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선택에는 책임이 1

중학생의 세계

by 요롱

중학교 3학년. 한참 철부지인 아이도, 중2의 열병으로 들끓었던 아이도 새롭게 마음가짐을 되새기는 순간이 온다. 그것이 짧게 3월에 국한되더라도.


때는 2022년. 코로나로 어수선한 때였지만, 학기 초 수진이는 자신이 목표한 바를 반드시 이루겠다는 비장함이 있었다. 3학년은 그런 지점이다. 밖으로 싸돌았던 관심도 자신에게 옮겨져 그동안의 성적을 만회하겠다거나, 가고 싶은 고등학교에 반드시 진학하겠다는 목표가 서는 목적이 확실한 시기. 수진이도 외국어고 중국어과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영어 성적을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도 그럴 것이 외국어고등학교는 내신 성적을 볼 때 1차적으로 영어 과목 성취도를 합산하고, 3학년 때 영어 성적의 비중이 높았기 때문이다. 나는 영어교사가 아니기 때문에 수업에 참여한 수진이의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시간 전후의 수진이는 열정적으로 수업을 들었다는 반증으로 얼굴이 항상 뻘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너무 떨리는 마음에 수행평가를 치를 때 자신의 실력을 맘껏 발휘하지 못했다며 펑펑 울기도 하였다.


한편 수진이는 손재주가 좋아서 집에서 요리한 음식 사진을 보여주기로 하였고, 특별한 날에는 쿠키 같은 것을 만들고 와서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런 것을 할 때는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반면, 상담을 할 때 수진이를 보면 외고에 가고 싶다는 맹목적인 목적만 있었지, 왜 가고 싶은지 그런 공부를 할 때 즐거운지는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수진이는 영어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였지만 기대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인문계고에 갈 성적은 되지 않았고 순전히 외고 중국어과에 지원하는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밖에 없었다. 수진이 부모님과 전화상담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머님, 수진이가 외고 가고 싶어 하는 것은 집에서 상의를 한 것일까요? 제가 보기에 수진이는 요리도 좋아해서 특성화고 조리과에 가면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선생님. 그런데 아이가 거기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수진이는 이제서야 사춘기가 와서 집에서 잘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작년부터 영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거기 학원 선생님과 잘 맞아서 둘이 이야기하고 정한 거 같다고 덧붙이셨다.


어머님, 고등학교는 입학도 중요하지만, 그다음도 중요해서요. 거기 수업 따라가는 게 어려울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하시면 좋을 거 같아요.


외고에 근무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교육과정과 일과의 빡빡함을 알고 있었다. 수진이는 겨우 영어 성적만 중상위권인 경우라 다른 교과도 잘 따라갈 수 있을지 솔직히 걱정이 되었다. 어머님은 나의 말에 공감하시며, 한숨을 쉬고 전화를 끊었다.


2학기 지나 원서를 쓰는 시기가 왔다. 수진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외고에 원서를 썼고, 자기소개서도 제출을 해야 했다. 수진이에게 자기소개서를 봐줄 테니 보내라고 했고 수진이는 한참 지나서 그것을 보내왔다. 자기소개서를 읽어보니 문항 내용에 일관되지 않는 내용이 있었고, 무엇보다 중국어과를 가는데 '한국어 교사'를 진로 분야로 적은 것이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수진이를 불러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진아, 한국어 교사는 한국어교육과나 다른 과를 가는 것이 훨씬 수월한데, 얼핏 중국어과를 나와서 나중에 이 과로 대학을 진학하겠다고 하는 게 모순되는 거 같아. '중국어 통역사' 같은 것이 우리말로 전달하면서 지금 지망하는 전공을 훨씬 잘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수진이는 듣는 둥 마는 둥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더는 대화가 되지 않아 선생님이 고쳤으면 하는 부분과 흐름을 다시 정리하여 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메일을 보낸 다음에 고쳐진 내용을 보내올 줄 알았는데 한참이 지나도 보내지를 않았다. 마감 전날 수진이한테 왜 고치지 않는지 재촉하였다.


선생님, 저는 처음에 쓴 게 최선을 다 한 것이라서 더는 한 자도 고칠 수 없어요.

작가의 이전글언제나 몇 번이라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