 전부터 제안은 하셨단다.)
이모들은 상의한 끝에 할머니를 댁에 모시고 돌아가며 모시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나는 할아버지의 첫 기일인 오늘, 다시 의성으로 향했다.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려 했는데 내가 가기 전 이미 할머니의 요청으로 미리 제사를 다 지내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가 계실 때를 떠올리며 아이스크림이며 빵이며,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주 드시지 못 할만한 간식거리를 사들고 갔다.
그런데 사실 나는 할머니를 뵙는 게 두려웠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할머니가 안쓰러워 힘들게 시간을 내서 요양원에 갔을 때였다.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드리고, 죄책감이 배가 되어 마음 꾹꾹 짓눌렀다.
그래서였을까, 가진 것도 없으면서, 자주 뵙지 못 할 할머니에게 뭐라도 해드리고 싶어서 과일을 사들고 요양원으로 향했다.
할머니는 선생님이 끌어주시는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다.
나는 그때 태어나서 할머니 머리가 다 희고, 파마도 안 돼있는 모습을 처음 봤다.
할머니는 항상 우리가 간다고 할 때 맞춰 미용실을 다녀왔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때 본 할머니의 모습은 할머니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했다.
할머니는 치매, 섬망 증세로 의붓증에 걸린 사람처럼 할아버지가 바람이 났다며 흉을 보셨다.
내가 만난 10분 중 8분은 할아버지 흉이었다.
(할아버지는 평생을 가족들을 위해 살아오셨던 분이기에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더더욱 마음 아팠다.)
그런데 그곳에서 불편한 마음이 더 커진 것은 할머니의 모습 때문이 아니었다.
요양원 원장님께서 할머니에게 내가 사온 과일을 먹여주시는데, 내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할머니 입에 욱여넣었다.
할머니가 안 먹는다고 말씀하시는데도, "그래도 손녀가 생각해서 사온 건데 하나는 다 먹어야죠." 하며 딸기를 입에 밀어넣었다.
그 원장님에겐 우리 할머니가 그저 치매 환자일 뿐이었을 거다.
워낙 다양한 어르신들을 보았기에 아무렇지 않은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렇게 음식을 욱여 넣는 게 할머니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에는 요양 업무 따위에 완전히 무지하여 내 판단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모가 그 요양원이 정말 좋은 곳이라고, 요양원에 계신 분들이 어르신들한테 잘해주신다고 했던 게 떠올라서, 입을 열 수 없었다.
어른들의 결정으로 자리 잡은 곳에 내가 재를 뿌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터덜터덜 요양원에서 나왔는데, 충격이 너무 컸던 걸까?
어떻게 집에 가야 하는지, 무슨 일을 먼저 해야 하는지 도저히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요양원에서 보고 느낀 걸 이야기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