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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곱슬머리앤 Nov 11. 2021

다이슨 청소기보다 다이소 빗자루

아날로그의 단순한 진심

엄마는 평생을 엎드려서 쓸고 닦고 하셨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처음 청소기가 나왔던 때를 기억한다. 1990년대 초중반, 지금의 빨래건조기, 에어 프라이기의 등장처럼 당시 청소기는 주부들의 로망이었을 것이다. 더 이상 무릎을 구부리고 방비와 쓰레받기를 찾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 무엇보다도 밀고 다니기만 하면 먼지를 말끔히 없애주니 얼마나 획기적이었을까. 심지어 청소기를 미는 모습은 어딘가 세련되고 우아하기까지 하다. 물론 우리 집에도 그 당시 가전제품의 유행의 선두주자였던 '청소기'가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데 간데 사라지고 말았다. 엄마는 세련미와 우아미는 뒤로한 채 다시 다리를 구부려서 대야에 물을 받고 걸레를 부시고는 거실 바닥에 소위 '테이블 자세'로 능숙히 걸레로 먼지도 쓸고 닦아냈다. 엄마한테 한 번은 물었다. "왜 이제 청소기 안 써?" 그랬더니 무겁기도 무겁고 전깃줄 끌고 여기저기 끌고 다니는 게 더 지친다고 했다.



청소기는 나도 그런 이유로 자연스럽게 내 신혼살림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청소의 우아함보다는 시대를 역행하는 우매함을 택했다. 일단 그 번잡스러움이 싫었다. 집이 넓은 것도 아니니, 2 in 1 역할을 해내는 걸레로 훔치면 될 일이었다. 이래서 딸들은 엄마를 닮는다 하나보다.


그랬는데, 지금 우리 집 안방에는 4년째 동고동락 중인 무선청소기가 살고 있다. '청소기는 불편하다'라는 이미지를 대물림하여 가지고 있던 나였건만, 유선청소기의 번잡함과 무거움을 간편하게 해결했다는'무선'청소기라니! 안 살 이유가 없었다. 신랑을 설득하기도 좋았다. 곰팡이와 결로에 찌든 전셋집에서 첫 집을 장만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으니까.

그렇게 청소기는 우리 집을 말끔히 치워주었다. 잠시간은 무선청소기 예찬자가 되었었다. 기대보다는 살짝 무거웠지만 그까짓 무거운 것은 내 팔힘을 키우고 각도를 잘 잡으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 만족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런 완벽한 청소기를 완벽히 유지하려면 청소기를 청소할 사람이 필요했다. 주기적으로 먼지통을 비우고 닦고, 롤러와 필터를 꺼내 세탁해 볕에 말리는 일은 주로 청소기를 이용하는 나의 몫이었다. 아니 왜 살 때는 그런 생각이 나지 않을까. 게다가 무선의 최대 약점인 배터리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나는, 배터리도 주기적으로 교체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무선청소기 사용 3년 차에 알게 되었다. 이미 무상교체시기는 지났던 때였다. 신랑을 타박했지만 교체 배터리가 그렇게 비쌀 줄 몰랐다고 했다. 배터리의 속사정을 알았다면 절대 사지 않았을 텐데.



그러던 어느 날 다이소에서 2천 원짜리 빗자루를 사게 되었다. 약간의 충동구매였는데, 아이의 청소 정리 습관을 길러주자는 의도였다. 하지만 예쁜 쓰레기 또 하나 들고 온 거 아닌까 살짝 후회스러웠다. 이래서 다이소는 가지 않는데 말이야.

그런 예상이 진짜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빗자루를 일부러 아이가 볼 수 있고 손이 닿을 곳에 두었다. 처음에는 관심을 갖고 지우개 똥이라도 쓰는 척을 하더니 슬슬 안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선보이면 놀이처럼 꺼내서 하지 않을까 싶어서 치울 때마다 꺼내 쓰게 되었다. 주로 거실에서 먹고 노는 아이 덕분에 우리 집 거실은 하루 이틀 그대로 두면 발 디딜 틈이 없다. 하지만 빗자루를 들인 이후로는 간식을 먹고 난 흔적은 휴지나 돌돌이 테이프 대신 다이소 빗자루로 슥슥 쓸어버렸다. 그러다가 매트 사이 낀 먼지도 쓸고, 매트 위 머리카락들까지도 빗자루로 해결하는 날이 많아졌다. 돌돌이 테이프도 쓰다 보면 떼어버려야 하는 귀찮음이 있는데 빗자루는 그냥 털어 버리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틈틈이 나의 청소 고민을 해결해주는 빗자루 덕분에 청소가 훨씬 덜 부담스러웠다. 무선청소기를 꺼내러 안방까지 가는 수고로움 없이 미니 빗자루 하나로도 충분히 어질러진 거실 한켠을 치우는 데는 내 몸이 고되지도 번거롭지 않았다. 그렇게 나름의 청소 루틴을 정했다. 거실과 주방은 틈틈이, 나머지 방 3개는 주 1회는 청소기로만, 주말에는 물걸레질까지 하기로. 그렇게 정하고 나니 한결 청소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아니, 아이 정리 습관 길러 주려고 산 2천 원짜리 미니 빗자루가 나의 청소 습관을 바꿔낼 줄이야.






생각해보면 모든 가전제품들은 잘 쓰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편리함과 간편함 뒤에는 늘 대가가 따른다. 주기적으로 관리를 하거나(여기서 나에게 가장 큰 숙제는 냉장고 청소이다), 교체를 하거나, 아니면 버리거나. 특히 주방제품에서는 그 대가가 빛을 발한다. 일단 산 즉시 들여놓을 주방 내 공간이 필요하며, 주방제품의 특성상 '사용 후 세척'이기 때문에 관리가 쉬운 지도 선택지에 있어야 한다. 내가 어떤 살림 스타일이고, 어떤 음식을 자주 하는지가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단순히 쇼호스트들의 달콤한 유혹에 사들인 주방도구들은 얼마 안 가 '당근(마켓)'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모든 가전제품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최근의 가전제품들은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수명이 단축되도록 하는 '계획된 진부화' 과정을 마친다고 들었다. 이제 요즘 가전제품은 내가 아무리 오래 쓰고 싶다고 해도 오래 쓸 수가 없다. 게다가 오래 쓰겠다고 결심했다가도 최신 제품을 보면 마음이 흔들리는 건 당연하게 되었다. 인간의 뇌와 심리까지 파악해 작정하고 마케팅하는 그들 앞에서 당해낼 자가 있을까.




  어쩌다 아들의(이젠 거의 내 것화 된) 미니 빗자루 쏘아 올린 '아날로그 살림'의 매력을 떠올리다 여기까지 왔. 옛날에 우리 엄마가 최신 청소기를 뒤로 하고 걸레질을 했던 이유. 구닥다리가 주는 단순함이 오히려 간편함과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로지 한 기능에 충실할 수 있는 우직함이란... 그리고 아날로그 살림의 '바지런함'을 '불편함'으로 만든 것은 어떻게 보면 살림하는 이의 생각과 느낌이 아니었을 수 있겠다는 물음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 무선 청소기는 여전히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분리배출도 쉽지 않은 배터리를 버려서 그 배터리 잔해가 어디로 가는지도 알 길이 없는 그 찜찜함이 싫었고, 개당 12만 원씩이나 하는 정품 배터리를 또 사서 예비 쓰레기를 만드는 것도 용기가 나지 않아 결국 사설 배터리 충전 전문점에서 충전을 해서 쓰고 있다.


 나의 작은 살림을 도와주는 많은 가전제품들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고, 나도 그들과 오랫동안 동고동락 하기 위해 그들을 애써 돌본다. 그리고 종종 그들을 쉬게 하고 내가 움직이는 날을 늘리기로 했다. 청소기 대신 빗자루로, 빨래 건조기 대신 빨래걸이, 일회용 행주 대신 소창 행주, 물티슈 대신 손수건으로... 약방의 감초 같은 나의 '빗자루'들을 소환해 불편함 대신 부지런함을, 그리고 복잡함 대신 단순함으로 내 살림의 구멍들을 메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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