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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 Feb 01. 2022

새벽, 책상에 앉기 위한 나만의 의식

그렇게 하고 앉아, 나는 무얼 하고 싶은 걸까.


 새벽에 보통 5시 반쯤 일어나면, 반쯤 감긴 눈으로 거실 간접등에 애써 눈을 밝힌다. 그러곤 주방 포트에 물을 올리고,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와 천식약을 입에 문 채 한번 숨을 들이마신 후(천식약은 입안을 꼭 헹구어야 한다)에, 코코넛 오일 한 숟갈을 떠서 입에 넣고 오물오물.. 다시 눈을 감고 입안을 헹구는 것으로 한차례 더 정신을 헹궈낸다.



 코코넛 오일로 입안을 헹구고 나면 양치한 것처럼 혀가 꽤 개운해진다. 참 신기한 일이다. 오일풀링이 좋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게 오일풀링인지 뭔지 제대로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코코넛 오일을 한 스푼 떠서 오물오물하다 보면 자연스레 침이 고이고 골고루 입안을 헹궈내는 기분으로 있다가 싱크대에 뱉어낸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하면 입안이 양치한 것처럼 상쾌해진다. 그래서 어떤 날은 그것마저도 귀찮아서 그냥 스킵하고 싶다가도 챙겨서 또 하게 된다. 그렇게 입안을 헹구다 보면 똑똑한 포트가 물 온도를 90도로 맞춰준다. 덕분에 향긋한 차를 더 깊게 우려낼 수 있다. 우러나는 차 향에 기분이 조금 더 좋아진다. 그렇지만 아직 나를 깨우려면 멀었다. 아직은 잠에서 덜 깬 비루한 몸뚱이가 남았다. 무겁고 늘 찌뿌둥한 내 몸뚱이를 깨우기 위해서는 또 도구들을 대동한다. 폼롤러와 매트. 이것들을 꺼내 다시 눕는다. 딱딱한 폼롤러에 목부터 겨드랑이 옆구리 등 다리를 뽀개며 전신을 훑고 나면 그제사 몸이 일어나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3일에 한 번은 1시간 정도 살짝 땀이 나는 정도로 홈트를 하고 날이 밝으면 책상에 앉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엄마와 아내로 돌아가거나, 그렇지 않은 날은 폼롤러를 후딱 제쳐두고 얼른 책상 앞에 앉는다.





요즘 손이 자꾸 가는 머그컵과 허브티





나는 마실거리에 대한 관심과 선호도가 크게 있는 편은 아니다. 그냥 차보다는 커피 향이 더 좋은 정도? 커피는 달달한 디저트가 있으면 더 좋고. 그런데 새벽에 일어나서는 빈 속에 커피를 마시는 게 왠지 몸에 미안해서 차를 마시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따뜻한 차 한잔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다. 왠지 새벽에 일어나면 시원한 물 한잔보다는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 겨울이라 그런 건가?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작년 가을 한참 새벽루틴 만들때의 기록...



아.. 그래. 생각해보니 2019년 난생처음 새벽 기상을 시도했던 것도 가을, 겨울이었다. 근데 금방 실패로 돌아갔었지. 새벽 아침, 갑자기 한쪽 입술의 이상한 감각들에 당황했던. 그렇게 안면마비가 시작되고 1년 넘게는 새벽에 눈이 떠져도 일부러 잠을 더 선택했었다. 아무튼 그때도 시작은 초가을 즈음이었다. 2년이 지나고 다시 새벽 루틴을 만들어가자 했던 것도 작년 10월부터 구나. 그러고 보니 늘 머리에 변화를 주고 싶어 펌이든 커트를 하는 계절도 가을이다. 나에게 가을과 겨울은 무언가를 시도하고 싶어지는 계절인가 보다.









© the_modern_life_mrs, 출처 Unsplas


 대형마트에 잘 가지 않는 우리는 한 달 전쯤, 우리도 먹거리 플렉스 좀 하자며 동네 트레이더스에 갔었다. 구경을 하다가 차 코너에서 멈칫하고는 신랑에게, 요즘 아침에 라벤더 차만 마시니 질리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고는 내가 좋아하는 라벤더향이 질리면 안 되지 싶어 고민 없이 눈앞에 있던 허브와 과일이 믹싱 된 8가지 맛이 들어있는 차 티백제품을 골랐다. 참 오랜만에 나를 위해 고른, 지른 먹거리였다.


그렇게 나의 찬장에는 여러 종류의 차 티백이 생기게 되었다. 많다 보니 고르는 즐거움이 있다. 오늘도 부엌 찬장에서 티백이 담긴 통을 꺼내고는 즐거운 고민을 한다.






이게 책상 앞에 온전한 정신으로 앉기 위해 찾은 나의 루틴들이다. 책상에 앉기 위해 그렇게 한다. 약 2~30분 정도의 시간, 그러다 보니 정작 책상에 앉아 집중하는 시간은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다. 늘 아쉽다. 그렇다고 일어나는 시간을 더 당기고 싶지는 않다. 예전에는 4시에도 일어나 보려 했는데 나에게 그건 맞지 않다는 걸 느꼈다. 야간형 인간이었던 나였기에 더 욕심내지 않는다.


책상에 앉아 차를 한 모금하는 그 기분이 좋다. 오로지 차를 마시는 소리만이 들린다. 비로소 깨어있음을 느낀다. 그 기분이 좋아 새벽에 일어나는 요즘이 참 좋다. 거기에 나를 위한 차 한잔이라니,,,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새벽에 눈이 떠지면 나의 하루는 좋은 마음과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해가 떴다.





 요즘 또 하나의 즐거움이 생겼다. 얼마 전 책상의 위치를 방에서 거실로 옮겼는데, 벽 뷰가 아닌 창 뷰가 이렇게 즐거움을 줄 줄은 정말 몰랐다. 전에는 책상은 나만 앉는 곳이었는데(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이제는 신랑도 아이도 누구나 좋아하는 한 뼘의 공간이 되었다. 사실 나는 집에 있어도 거실에 앉아 있는 일이 거의 드물었다. 아이가 있을 때 빼고 혼자 있을 때도 거실보다는 주로 주방 식탁의자나, 책상이 있는 방에 있었다. 거실에 앉아 차 한잔 해야지 해도 그게 잘 안 되었다. 그 이유를 이제 알게 되었다. 우리 집은 소파가 없기도 했지만 방향이 문제였다. 어디를 바라보고 앉느냐. 책상을 베란다 쪽으로 옮기니 우리 집 거실의 큰 장점인 한낮의 자연광도 오롯이 느낄 수 있고, 노트북 넘어 내 시야에 들어오는 오픈된 풍경 덕분에 딴짓을 하지 않게 된다. 하늘을 한번 더 보게 된다.







이럴 땐 우리 집이 20층인 것에 감사하다. 길을 걸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20층에 살아도 하늘을 볼 일이 없는데(우리 집 상전님만 빼고) 이젠 매일같이 아침과 낮과 밤의 하늘을 잠깐씩이라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대체 새벽에 일어나 책상에 앉아 무얼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냥 그 시간이 좋은 건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새벽에 일어나 책상에 앉기까지 '나만의 의식'을 치르는 그런 내가 요즘은 참 좋다. 얼마 전 '리추얼'이라는 책을 봤는데, 리추얼은 일상의 방해로부터 나를 지키는 유용한 도구, 삶의 에너지를 불어넣는 반복적 행위라고 했다. 수많은 위대한 창조자들의 리추얼을 기록한 책이었는데 그 책을 보면서 그들도 끊임없이 노력했던 한 인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보통의 주부라 내세울 것 하나 없지만, 이렇게 매일 조금씩 내 안에 단단한 뿌리를 만들어 가다 보면 어느 날 땅을 뚫고 어느 방향으로든 자랄 줄기와 잎이, 그 힘이 길러지지 않을까? 

 


'쓰고 싶어도 쓸 게 없는 날..'.이라고 쓰고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갔는데, 제목을 바꿨다. 



하루 중 숨을 깊게 쉬고 고를 수 있는 시간. 그 시간만큼은 나의 꿈과 바람은 무한대로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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