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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몇 번이라도 2

내가 만난 아이들

by 요롱

20여 년의 세월만큼 그동안 많은 아이들을 만났기에, 그것들이 겹겹이 쌓여 처음의 기억이 많이 희미해져 있었다. 은실이의 말에 따라 마음속 깊은 곳에 들어가 그때의 아이들이 있던 방에 문을 두드렸다. 은실이는 전교 1등을 늘 놓치지 않았지만, 뛰어난 학업적 성취는 든든한 지원으로 이루어진 게 아닌 순전히 혼자 힘으로 일군 것이었다.


선생님, 저는 사고 싶은 문제집을 마음대로 사볼 수 있는 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어요.


은실이와 상담을 할 때 은실이가 털어놓았던 그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시 은실이의 아버지는 빚보증을 잘못 서서 쫓기는 신세라 집에 계시지 않으셨고, 대신 어머님이 마트에서 캐셔로 일하시며 근근이 살림을 이어오시며 자매를 키우신 것이다. 집으로 사람들이 이따금씩 찾아와서 빚독촉을 하는 바람에 전깃불을 모두 끄고, 손전등을 켜서 공부하기도 했다고. 당시에는 고교 무상 교육이 아니라서, 급식비며 뭐며 학교교육에 들어갔던 비용을 대내외적 장학금을 총동원해 수납했었었다. 선생님들이 은실이의 사정을 알아 문제지 같은 것들을 지원해 주기도 하고.


은실이는 어머님과 동생이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함께 살고 있고, 자신은 결혼도 하였다고 했다. 지금 회사도 그만두고 의료 파업으로 학교도 당장 다닐 수 없으니 뭐 하며 지내냐고 하니, 대치동에 있는 학원에서 강의를 한다고 했다. 회사를 다닐 때도 낮에는 출근을 하고, 밤에는 학원에서 일했다고.


저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그 말을 할 때 은실이의 눈에 고인 눈물을 순간 본 거 같다. 아는 척할 수는 없었지만, 혼자 힘으로 거기까지 가기까지, 집을 다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만들기까지 말 못 할 어려움이 어찌 없었을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갔을 때 마음이 편안해지고 비로소 자신만을 위한 공부를 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지.


37살이 되어 수능을 다시 보고 대학교에 입학한 제자의 용기에, 세상에 못 할 게 없구나 하고 스스로 성찰이 되었다. 공부를 꼭 잘해서가 아니라 묵묵히 의지를 저버리지 않고 나아갔던 은실이가 제자라서 자랑스러웠다. 그때도 지금도.


선생님은 제게 힘든 유년 시절 가장 큰 등불이셨어요. 어른이 되어서도 많은 일을 겪을 때마다, 더 힘든 시절, 더 보잘것없던 저를 응원해 주셨던 선생님을 떠올리며 제 자신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20여 년 전 제자 올림


은실이가 부채였던 것 마냥 주었던 선물에 쓰인 카드를 본다. 난 큰 등불은 아니지만, 이제 다시 새로운 시작 앞에 선 너를, 그 삶을 언제까지나 몇 번이라도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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