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2 포텐 터지는 시기 이야기
그렇게 폭풍과 같은 고1 시기를 마치고 2학년으로 올라갔는데, 2학년은 고등학교 1학년 동안 쌓아놨던 포텐이 터지는 시기였다. 이과로 진학하여 처음 본 3월 모의고사에서 처음으로 올 1등급을 맞고 전 과목 합산 기준 전국 0.5프로 내에 드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모의고사뿐 아니라 교내 중간, 기말고사 또한 전 과목 1등급을 석권하며 공부에 탄력을 받게 된다.
아무래도 지난 1년간은 노력한 것에 비해 성적이 받쳐주지 않았는데, 이렇게 성적까지 잘 나오게 되니 더 공부할 맛이 났다. 그렇다고 모든 과목을 전교 1등을 하거나 올 백점을 맞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학급에서는 1등이었지만 전교에서는 특정 과목이 특출 난 것이 없었고, 모든 과목을 고루 잘했기에 합산 성적이 괜찮게 나온 것이었다. 학교 자체가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동네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2학년 동안 모든 학기, 모든 과목을 통틀어서 전교 1등을 한 과목은 일본어 밖에 없다.
여기서 엿볼 수 있는 나의 특징은 덕력도 있지만, 그것보다 문과적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일본어는 문과애들과 성적 합산을 같이했고, 특유의 덕후들이 많아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애들도 있었다. 다른 과목은 다 포기하고 일본어만 파는 애들도 있을 정도로 그 특이도가 높던 과목인데, 나는 모든 문과생과 덕후들을 물리치고 2학년 2학기 전교 1등을 거머쥐었다. (그 이후로는 일본어 과목이 없어서 최후의 승자였던 셈)
그뿐만 아니라 문과와 함께 듣는 한문, 윤리와 사상 등의 과목에서도 1등급을 놓치지 않았으니, 문과적 성향이 다분함과 동시에 공부 잘하는 이과생들의 약점을 파고들어 그들과의 성적 합산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강한 문과적 성향은 훗날 정신과를 전공하는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윤리와 사상하니까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하나 또 있다. 윤리와 사상 시험 전날이었다. 보통 윤리와 사상 같은 문과 과목은 중요도도 떨어지고, 암기과목이기에 시험 전날 벼락치기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나도 당장 수학같이 시간 드는 과목들이 많기에 당연히 그렇게 공부해 왔다. 그런데 시험 바로 전날, 갑자기 체했는지 야자실에서 도저히 공부가 되지 않는 것이다. 급기야 공부를 하나도 못 한 채로 집에 와야 했다. 다른 과목들은 기본 베이스가 있어서 그렇다 치고, 이건 공부를 하나도 못해서 어쩌지 걱정하면서 다음날 시험을 쳤다. 결과는 평소 한 두 개 틀리는 것과 달리 다섯 개 정도 틀리면서 80점대의 성적이 나왔다.
하지만 다행히 중간, 기말을 합산해서 계산하는 내신 시스템 덕에, 합산으로는 1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내신에서 80점대를 받은 유일한 시험이었지만, 시험 당일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기에 합산 1등급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학업에 있어서 유일한 위기의 순간이었다.