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통해 살펴본 미래상
아기에게 곰 세 마리 노래를 불러 주었다. 곰 세 마리가 끝나자 아기는 '악어, 악어' 하면서 악어떼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다. 이유는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곰 세 마리가 끝나면 악어떼가 자동재생되기 때문인데, 이렇게 서너 번 이상 계속 듣다 보니 아가 머릿속에는 자동적으로 곰 세 마리에서 악어떼 노래가 연상되는 것이다.
이것을 뇌 과학에서는 엔그램이라고 한다. 어려운 용어지만, 쉽게 말해 기억에 따라 뇌가 주로 사용하는 통로가 설정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뇌신경 세포 망은 여러 갈래로 연결되어 있지만, 주로 쓰는 통로가 정해져 있고, 기존에 받아들인 정보들을 통해 새로운 정보들도 비슷하게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아기가 곰 세 마리를 들었을 때 이전처럼 악어떼가 생각나는 것이다.
이것을 보고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일단 첫째로 집단 무의식이 개인의 무의식에 미치는 영향이 딥러닝 인공지능을 통해 더욱 공고화 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집단 무의식이란 융이 최초로 제시한 인류의 원형(archetype)인데, 인류가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축적해온 유산이자 행동 유형의 개념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지구가 지구촌화 되면서, 인류가 공유하고 있는 집단 무의식이 지구 곳곳으로 더욱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거기다가 인공지능의 발달은 알고리즘을 통해 개개인의 인간이 움직이고 생각할 방향을 무의식적으로 제시한다.
'이걸 본 사람들은 이걸 좋아했으니까 이쪽으로 가세요'
'이걸 검색한 사람은 이 상품을 샀으니까 이걸 사세요'
'이런 책을 읽은 사람들은 이런 책을 좋아했으니까 한 번 읽어보세요'
구글과 같은 검색 포털에서는 연관 검색어를 제공한다. 멜론과 같은 뮤직 플랫폼에선 노래를 듣다 보면 같은 취향의 노래를 추천한다. 아마존과 같은 쇼핑 플랫폼에선 함께 많이 본 상품을 추천한다. 테슬라와 같은 자율주행 플랫폼은 가장 최적화된 길로 인도한다. 모두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 딥러닝을 통해 정교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식으로 점점 인공지능에 익숙해질 새로운 세대의 인류는 이전까지의 인류가 축적해 놓은 무의식적 원형에 '알고리즘을 통해 학습한 인공지능을 통해' 점점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초의 인류라 일컬어지는 아담과 하와가 자손을 통해 세상에 퍼지고 번성하며 개별화되던 시대가 지난 시대였다면, 어쩌면 앞으로의 세상은 그 반대로 역행하는 대통합 또는 단일화의 시대가 될지 모른다. 그 가속도는 인공지능의 발달이 주도하게 될 것이고 말이다.
두 번째 생각은 아기들의 뇌 가소성은 뛰어나기 때문에, 이럴 때일수록 아가들을 더 재밌게 놀게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가끔 보면 요즘 세상에도 아직 어린아이인데도 공부를 시킨답시고 괴롭게 하는 부모들이 있다. 하지만 아기는 뇌 가소성이 풍부하기 때문에 안 좋은 기억을 학습과 연동시켜서 커서도 '공부란 괴로운 것'이라는 생각을 지속할 수 있다. 그런 뇌 회로가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릴 때는 그저 놀면서 학습하게 함으로써, 학습이란 재밌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할 필요가 있다.
놀면서 어떻게 학습이 가능한지 의아한 부모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학습할 거리를 가지고 있다. 부드러운 이불에서 뒹굴며 촉감을 학습한 아이가 나중에 디자이너가 되었을 때 그 촉각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며, 레고를 가지고 놀며 무게중심과 하중을 배운 아이가 세계적 건축가가 될 수 있다.
아기의 곰 세 마리 노래를 통해 딥러닝과 뇌, 그리고 집단 무의식에 대해 알아보았다. 앞으로도 아기를 재밌게 놀 수 있게 하되, 인공지능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인류 무의식이 점점 통합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일까? 순리 일지는 모르겠지만 거스르기 힘든 물결로 다가오는 것은 기정사실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